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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질문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서 다섯 쪽짜리 프린트 물이 필자의 손에 건네졌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께 보낸 질문지’ 이렇게 제목이 적혀 있었다. 주-욱 훑어보고 있는데 지인이 사연을 말해 주었다.

“일방적으로 질문만 있었지, 아마도 답변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박희봉 신부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는 적임자를 물색하다가 정의채 몬시뇰에게 이 편지를 넘겼답니다. 나는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이 복사본을 받은 것이구요.” (나중에 필자는 정의채 몬시뇰로부터 그 경위를 직접 듣게 되었는데, 몬시뇰과 故 이병철 회장의 만남이 주선된 상태에서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말미암아 만남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질문에 집요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네요……. 하지만 여기 있는 물음들 가운데 우리가 힘들 때 불쑥 던지는 물음들도 꽤 됩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의 물음들인 셈입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몇몇 물음은 예사롭지 않은 물음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우리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여정에서 무심결에 후렴구로 내뱉는 물음들도 꽤 있었다. 하필이면 왜 故 이병철 회장은 그 물음 꾸러미를 절두산으로 보냈을까?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영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절박함이 느껴지는 그 물음들.필경 어느 한나절 우박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을 그 물음들. 그 물음은 사실상 우리 고달픈 인생들의 흉금을 대변하는 것들이었다. 뭐랄까, 생의 밑바닥을 흐르는 거부할 수 없는 물음들?! 그것들은 실상 절망 앞에 선 ‘너‘의 물음이며, 허무의 늪에 빠진 ‘나’의 물음이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물음이었다.

그 질문지의 전문은 이렇다.

1.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5.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두었는가?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2) 유태교 3) 불교 4) 회교(마호메트교) 5) 유교 6) 도교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 종교인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1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17.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퍼센트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왜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폴란드 등 동구 제국, 니카라과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21.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

(이 질문들은 1987년 죽음을 앞두고 투병 중이던 故 이병철 회장이 구술한 것을 필경사가 받아 적은 것이다.)

이 물음들은 한 인간이 죽음에 직면한 ‘삶의 자리’에서 던진 가장 절박한 물음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각양각색의 물음을 갖기 마련이다. 이제 나는 故 이병철 회장이 작성한 저 물음들을 빙자하여,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가장 절박한 물음들의 답을 탐사하는 도전에 감히 임하기로 한다.


『잊혀진 질문』 중에서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 / 368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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