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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반세기, 실로 긴 세월이다. 1961년 5월 16일, 그날을 기억하는 국민은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이다. “은인자중하던 우리 군은…” 새벽방송이 삼천리강토의 아침잠을 빼앗았다. 재앙인가, 아니면 복음인가. ‘어찌 이런 일이?’라는 경악보다 ‘올 것이 왔다!’라는 수용의 정서가 더욱 컸다. 부산의 양대 신문도 군의 ‘거사’를 환영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혁명공약은 각급 학교의 조회를 여는 시대의 격문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새 시대의 환영사를 쓴 두 신문사의 주필은 구속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병주 국제신문 주필은 혁명재판소의 농단에 긴 세월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고, 그 분노와 수모를 자산으로 삼아 후일 소설가로 변신하여 시대를 호령했다. 몇 달 만에 풀려난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도 불과 3년 후 《세대》지 필화사건으로 울분에 찬 야인의 삶으로 내몰렸다.

5·16은 4·19의 능욕인가? 불과 1년 전 4월 19일, 학생의 피로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의 승리는 총칼을 앞세운 군사쿠데타 앞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탄식도 있었다. 이러한 정서는 군사독재가 장기화되면서 소급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애당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민족의 비극이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곧바로 혁명인가”, “승자는 관군, 패자는 역도”,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정당화되는가”. 각종 논변이 암울한 겨울공화국의 자조自嘲가 되었다. 세월 따라 개정을 거듭한 헌법도 혁명과 단순한 사건 사이에 표박했다. 4·19와 5·16, 두 역사적 사건의 좌표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그것은 현세를 넘어 후세에 넘겨줄 이월부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50년을 종합하는 잠정적인 중간결산의 변은 필요할지 모른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60년은 성공한 역사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기적이라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얻고 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기적으로까지 부르는 빛나는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4·19로 상징되는 국민의 민주의식과 5·16 군사정부의 주도 아래 정착한 근대화, 산업화의 사회구조가 아닌가? 둘 중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오늘의 한국이 가능했을까?

정권 따라 진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적어도 더 이상 군사쿠데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민주세상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상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비상하여 세계최대의 부국 반열에 명함을 내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경제적 성공이 당시 수준의 민주의식만으로 가능했을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 자유당 독재의 폐해를 이처럼 간결하게 지적하는 구호가 또 어디 있었을까. 단순 생존을 극복한 일상의 안정, 그를 넘어선 부의 축적, 그것은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자 인류의 공통된 보편적 욕구다.

4·19와 5·16은 ‘2인 3각’이다. 애초에는 서로 상반되는 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모든 역사는 선 또는 악의 일변도일 수 없다. 정正과 반反이 합合을 이루는 것, 그것이 역사다. 5·16, 구국의 혁명인가. 아니면 권력찬탈을 위한 쿠데타에 불과한 것인가? 굳이 양자택일, 일도양단의 판정을 내려야 할까? 그것도 지금 이 시점에.

모든 혁명이 고귀한 것은 아니고 모든 쿠데타가 곧바로 악이 아닌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역사는 맹목적인 증오도 낭만적인 향수도 경계한다. 4·19 직후에 이 땅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서구적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국민정서의 배경이기도 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한 이면에는 서구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터키와 이집트의 민족혁명에 고무되었던 측면도 있었다. 군대 이외에는 마땅한 개혁세력이 없었던 시대의 한계이기도 했을 것이다.

부산은 박정희 소장의 5·16 구상이 무르익은 곳이기도 하다. “나와 국가와 혁명.” 1963년 그가 남긴 글이다. 자신의 주장대로 4·19정신에 대한 찬양과 그 실패에 대한 실망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사라진 해운대 극동호텔 앞, 선글라스 뒤에 감춘 두 눈으로 먼 바다를 노려보던 한 군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스스로 불행한 군인이라며 자조했던 그의 불행한 죽음이 후세인에게 준 교훈의 의미를 반추하는 일, 그것만은 그를 찬양하든 증오하든 모든 후세인에 공통된 책무일 것이다.


- 『안경환의 시대유감』 중에서
(안경환 지음 / 라이프맵 / 44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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