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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머나먼 길
12. 머나먼 길


그녀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나도 파리에 머물렀다. 그래도 그녀를 만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최린과 내가 같이 만나기를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사람과 엮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물론 그녀의 행복한 한때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도 지척에서 바라볼 때에 불안감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녀의 어이없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김우영의 귀에 들어갈까 두려운데, 그녀가 난데없이 잡지에 기고한 글에 속내를 드러내버리고 말았다.
‘외도를 하는 것은 부부 사이를 더욱 활기차고 좋게 만들 수도 있다.’
그야말로 조선을 발칵 뒤집을 만한 글이었다. 그런 글이 실렸다는 것을 그녀가 당당하게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후폭풍을 엄청나게 맞게 되리라 알 수 있었다.

파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혜석을 만났다. 혜석이 머무는 호텔에 기별을 해놓고 이틀이 지난 후에야 그녀와 로비라운지에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너무 과하게 표현한 것 아닐까?”
“뭐가? 내 있는 대로 말하는 게 작가 아닌가? 글을 쓰면서 속에도 없는 말이나 쓰기는 싫어.”
“안 쓰는 수도 있지.”
“그러려면 글을 왜 발표하는 건데?”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바로 그녀와 나의 차이이고, 그래서 나는 그녀의 남자가 될 수 없는 거다. 나는 그녀의 세상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한다고 해도 같은 길을 걸어갈 자신도 없다.
“난 내가 행동으로, 말로, 글로 보여줄 거야.”
“뭘 보여준다는 거야?”
“누군가가 먼저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면 내가 걸어가겠어.”
“혜석씨는 겁도 안 나?”
“겁은 나지.”
혜석은 씁쓸하게 웃었다.
“안 무서운 척하지만, 사실 나… 무서워.”
“그럼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즐겨도 되지 않나?”
충분히 즐겨도 된다.
나는 달아나기 바쁘고, 그녀는 싸우느라 바쁘다. 세상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될 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 그녀는 싸우고 나는 달아난다. 그녀는 틀림없이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을 거지만,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남자가 될 수 없는 거다.
“나…”
“응?”
“미국 간다.”
혜석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나 미국사람 된다.”
“아.”
“우습지?”
“사토씨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런데… 사토씨는 아나키스트 아니었나?”
나는 쿡쿡 웃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우스웠다. 나 같은 겁쟁이 놈이 무슨 사상이고 이상이 있을까. 나는 그저 달아날 뿐이다.
“이제 정말 한동안은 못 보겠다.”
“부럽다. 난 사토씨가 부러워.”
“부럽기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뭐 나보다야 혜석씨가 더 잘 살겠지.”
“글세, 그럴까?”
혜석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당연하지. 혜석씨는 강하잖아?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강하잖아.”
“그럴까?”
혜석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어쩌면 그녀도 이 세상이 힘들어서 지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들 이 세상이 쉬울까.
“난 달아나지만 혜석씨는 달아나지 마.”
“아쉽다.”
서로 바라보면서 쓸쓸히 웃었다. 이제 정말 다시는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예감에 가슴속이 바람 속의 나뭇가지처럼 흔들렸다.
“아쉬워하지 마.”
우리는 호텔 현관에서 서로 마주보며 악수를 나누었다. 웃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오랜 친구였지만, 친구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게는 타인에게까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나는 나 하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놈이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는 중인 놈이다. 한마디로 보탬이라고는 되지 않는 놈이다.
“잘 가.”
“잘 지내.”
나는 돌아서서 현관문을 밀치고 나섰다. 찬바람이 눈발을 몰고 가슴속을 휭하니 파고들었다. 춥고 외로웠다. 한겨울의 파리는 너무 춥고 삭막했다.
뒤에 아직 그녀가 서 있을 수도 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어둠과 눈발로 삭막하기만 한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렇게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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