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소개 회원가입 단체가입안내 KB카드 VVIP 회원인증 이용안내 회원FAQ 도서요약 공지사항
키워드
전체카테고리 보기
ID/PW찾기 l 보안접속
이용권 등록 회원가입
책에서 배우는 경영사례
북 & 프리즘
사랑하는 가족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수필이 좋다
영혼의 보금자리
리더들의 자녀교육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소설이 좋다
연재소설 프리랜서
연재소설 나혜석
골프 칼럼 베스트 7
서평칼럼
책 속으로
떠나자! 책 속의 여행자
생활 상식
우리말 잡학사전
영어잡학사전
 
90일간의 세계일주
아름다운 만남
북 미리보기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
섀클턴의 파워 리더십
법령과 함께 떠나는 1박2일
 
안티베어 카툰
 
지난컨텐츠 보기
전체세미나
마포나비
주식투자 -하제누리 편
책으로 소통하는 세상
저자와의 만남 동영상
컬럼니스트 최종옥의 서평칼럼
가정통신문
1학년 | 2학년
3학년 | 4학년
5학년 | 6학년
독서퀴즈 | 교과어휘 퀴즈
독서이력 | 독서교실
글쓰기  
 
 
20. 장마
20. 장마


비는 매일 쉬지 않고 내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비에 젖어 축축한 거리가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스나쿠에 가서 술을 팔았다.
전시회에 대한 기사는 다시 들춰보지도 않았다. 다비식 이후로는 돌아보기도 싫은 게 나혜석에 대한 자료였다. 제일 큰 문제는 불면증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거 뭐야?”
손님이 슬쩍 건네주는 약봉지를 본 경희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약.”
“무슨 약? 왜 손님한테 약을 받아?”
“의사야. 그래서 좀 부탁했어.”
“약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병원 처방도 아닌 약이 뭔데?”
“자살이라도 할까 봐 그러냐? 미친 년.”
“수면제야?”
경희는 천상 기자다. 한 마디만 들으면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다.
“그래. 도무지 잠이 안 와서.”
“수면유도제는 약국에서 팔잖아. 유도제로 안 되는 거야?”
“안 되네. 잠을 못 자서 어지러워.”
처음에는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을 청했지만, 점차 수면유도제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다음에는 수면제가 필요했는데, 수면제는 쉽게 처방되지 않았다. 그래서 단골손님 중에서 의사 하나를 잡고 부탁했다.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처방 받으러 가지 못한다고 해두었다. 그다지 나쁜 약은 아니니까 한 번에 다량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조금씩 받고 있다.
“기사는?”
“아직.”
“뭐? 이제 내야 해. 전시회도 다 끝났는데 어쩌자고 그러냐?”
“해볼게, 어쨌든.”
“주말 특집이야. 그 전에 넘겨라.”
나는 맥주로 수면제를 삼켰다.
“야. 가게도 아직 안 끝났는데 그래도 돼?”
“그래도 돼. 전혀 잠 안 온다. 걱정 마라.”
경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울증은 아니지?”
“아냐. 그냥 불면증이야.”
손님들이 들어왔다. 경희는 백을 들고 일어나면서 손님들에게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비위도 좋고 센스도 있는 년이다.
“갈게.”
나는 경희를 보내고 난 후, 손님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술잔을 내놓았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서 도저히 손님들을 향해 웃어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래. 나답지 않게. 세상 걱정 없이 살기로 해놓고. 도대체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난 걸까.’
나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자꾸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애써 누르려고 노력했다.

자료를 다시 들춘 것은 순전히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손님 술을 빼앗아 마시고 수면제도 한 알 더 삼켰지만, 가게가 끝나고 새벽 거리로 나오면 정신이 멀쩡해졌다.
비라도 그쳤으면. 도시는 종일 비가 내려서 어디나 빗물에 잠겨 있다. 우산을 들고 철벅대면서 길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내가 사는 집 앞에 도착한다. 나는 내 집에 도착한 것에 화들짝 놀라서 다시 뒤로 돌아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물 먹은 스펀지 같은 거리를 나도 같이 물 먹은 스펀지가 되어서 하늘이 뿌옇게 변하고 네온사인이 빛을 잃을 때쯤이면 이제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집이 눈앞에 나타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날이 밝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섞여서 걷고 싶지는 않다. 하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상한 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잠들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내 집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기 시작하면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머리가 아프고 힘들어서 옷을 벗는 간단한 일조차 하기 어렵다. 순전히 그래서 다시 자료를 들췄다. 그러자 처음으로 잠이 왔다. 정리하던 자료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꿈은 시작됐다.

내 손이 떨린다. 눈앞의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흐릿하지만 아주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캔버스 앞에 있다. 붓을 든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손이 떨린다. 어깨에 힘을 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를 그리는 거야. 이 풍경은 나야. 그림은 나야.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나를 쳐다본다. 사람들로 인해 길고 긴 터널이 생겼다. 두려워서 걸어 나갈 수가 없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밝은 풍경이 보일 텐데. 용기를 내야지. 용기를 내자.
사람들의 무서운 눈. 나를 노려보는 수많은 눈들. 욕설들. 나를 지르는 욕설들.

문득 눈을 뜬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어느 세계로 빠져들었다가 나온 것만 같다. 다시 잘래. 너무 힘들어서 다시 자야만 해.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자료를 들춘다. 자료들을 읽어가면서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도대체 뭐해?”
“아, 지금 몇 신데?”
“미친 년. 지금까지 잔 거야? 오늘 기사 주는 날이잖아?”
“그래. 줄게.”
“오호? 다 한 거구나? 그래서 밤을 새워서 일어나지 못했구나?”
“몇 시냐니까?”
“일곱 시. 앞으로 갈게. 차 가지고 갈게.”
“차?”
“아래로 내려와 있어. 기사 잊지 말고 챙기고.”
나는 노트북을 켜려고 했는데 이미 켜져 있었다. 그러니까 끄지 않고 잠이 들었나보다. 노트북에서 마무리한 기사를 유에스비에 담고 일어났다. 샤워가 하고 싶었지만, 경희가 기다릴 것 같아서 그냥 고양이세수를 하고 옷을 찾았다. 어제 벗어 던진 채로 그대로인 옷을 다시 입었다.
우산을 들고 아래로 내려가서 현관 기둥에 기대섰다. 비는 지겹게도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장마니까. 장마라서 그냥 내리는 거지, 내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해서 내리는 건 아니다. 이 세상은 나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연관이 있을 거라고 착각할 필요는 없다.
물을 튀기면서 경희의 작은 차가 나타났다. 뛰어나가서 문을 열었지만 차 안에 잡동사니가 가득해서 다 치워내고 올라타야 했다.
“어디 가려고 차를 가져왔어?”
“우리 사무실로 가자.”
“응?”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어디로 가 봐야 편할 리가 없잖아. 같이 마무리하는 데에는 사무실이 최고지.”
“이 꼴로?”
경희가 흘끗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뭐가 어때서?”
“진땀을 흘리면서 잤는데 씻지도 못했어.”
“괜찮아. 다들 퇴근했을 거야.”
“응. 다행이네.”

경희네 사무실로 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경희는 유에스비를 꽂은 후, 나를 돌아보면서 싱긋 웃었다.
“결과는?”
“무슨 결과?”
“진품들이었어?”
“확인불가.”
“뭐?”
“보면 알아.”
경희가 기사 내용을 들여다보는 동안 창가에 앉아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내가 제대로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꿈을 꾸듯이 썼다. 그리고 그냥 들고 나왔다. 내용이 이상하다고 하면 수정을 하든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적당히 ‘네가 써라’ 할 참이었다. 그런데 경희가 놀란 듯이 소리쳤다.
“이게 다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나다니?”
“우와아! 이거 다 네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이니? 아니면 자료가 있는 거니?”
“과장 좀 하지 마.”
“과장이라니? 이건 정말 놀라운 걸?”
“그러니까 결국 전시회를 열었던 여자가 사토 야타라는 화가의 손녀고, 전시했던 그림들은 이미 불태워져서 사라져 버렸으니 진품이든 가품이든 상관없지 않느냐?”
“그게 꼭 결정이 되어있어야 하나?”
“아니, 아니지.”
경희는 호들갑을 떨면서 일어나더니 머그컵에 커피를 가득 따라 들고 내 옆으로 왔다.
“그 이야기가 아냐. 이 정도라면 진품이든 가품이든 상관없지.”
“내가 들은 그대로 적은 거야. 이 세상 누구도 진품인지 가품인지 이제 더 이상 확인할 방법도 없어. 그리고 확인할 필요도 없잖아.”
“오오오, 놀라워라.”
“과장하지 말라니까?”
경희는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나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나는 경희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에 그 문장은 뭐야?”
“마지막 문장?”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며 피식 웃었다.
“안 어울리지? 빼버려도 돼.”
“빼고 안 빼고가 아니라, 무슨 뜻이냐는 말이야. 이것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당신처럼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한 번 세상과 싸워보려고 한다는 것을. 그런 상황이 만들어질까 두려워하는 내 친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귀국할 거야?”
“그럴까 해.”
“까발리려고 그래?”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뭘 더 까발려?”
“그렇지? 하지만 넌 가타부타 말없이 사라져버렸잖아?”
그랬지. 무작정 도주. 야반도주.
“다시 나타나려고?”
“그럴까 봐.”
경희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경희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나오면 잘난 현우는 뭐라고 하려나. 그 남자의 반응이 더 궁금하다. 그에게 먼저 말했어야 할까.
“그 기사 나 먼저 줘.”
“뭐?”
경희의 제안에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기사로 쓰게 나하고 인터뷰 좀 하자. 친구 사이 말고 정식으로.”
“기사 먼저 내자는 거야?”
“그래. 아니면 너 귀국하는 걸 누가 공항에서 지켜 선다니?”
“그게 아니라, 소송을 해보려는데?”
“소, 소송?”
“그래. 그림 돌려주세요, 그런 소송.”
“너, 너…”
경희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태연히 그녀의 시선을 맞받았다. 네 시선 정도는 받아줄 수 있어. 아니, 이제부터 온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다 받아줄 수 있어.
“너… 충격 먹은 거니?”
“무슨 충격?”
“소송하면 이기겠니?”
“이기든 지든, 할 거야.”
“돈 받아먹었다면서?”
“돌려주면 되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숨어서 살아보려고 모아 놓은 돈도 있고, 내후년까지 학교 다니려고 모아놓은 돈도 있어. 그리고…”
나는 경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한테도 좀 빌려야겠다.”
“오오오!”
경희는 두 팔을 하늘로 뻗고 소파로 자빠졌다.
“현우씨도 좀 빌려줄 수 있을 거야. 집에도 좀 부탁하고…”
“여희야.”
“융자도 알아보려고 해. 내 신용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여희야.”
“응?”
“너 요즘 이런 생각하느라 잠 못 잔 거니?”
“그건 아니야. 불면증이랑 상관없어.”
“상관있을 거야.”
“아냐. 상관없어.”
“어쨌든 좋아. 생각 좀 해보자.”
나는 발딱 일어났다. 아무래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리저리 설득을 당하고 시달리기는 싫다.
“갈게.”
“왜?”
“가서 좀 쉬려고.”
“가게는?”
“이제 그만두어야지.”
“아, 그렇지.”
경희가 애매하게 웃었다.
“그래도 좀 천천히 하지?”
“뭘?”
“뭐든.”
“일단 가게는 그만둘래.”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혼자 갈게. 택시 탈 거야.”
“기다려. 이것아.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경희가 따라서 일어났다.

빗속을 내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 둘은 잠시 말없이 있었다. 갑자기 경희가 차를 심하게 몰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서 돌아보는데, 경희는 태연히 딴소리를 했다.
“차들 없어서 좋다. 드라이브 좀 하자.”
비가 너무 와서 차가 없는데, 이 미친 듯한 빗속에 드라이브라니.
“어디로 갈까?”
난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다. 나로 인해 경희도 상당히 심란한 모양이다.
차는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텅 빈 밤거리를 달렸다. 다른 밤에 비해서 어두운 밤이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서 도시는 네온사인을 잃었다.

요코하마의 미라지21은 비바람 속에서 활기를 잃고 가라앉아 있었다. 부두 어느 곳에도 사람의 모습이나, 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먼 바다의 배들만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이 빗속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내려주면서 경희가 한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수면제 먹지 마라.”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고통을 피하지 말고 이겨내라는 말.
나는 경희를 바라보며 뜻 없이 웃었다.

번호 제목 날짜
21 21. 인터뷰 2014년 07월 09일
20 20. 장마 2014년 07월 02일
19 19. 유언 2014년 06월 25일
18 18. 나들이 2014년 06월 18일
17 17. 살을 에이는 바람 2014년 06월 11일
16 16. 차디찬 비 2014년 06월 03일
15 15. 흔적 2014년 05월 28일
14 14. 돋아나는 가시 2014년 05월 21일
13 13. 폐허 2014년 05월 14일
12 12. 머나먼 길 2014년 05월 07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