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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돋아나는 가시
14. 돋아나는 가시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속속 장비와 병력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서 이제는 북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군속이고 후방 인원이어서 북진에 끼어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하는 일마다 실수를 거듭했고, 마침내 휴가를 내고 몸져누워버렸다.
숙소에 누워서 며칠을 보내기 전에 바닷가에서 만난 사내한테 돈을 좀 주었었다. 다른 것보다 혜석과 아는 사람을 찾아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내는 너무 좋아하면서 금방 알아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사내를 기다렸다. 소식이 오지 않아서 궁금했지만, 몸이 아파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열이 오르고, 자다가 보면 식은땀에 젖은 가운데 깨어나고는 했다.

“차기자라고 하는데요?”
한국인 군속이 와서 사내가 찾아왔음을 알려주었다.
“아, 그래요?”
나는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환자답게 비척 거리면서 숙소를 나섰다. 가을이 깊어졌는데도 바람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부대 정문 앞으로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활기가 살아나서 전쟁의 승리를 미리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정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서 있던 사내가 내게 달려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아프시다고요?”
“아, 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역시 충격이 크셨군요.”
“성과 좀 있습니까?”
사내가 활짝 웃었다.
“있었지요. 나여사의 유작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여기 부산에 있습니까?”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 부산 전체가 엉망진창이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누구를 만나셨습니까?”
“아, 어서 갑시다. 그런데 몸은…?”
“괜찮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시내 책방거리에 있으니 걸어서 가도 됩니다.”
나는 사내가 안내하는 대로 시내로 향했다. 부대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책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이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허름하고 작은 책방으로 들어서자 사내가 말하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의외로 여자였다. 나이가 아직은 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고생 중이라고 해도 그 태가 상당히 곱고 의젓했다.
“당신이 사토씨군요.”
“저를 아십니까?”
“이야기만 들었지요. 사토씨 그림도 본 적이 있어요. 전 혜석이 친구 정희예요.”
“아, 홍정희 씨. 맞습니까?”
나 또한 들은 적이 있는 혜석의 친구였다. 혜석의 도쿄 시절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수원 출신이고 소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했다. 경성에서 생활할 때도 같이 교사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교편을 잡고 계십니까?”
“네. 저냥 천직인걸요. 다른 재주도 없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든 단둘이 이야기할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의 아내를 함부로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남편 분과 함께 어디든 가서…”
정희는 쓸쓸하게 웃었다.
“피난길에 혼자 남았습니다.”
아. 실수를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러니까 피난길에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구나.
“그럼 잠시 시간을 좀 내어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정희는 책방 안에 대고 소리쳤다.
“오라버니, 나 잠시 나가요.”
그러자 안에서 초로의 사내가 흘끗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라.”
나는 사내에게 꾸벅 인사를 해보이고 정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차기자는 다른 볼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내가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못을 박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희를 데리고 보수동 큰길로 나서서 조용한 찻집으로 들어갔다. 피난 중이라고는 하나, 고급 찻집이나 요리집에는 여전히 한국의 돈 많은 유지들이 향락을 즐기고 있었다. 찻집에서는 요리와 맥주를 팔았고 피난민들의 애환과는 거리가 먼 생활들을 했다.
칸이 작게 나누어진 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시키고 맥주도 시켰다. 혜석의 친구라면 그다지 보수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부지고 트인 성격으로 느껴졌다. 요리가 나오고 서로 말없이 맥주 두어 잔을 주고받은 후,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왜 그렇게 연락을 끊으셨어요?”
나는 술잔을 만지면서 머뭇거렸다. 항상 달아나는 내 못난 인생 탓이라고… 그 걸 꼭 말해야 하나.
“혜석이가 힘들 때, 많이 이야기했어요. 곁에 있으면 의논이라도 해볼 텐데 하고…”
“전, 미국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수용소에 갇혀버렸지요.”
나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파리에 있는 혜석을 두고 미국으로 가버린 것인데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혜석 때문에 달아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내 한 몸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실어가 버린 것이니, 그게 도망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이야기네요.”
정희는 한숨을 쉬며 뒤로 기대앉아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혜석이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곁에서 내내 지켜보았네요.”
정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는 참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친구들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들이었죠. 이 세상을 우리가 어찌 해보려고 드는…
혜석이는 어려서부터 우리 중에서도 특별났어요. 우리는 무슨 일이든 이겨내지를 못했지만 혜석이는 항상 이겨냈어요. 학교도 제일 우수하게 마치고 도쿄로 유학을 간 것만 보아도 얼마나 지독스러운지 알 수 있죠.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벌써 신문에 글도 발표하고 이름도 여러 번 오르내리고, 우리는 따라갈 엄두가 안 나는 참 멋진 친구였죠.
우리는 혜석이 뒤를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멋지게 살아내야지, 우리도 여성운동에 앞장설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혜석이의 흉내를 내려고 들었죠. 그런데 사실 그런 거, 어린 시절 꿈에 불과하잖아요? 조선 땅, 이 세상이 남자들 세상인데 그런 게 어림이나 있는 소리인가요? 모두들 적당히 하고 말았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남자들 눈치 보면서 사는 거죠. 참 모순이지만요, 여성을 위해 나서서 떠들면 제일 싫어하는 게 여자들이에요. 혜석이는 그런 면에서 겁도 없이 달려들었죠.
처음 경성에서 여류화가로 명성을 날리는데, 그때는 사토씨도 알 거예요. 혜석이가 그러더군요.
‘여성이니까 알아준다는 건 참 비위 상하는 일이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여성도 남자들 못지않게 뭐든 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정말 그랬어요. 혜석이는 남자들과 경쟁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가장 큰 건 여성으로서 모두가 보고 자각하도록 내가 가장 맨 앞에 나서겠다. 내가 길이 되겠다. 정말 혜석이는 그렇게 했어요. 그림과 글로 이 세상에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죠. 생각은 했으나, 입 밖에 내지는 못하는 말들, 금지된 말들을 세상에 대고 거침없이 해댄 거예요.
웬일인지 세상이 다들 박수를 쳐주더군요. 미술계도, 언론계도, 심지어는 혜석이 신랑도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시집 식구들도 대우를 참 잘해주었어요. 그런데 그게 존중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건 말하자면 강아지들이 재주를 부리면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먹이를 주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어요. 집에 강아지 기르세요? 안 키우시는군요. 한번 키워보시면 알아요. 강아지가 재롱을 떨면 예뻐하고 아껴주지만, 마치 부모라도 된 듯이 아껴주고 사랑해주지만, 강아지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잖아요?
정말 동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국 땅에 없을 거예요. 난 일찌감치 그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순종했죠. 편하게 사랑받고 사는 법을 터득하고, 아주 편안하게 사랑받으면서 살았어요. 억울해도 참고, 불공평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내게 주어진 것들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죠. 나만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 거반이 그래요.
그런데 혜석이만 다르니까, 그게 얼마나 남자들 눈에 싫겠어요? 게다가 자기들은 못 하는 걸 혜석이는 하니까 그게 같은 여자들도 싫은 거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속이잖아요. 그래야 살아남죠. 자기 못난 걸 자기 스스로에게 감추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맞다고 자꾸만 자기한테도 최면을 걸어요. 그러면 정말 그게 옳게 느껴지는 단계가 와요. 그러면 그게 살아가는 힘도 되고, 또 남자들한테 사랑을 받게 되요. 세상 사람들이 예뻐해준다고요. 말 잘 듣는 노예를, 칭찬에 목이 마른 노예를 어느 주인이 싫어하겠어요?
누구나 그렇게 말하죠. 여자가 먼저 잘못을 한 게 아니냐? 여자가 어디서 감히 서방질이냐? 남자가 한다고 여자도 하냐? 혜석이는 잡지에 당당하게 발표했어요.
‘너희 사내들 웃기지 않냐? 자기네들은 계집을 몇 명이나 두고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여자가 다른 남자를 두면 난리를 치니, 너희들 위선 떠는 꼴이 가증스럽다.’
물론 혜석이도 어리석은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황당한 글을 발표했죠. 세상에 대고 절대로 여성으로서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를 뱉어내버린 거예요.
‘아이를 낳는 것이 지옥을 경험한 듯하고, 젖먹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이가 원수같이 보인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여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게다가 혜석이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까 아이로 인해서 힘이 더 들었겠지요.
사실은 혜석이처럼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여자들도 아이를 낳는 건 지옥을 맛보는 고통이고, 젖먹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매일 몸살이 날 지경이죠. 그건 세상 어느 여자나 다 느끼는 공통의 고통이에요. 그런데 사회는 여자들이 그런 걸 입에 담는 것에 대해서 거의 경기를 일으키죠. 누가 반박했더군요. 그냥 반박이 아니라, 혜석이를 마치 모성애도 없는 하등 동물처럼 취급했어요.
‘모성애도 없는 어미가 사람인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혜석이는 지지 않고 대들었죠.
‘아이 낳는 여자 입장에서 말한 거다. 남자들이 여기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느냐?’
혜석이는 정말 그런 때는 바보천치 같았어요. 내가 편지로 엄청 나무랐죠.
‘네가 천치 아니라면,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해라. 나처럼.’
아 참, 미국 계셨다면서요? 혜석이가 미국 갔었던 건 아세요? 우영씨랑 같이 미국에 갔다가 별로 좋지 않았는지 곧바로 귀국했어요. 미국에서 유학생들이 우영씨를 친일파라고 해서 모욕을 많이 당한 듯해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영씨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만주 안동에 살 때도 사실 혜석이네 부부는 독립투사들을 많이 도왔거든요. 외교관 신분을 이용해서 무기도 감춰주고 며칠씩 묵었다가 가게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신분을 보장한다는 증명서도 발급해주는 역할을 했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기분 나쁘지는 않죠? 사토씨는 다르다고 듣긴 했어요. 혜석이가 그러더군요. 천황을 싫어하는 일본사람이라고요. 아무튼 그 충격이 커서인지, 우영씨는 귀국해서 일본의 외무성 자리를 거절하고 변호사로 일했어요. 사정이 좋지 않아서 우영씨는 경성에 머물고, 혜석이는 동해 집에서 시집 식구들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죠.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었어요. 우영씨 귀에 바로 혜석이와 최린의 이야기가 들어간 거예요. 그게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여러 사람이 알게 했으니, 혜석이도 조심성이 없었던 거죠.
혜석이가 유럽에서 바람 피웠다고 해서 우영씨는 참 많이 창피했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예요. 우영씨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건 다른 여자가 생겨서잖아요? 여자가 생기기 전에는 그냥저냥 경성에 머물면서 자기 마음대로 바람을 피우고 다니면서 잘도 지냈어요. 온갖 기생들이 우영씨가 묵는 여관에 들락대는 건 우리 친구들, 그러니까 우영씨가 혜석이 남편이라는 걸 아는 친구들은 죄다 알았다고 봐야지요.
그렇지만 혜석이는 동래에서 시집 식구들과 아이를 키우면서 거의 작품활동도 하지 못했어요. 혜석이에게는 그런 생활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혜석이는 아이들 생각해서 잘 견뎌 냈어요. 아이 키우는 고통을 글로 썼다고 해서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즈음부터 우영씨는 마침내 이혼을 하자고 혜석이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우영씨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긴 거죠. 그냥 어울려 놀던 여자가 아니라, 같이 살고 싶은 여자가 생긴 거죠. 혜석이는 이혼 요구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우영씨만이 아니라, 우영씨네 집안 식구들이 전부 나서서 혜석이한테 이혼을 강요했어요. 시집 식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혜석이를 괴롭혔죠. 동네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화냥년 아직도 버티고 있냐는 둥 소리를 해가면서요. 게다가 시어머니는 아이들과 혜석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끼고 돌았어요. 혜석이는 그야말로 적군에 사로잡힌 포로와도 같은 신세로 지내야 했죠.
과장이 아니예요. 이런 이야기는 전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혜석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문제지만요. 그때는 정말 죽을 만치 힘들었대요. 우영씨는 동래에 내려와도 혜석이가 사는 집에는 오지도 않고, 누이네 집에서 아이들만 불러다가 보고는 그냥 올라가 버리고는 했다니까.
그러다가 결국 혜석이가 손을 들었어요. 그래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대신, 한 해 동안은 서로 재가하지 않기로 제안했어요. 일 년 후에 다시 만나서 서로가 진정이 되면 복원하자는 거였죠. 그렇게 해서 혜석이는 이혼하게 된 거예요.

“최린과는 어떻게…?”
“결말을 물으시는 건가요?”
내 질문이 이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희는 애매한 표정으로 되묻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혜석이는 남자 운이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뭐, 우리 조선 여자들이 대개 다 그렇지만요.”
나는 최린이라는 인물이 아주 오래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어서였다. 그는 한때, 그러니까 1919년에는 만세운동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했지만, 그 후로는 이미 변절되어서 총독부의 숨겨진 쥐노릇을 했다.
그에 비해서 김우영은 그래도 상당한 기간 동안 정신을 지켰다. 나중에야 따져보게 된 거지만, 김우영이 변절하지 않은 기간은 혜석과 살던 때까지였다.
“최린은 씨를 붙여주고 싶지도 않네요. 이혼 이전의 이야기지만, 혜석이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움이라도 좀 청해볼까 하고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편지를 보냈어요.”
정희의 얼굴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랬는데 그걸 그대로 자기 친구를 통해서 우영씨의 손에 들어가게 했어요. 생각을 해보세요. 그냥 싫으면 안 받은 편지로 해버리면 그만이지, 그걸 남편한테 전하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모르겠다. 그런 쓰레기 같은 심리에 대해서는 내 평생 모를 것 같다.
“그 일로 인해서 혜석이는 정말 엄청난 타격을 받았죠. 이혼에 대해서 변명도 못할 지경이 되었던 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어요.”
정희는 그렇게 말하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핸드백을 뒤졌다.
“난리 와중이라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여기 이 번호로 연락 한번 해보세요. 최린하고 관계는 이분이 잘 알아요.”
나는 쪽지를 받아서 들여다보았다. 서울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소완규가 누굽니까?”
“친구지요. 혜석이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남매라고 해도 좋을…”
나는 전화번호 쪽지를 챙겨넣었다.
“그러면 혜석을 정희씨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경석 오라버니가 사는 봉천에 가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왔을 때에 나를 찾아와서 만났어요. 같이 서류를 만들려고 다녔지요.”
“이혼 서류는 이미…”
“그나마 서약서가 있으니까 그걸 내밀려고 했죠. 동래의 재산이 전부 우영씨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양심 없이 맨손으로 나가라 하더군요.”
“그래서 함께 다닌 겁니까?”
“그랬죠. 재산분할 문제로 우영씨가 사는 곳을 찾아갔는데, 이미 다른 여자를 새로 들이고 아이들까지 같이 살고 있더군요.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니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싶어지게 되었죠. 나 역시도 이제는 바랄 것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혜석이는 씩씩했어요. 기가 죽지 않았죠. 내가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씩씩했어요. 혜석이에게는 그림이 있었으니까 그게 힘을 주어서 견뎌 낼 수도 있고 기가 죽지도 않은 거지요.”
모처럼 이야기하던 정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치 그 좋은 날들을 반추하는 것처럼.
“그때의 혜석인 누가 뭐래도 멋져 보였어요. 비록 혼자가 되었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자기가 나선 인생을 한 점 후회도 하지 않고 화가로서 멋지게 살아갔어요. 그림을 그리려고 금강산에 들어갔어요. 금강산에 들어가던 때에 짐을 같이 챙기고는… 그게 마지막이에요. 나도 조금 멀리 이사를 한 까닭에.”
정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뭐하러 그렇게 찾아다니세요? 어차피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나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몸이 아팠지만, 술이 필요했다. 왜 찾아다니는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어째서 이렇게 달아나기에만 바쁜 것일까.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 전쟁은 곧 끝날 것 같다. 그러니까 가서 찾아보자.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있어야 목적이 생긴다지만,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저 그녀의 흔적이라고 찾아내고 싶다. 흔적이 내게 무엇을 주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흔적이라도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날 동안 그녀를 부여잡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일본에 가고 싶어졌다. 나와 그녀가 함께 여행을 다니던 곳. 이제는 달아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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