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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폐허
13. 폐허


내가 혜석을 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파리의 작은 호텔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고 돌아선 그날을 잊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접근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미국 한복판에 있었고, 미국의 거대한 뉴욕이라는 도시는 동양의 작은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전해질 만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조선인들과는 전혀 접촉할 수가 없었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땅따먹기 하듯 삼켜버린 일본인들과 서로 친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간혹 시류에 편승해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인물들은 내 쪽에서 피했다. 그리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일본인들도 피했기 때문에 내 주변은 온통 미국인들뿐이었다.
그래도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집안과 교류를 완전히 끊었기 때문에 먹고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일본에서부터 알던 미국인과는 전혀 접촉하지 않아서 먹고사는 일이 벅찼다.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세끼 밥을 찾아먹을 수 있게 되는 데에도 너무 힘이 들었다. 내 팔자가 그래서인지 결국 일하게 된 곳은 미국의 국무성이었다. 국무성에서 제대로 된 직책은 아니고, 그저 허접스러운 일본어로 된 서류나 조선어로 된 서류를 번역하는 비정규직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혼자 천천히 늙어가는 것이 서러웠지만, 내게는 너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위인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혜석의 생각이 나면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쳐서 싸구려 위스키의 힘을 빌려야만 했지만, 그건 그냥 집착이다 싶었다. 그건 내 젊은 날의 비겁하고 나약한 자신에 대한 미련이고 집착일 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 자신의 비겁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내게 어울리게 외롭고 쓸쓸하게 타국 땅에서 늙어 죽기를 바랐다.
그러나 웃기게도 세상은 나 같은 비겁한 놈 하나도 그냥 눈감아주지 않았다.

1931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다. 그로 인해서 미국과 일본은 기나긴 전쟁에 돌입했다. 그 여파로 일본인들은 미국 내의 수용소로 모두 격리되었고, 나는 수용소와 미국 정부 사이에서 통역과 물품관리를 하는 괴로운 일을 해야만 했다. 수용소에서 같은 일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나는 그들과 이질감을 느껴야 했고, 그렇다고 미국인들과도 친해질 수 없는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그렇게 전쟁은 길고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1945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벌써 졌어야 하는 전쟁이었는데, 일본은 수많은 천황의 신민들과 식민지의 생명들을 전장으로 내몰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가 철거되는 때에는 일본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다른 곳이라면 먹고살자고 갔겠지만 -이제는 미국이라는 나라에도 진저리가 났지만- 일본으로만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1950년. 이번에는 조선으로 가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조선은 포화 속에 함몰되어 있었다. 북한은 1950년에 느닷없이 남한을 공격했고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전개되었다.
나는 며칠 고민한 후에 조선으로 가겠다고 했다. 독립을 되찾고 이제 공화국으로 막 첫걸음을 뗀 조선에 터진 전쟁이 내 관심을 끌었고, 내가 알던 조선 사람들도 내 마음을 동하게 했다.
특히 나는 여전히 혜석을 마음 한 편에 간직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제는 머나먼 옛날에 알던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녀는 쉽사리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 지나간 인생이 내게서 떠나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두 번 다시 어느 여자도 사랑할 수 없던 것과 같이, 나는 그녀를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방성 소속의 군무원이 되어 포화 속에 휩쓸려 있는 조선으로 향했다.

1950년 여름, 조선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려 있었다. 북쪽의 공산주의자들은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예상 외로 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엔이 대거 도우려고 나섰지만, 그 시간 동안에 한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나는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럽게 버텨내는 중이었지만, 적어도 일제에 나라를 잃었던 때보다는 나아보였다.
피를 흘리면서 나라를 지켜내는 건 성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긴 세월 동안의 핍박으로 인해 이 사람들은 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나라를 잃었던 기억이 이 사람들을 맹렬히 싸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부산은 꾸역구역 밀려 들어오는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민간인들과 군인들로 뒤죽박죽이 된 가운데, 유엔군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 통역사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다. 내 한국어가 그럭저럭 쓸 만은 했는지, 업무는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었다.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던 놈이어서, 결국 여러 나라의 말들을 조금씩 할 수 있기에 여러 나라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에 유용하게 쓰였다. 그래도 원래가 직업에 애착이 없는 나인지라, 한국땅을 다시 밟은 내게 가장 먼저 가슴에 와 닿은 것은 무엇보다도 혜석의 소식이었다.
혜석은 서울에 살았는데, 전쟁 통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당장에 서울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인민군들에 의해서 낙동강 북쪽은 몽땅 점령당한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씩 반격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엔군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눈에는 절대 바다로 밀려나는 일은 없어 보였다. 한국이, 그러니까 조선이 이렇게 열심히 싸우려고 하는 태도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민족은 낙동강가에서 어린 학생들까지 피를 뿌리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싸우는 민족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위기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부산에서나마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피난민들이 있는 구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피난민들의 가운데가 아니라 바닷가에서 무료하게 책을 읽고 있는 남루한 양복 차림의 한 사내를 발견했다.
바닷가의 시멘트 계단에 다리를 꼬고 앉은 사내의 중절모는 그 끝이 헤져 있었고 안경다리도 철사로 연결한 탓에 상당히 위태로워보였다. 게다가 사내의 구두는 검정색 칠보다 까진 부분이 더 많이 보였다.
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틀림없이 아는 얼굴이었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직업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뿐이다.
“저… 선생님.”
내가 말을 붙이자 사내는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런 눈빛이었다.
“절 모르시겠습니까?”
사내는 잠시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눈길이 위아래로 내 행색을 훑더니 가느다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군부대에 계시나요?”
“전 사토 야타라고 합니다.”
“엇? 사토씨?”
깜짝 놀라서 내 손을 잡던 그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내 이름을 크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지요?”
“아니, 어떻게 일본 사람이 여기에 온 겁니까?”
“전 이제 미국인입니다.”
사내는 표정이 확 밝아지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느새 어깨를 쭉 펴고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 잘되었습니다. 하하.”
뭐가 잘되었다는 건지 모르지만, 사내는 자기가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내가 나의 모국을 버린 것에 대해서 축하를 해주었다.
“우리가…”
“아, 선생님. 모르십니까? 우리는 파리에서 보았죠.”
파리. 그 장소가 나오는 순간, 나는 사내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빙글빙글 돌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럼 선생님은…”
“전 기자였습니다. 그때나 나중이나 쭉 기자였지요. 그때 전 최린 선생님을 취재하느라 갔었다가…”
아. 이제야 이 사람이 누군지 생각났다. 언제인가 최린과 혜석을 비롯한 여러 조선인들이 모여서 만찬을 할 때에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었다. 그때, 혜석 덕분에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때 그 기자분이셨군요.”
나는 혜석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가슴이 약간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아직도 그녀를 이렇게 잊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먼저 바닷가의 작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걸리를 받아주면서 그녀에 대해서 천천히 물어볼 작정이었다. 기자라면 그녀에 대해서 알 것이다.
“말도 마십시오.”
사내는 쓸데없이 고생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방이 되고 나서 친일로 몰려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나는 참을성 있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음속에서는 이제 혜석을 찾아 나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의미 없는 계획들로 오락가락했다. 혜석은 아주 멀리 있을 수도 있고, 바로 지척에 있을 수도 있다.
“선생님. 나혜석 씨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소식을 혹시 아십니까?”
사내가 멈칫했다.
“도통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사내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숨처럼 말했다.
“소식 없는 게 당연하죠. 죽은 사람에게서 무슨 소식이 나오겠습니까?”
쿵, 나는 갑자기 주변이 노랗게 변하면서 멀어져 가는 걸 느꼈다. 잠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득히 먼 곳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안타깝게 죽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디… 뭐 행려병자들 받아주는… 뭐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그런 곳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행려병자가 글쎄… 정말 그렇게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구토를 일으켰다. 바닷가의 작은 술집 앞에서 토하고 또 토했다. 내가 왜 그렇게 토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녀 곁에 있어준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고 사랑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렇게 충격을 받은 거냐.
나는 멍하니 부산의 복잡한 시내를 걸었다. 복잡하고 비루한 풍경들이 다가오고 멀어졌다. 이제까지의 희망에 찬 땅은 이제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폐허 속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혜석이 사라져버린 한국은 폐허, 그 자체였다.
번호 제목 날짜
21 21. 인터뷰 2014년 07월 09일
20 20. 장마 2014년 07월 02일
19 19. 유언 2014년 06월 25일
18 18. 나들이 2014년 06월 18일
17 17. 살을 에이는 바람 2014년 06월 11일
16 16. 차디찬 비 2014년 06월 03일
15 15. 흔적 2014년 05월 28일
14 14. 돋아나는 가시 2014년 05월 21일
13 13. 폐허 2014년 05월 14일
12 12. 머나먼 길 2014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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