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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탄생한 나라, 미국
1750년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서로 다른 두세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대륙의 남북에 위치한 극지방과 북아메리카의 초원지대에는 열댓 개의 토착 부족과 연맹이 자치를 누리고 있었고 한편에는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이 작용하는 여러 식민지 지역(대개는 해안 지역)이 있었다. 이들 식민지는 활기가 넘쳤고 인구가 점차 늘어나며 부가 급증했다. 물론 파리와 런던, 리스본과 마드리드의 지배를 받고 있긴 했지만 1750년에 이르자 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전체 경제력은 유럽 본국의 개별 경제력을 능가할 정도로 커졌다.

당시에 호기심을 가장 자극했던 문제는 아메리카가 독립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아메리카가 여러 유럽 국가 중 과연 어느 국가에 속하느냐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7년 전쟁의 결과로 1763년 캐나다의 허드슨 만에서부터 멕시코 만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역이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주민들은 대부분 영국의 지배가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이 끝나자 본국인 영국과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사이에는 이전과 같은 우호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7년 전쟁으로 영국은 국가 부채가 두 배로 늘어났지만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이 빚을 갚는 데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상당수의 아메리카 수입상이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밀수 등 편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1760년대 초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의 평균 세금은 1실링이었던 반면 영국 국민의 평균 세금은 무려 26실링이었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는 결국 식민지 주민의 분노와 반발을 일으켰다.

당시 13개 영국 식민지들은 제각기 의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의회들은 자신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영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아메리카 정착민들은 이미 독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독립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친영파가 대다수였다. 게다가 미국의 13개 식민지에서도 처음에는 영국에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식민지 주민은 주로 영국인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영국과 13개 식민지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1775년 무장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군 수비대와 교전을 시작했다. 반란군의 지도자는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플랜테이션 소유주이자, 일찍이 의용군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에도 참여했던 조지 워싱턴이었다. 처음 열두 달 동안 그가 이끄는 군대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워싱턴은 영국군을 보스턴 항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그럼으로써 영국과의 무력대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워싱턴은 영국의 숙적이자 영국의 지위를 호시탐탐 노리던 프랑스와 에스파냐로부터 중요하고도 은밀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반란군은 대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군이 프랑스의 도움으로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나자, 이제 불똥은 프랑스로 튀었다. 국가 부채는 늘어났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왕은 세금을 인상했다. 그러자 미국 국민들은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민중혁명은 크고 작은 여러 원인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원인은 바로 미국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1789년 7월 성난 민중이 파리 시내를 휩쓸었다. 프랑스 의회는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1791년 국왕 루이 16세가 체포, 구금됨으로써 구체제가 몰락하자 프랑스의 수많은 자유주의자가 환호성을 올렸다. 프랑스는 자신들이 이룩한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혁명을 다른 모든 점령국에도 전파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선언한 뒤 유럽의 다른 주요 군주국들과 전쟁을 벌였다. 본래 프랑스인만을 위한 혁명이었지만, 이제 혁명은 ‘수출품’이 되었다. 그러나 혁명의 주도권은 급진적인 정치가들의 손에서 어느 젊은 군인의 손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1793년 툴롱에서 생애 첫 승전을 거두었을 때의 나폴레옹은 겨우 20대 중반이었다. 1799년 그는 프랑스의 국가원수이자 최고집정관이 되었고 1804년에는 황제가 되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유지하는 것을 거절했다. 이로써 미국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되도록 외면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오랜 전통을 갖게 되었다. 유럽에서 벌어진 소란은 미국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미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에스파냐로부터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강 서부 지역을 탈환한 나폴레옹은 바닥난 국고를 채울 방책으로 1803년 미시시피 강 서부 지역의 영토를 에어커당 3센트를 받고 미국에 팔았다. 이른바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으로 미국은 캐나다에서 멕시코 만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는 물론이고,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강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구입한 영토가 현재 미국 전체 영토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내 그 어떤 국가의 영토보다도 방대했던 이 지역이 만약 여전히 프랑스의 영토로 남았거나 혹은 프랑스계 식민지 주민들이 세운 정부에 의해 다스려졌다면, 아마 지금 미국의 영토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나라가 존재했을 것이다. 동쪽 해안의 나라는 국가에 별과 줄무늬를 집어넣고, 서쪽 내륙의 나라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과연 미국이 이후에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합병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미국은 대서양에 인접한 중간 규모의 나라로 남았을 것이다.

- 『아주 짧은 세계사』 중에서
(제프리 블레이니 지음 / 휴머니스트 / 482쪽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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