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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을 바꾼 역관 홍순언의 숨은 활약
임진왜란 전만 해도 조선은 지극히 평화롭다 못해 문약文弱에 빠진 왕조였다. 더구나 조선 정부는 사대교린事大交隣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도 교린의 당사자인 왜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실정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20만 대군을 동원해 규슈를 정벌했다거나, 그것이 장차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대규모 병력 동원 훈련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1592년 4월 13일 저녁, 700여 척의 전함에 나누어 탄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는데도 사흘이 지나서야 그 일을 보고받았을 만큼 기강이 무너진 때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총과 탄약으로 중무장한 왜군들 앞에 조선군은 말 그대로 추풍낙엽이었다. 1592년 4월 13일 전쟁이 시작되어 불과 15일 정도 지난 4월 28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던 신립申砬부대가 궤멸하고 충주성이 함락당하게 된다.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왜군의 기세에 놀란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평양으로 파천을 결정했다. 6월 14일, 선조는 치욕스럽게도 명나라 망명을 결심했다가 조정 대신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급한 선조는 피난 중에 명군의 지원을 긴급하게 요청했다. 이때 명에서는 파병 여부를 두고 논의가 분분했는데, 마침내 지원병을 보내기로 한 것은 당시 명나라의 병부상서였던 석성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명은 임진왜란을 치르는 7년 동안 모두 20만 명의 병력과 900만 냥의 은을 조선에 제공했다. 덕분에 조선은 전세를 역전시켜 끝내 왜군을 무찌를 수 있었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명이 조선의 지원군 요청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대신들 중에는 반대파가 많았다. 이때 명이 군사를 지원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병부상서 석성이었다. 그리고 그를 움직인 사람은 뜻밖에도 조선의 홍순언이었다. 최근에야 새롭게 부각되는 인물인 홍순언은 중인인 역관 출신으로 나중에는 나라를 빛낸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책봉되었으며, 정2품 벼슬까지 올랐다. 그가 임진왜란의 비사를 장식할 주인공이 된 것은 류씨 성을 가진 한 여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사신을 따라 명으로 연행길에 오른 홍순언이 한 기생집에 들렀다. 그때 시중을 들러 나온 한 여인이 상복을 입고 있어, 홍순언은 의아하게 여기고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본래 절강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큰 벼슬을 얻어 연경으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러 드릴 돈조차 없어 상복 차림으로 이런 곳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정을 딱하게 여긴 홍순언은 그 자리에서 공금 300냥을 선뜻 내주며 장례비에 보태라고 했다. 그리고 기생집을 나서려고 하자 여인이 물었다.
“실례지만 선비님의 존함을 여쭙고 싶습니다.”
“그냥 조선의 역관 홍가라고만 알고 계십시오.”
홍순언은 조선 사나이의 호탕한 기상을 명나라 류씨 처녀에게 과시하긴 했지만, 공금을 횡령한 죄로 귀국하자마자 옥에 갇혔다.

그 무렵 선조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일이 진척되지 않자 대신들에게 역정을 내면서 1584년(선조17년) 종계변무 주청사 황정욱 등을 보낼 때, “이번 연행에서도 그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수석 역관의 목을 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종계변무란 명의 《태조실록》, 《대명회전》 등의 문헌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며, 고려 말기의 네 임금을 시해한 인물로 잘못 기록된 일을 말한다. 오늘날의 표현대로 하면 엄청난 역사 왜곡인 데다 인격 모독이었다. 조선은 이 사실을 1394년(태조3년)에 처음 발견한 후 줄곧 시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무려 200여 년 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다. 따라서 역대 국왕들은 종계변무를 해결하는 것을 가장 큰 난제로 여겼으며, 선조 역시 그 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황정욱을 수행하게 된 역관들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자 돈을 모아 홍순언의 보석금을 내주는 대신 종계변무의 일을 부탁했다. 이는 홍순언이 심성도 곧고 역관으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홍순언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연경에 도착했을 때는 그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조선의 국운까지 바꿀 만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선의 사신 일행이 조양문(동문) 앞에 이르렀을 때, 어떤 부부가 애타게 홍순언을 찾고 있었다. 남편은 명나라 예부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석성이었고, 부인은 홍순언과 구면인 류씨 여인이었다. 사연인즉 류씨는 홍순언 덕분에 부모님의 장례를 잘 치르고 석성에게 시집을 갔다. 그 뒤 조선에서 사신이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부부가 홍순언을 애타게 찾았고, 마침내 감격적인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마침 석성은 종계변무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 지위에 있었으므로 홍순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덕분에 선조는 역대 국왕들의 가장 큰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중인인 홍순언은 일약 광국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석성은 병부상서로 승진해 명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었다. 명의 대신들이 조선에 지원병을 파견하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할 때, 석성의 강력한 주장으로 파병이 실현되었다. 이 역시 홍순언과 석성의 특별한 인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 명의 국방과 경제력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석성은 그 책임을 지고 옥에서 숨졌다. 한편 부인 류씨와 두 아들은 석성의 유언에 따라 조선으로 귀화해, 오늘날 해주 석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 『서프라이즈 한국사』 중에서
(이정범 지음 / 풀빛 / 308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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