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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의 창궐, 전 유럽을 삼켜버리다
페스트는 쥐와 벼룩을 매개체로 하여 전파되고, 또한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른 전염병이다. 중세 유럽은 페스트와의 전쟁, 그리고 굶주림으로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목숨을 잃었다. 이 재앙의 결과로 나타난 사망자와 혼란, 공포 등은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 세계대전보다 더 심각했다.

재앙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
1300년을 전후로 하여 15세기 중후반까지 유럽 각지에서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그 재난은 끔찍하도록 심각하였고 장기간 계속되어 사람들을 절망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기간에는 유럽의 땅이 황무지로 변하고 기온이 점점 내려가면서 폭우가 자주 내려 농업이 쇠퇴하였는데, 이는 심각한 기근을 불러왔다. ‘천벌’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이런 재난의 정점에서 바로 페스트가 나타났고, 유럽 전체를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페스트가 들쥐에게서 집쥐에게로 전염되고, 집쥐의 몸에 있는 벼룩에게 전염되었다가, 이 벼룩이 사람을 물어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다. 페스트는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다.

과거에도 페스트가 북아프리카 각지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고 6세기 중엽에도 유럽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후에는 거의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던 1347년, 쥐의 몸에서 기생하는 벼룩의 여시니아 페스티스라는 세균이 지중해의 각 항구를 거쳐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다. 그리고 1348년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까지, 1349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각지까지 퍼졌으며, 1350년에는 발트 해 연안 국가와 북유럽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후로도 페스트는 1361~1363년, 1369~1371년, 1374~1375년, 1380~1390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재발하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는 선페스트와 페페스트로 나뉘었다. 벼룩이 물어서 전염되는 것은 임파선 페스트로 환자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가 커다랗게 부어올라 이것이 악성궤양으로 변하고, 동시에 환자의 사지에 검은색 반점이 생기고 얼마 뒤 설사가 시작되는데, 설사가 시작되고 3~5일 이내 곧 사망에 이른다. 페페스트는 호흡기를 통하여 전염되는 질병으로 환자가 약 3일 안에 부종이나 각혈 등으로 사망하는데, 사망한 후 피부가 검게 변해서 이 병을 ‘흑사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전날 밤 건강하게 잠이 들고는 밤새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날이 밝아올 때쯤 영원히 숨이 멎어버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또 바다 위에서는 선원들이 잇따라 사망해, 배를 조종할 사람마저 남지 않아 배만 덩그러니 망망대해를 떠도는 일도 있었다.

쥐와 시체로 가득 찬 유럽:
14세기에는 흑사병이 유럽 각지를 휩쓸었는데 도시의 사망률이 농촌보다 높았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사망률이 50%를 넘기도 했다. 그에 따라 시체가 쓰레기처럼 수레 위에 쌓여 옮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335년에 프랑스 툴루즈의 인구가 3만 명이었지만, 1340년에는 8천 명밖에 남지 않았다. 1347~1357년사이, 동노르망디의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30% 줄었고, 1380년에 또 30%가 줄었다. 이탈리아 피스토이아 교외의 농촌 인구는 1340~1380년에 60%나 줄어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14세기 100년 동안 당시 유럽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천5백만 명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현대과학에 따르면, 중세에는 유럽 사회 전체가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생활조건이 열악하였기 때문에 도시의 인프라가 낙후되고 생활환경도 무척 지저분했다. 실내 위생과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여 도시 안에서 사람과 가축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쥐 때문에 재난과 각종 질병이 나타났고, 특히 전염병이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어 1346~1351년에는 흑사병이 유럽 전체를 휩쓴 것이다.

흑사병이 유럽에서 창궐한 또 다른 이유는 쥐의 천적인 고양이가 중세에 천대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에서는 이유 없이 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가 부엉이와 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밤에 소름끼치는 소리로 울고 눈에서 섬뜩한 빛이 난다며, 고양이를 마귀의 화신이자 동조자로 낙인찍었다. 이 영향으로 사람들은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그 탓에 고양이는 흑사병을 정복하는 신성한 동물에서 사악함과 불길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지위가 추락한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경멸하고, 막무가내로 도살하기에 이른다. 교회의 부추김으로 사람들은 고양이를 마치 철천지원수인 양 생각했고, 이 때문에 중세에 고양이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고양이의 재난은 쥐의 범람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4세기 무시무시한 흑사병을 촉발하게 된다.

절망 속의 생활:
이 재앙의 부작용은 엄청난 수의 사망자로 인한 경기 부진에 그치지 않았다. 살아남은 가족들은 대부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미쳐갔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국가는 산처럼 쌓인 시체를 매장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감옥에 수감되었던 죄인들을 석방해야 했다. 유럽의 경제도 파탄 지경에 이르고, 노동력이 감소해 임금은 예전의 두세 배로 급등하였다. 농노들이 노동으로 돈이랑 일용품을 얻고 자급자족의 봉건경제는 점차 자유무역 체제로 전환되었다. 1664년 런던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영국 왕실은 런던을 떠나 옥스퍼드로 피난하였고, 부자들도 짐을 꾸려 런던을 떠났다. 법조계 인사들이 모두 교외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이 시기에 런던에서는 단 한 건의 재판도 열리지 않았다. 1만 채가 넘는 집들이 버려지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판으로 문과 창문을 막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였으며, 환자가 있는 방에 붉은 색으로 십자가를 그려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 『세계사 산책』 중에서
(쑨테 지음 / 일빛 / 680쪽 /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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