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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 십자포화(Cross fire)
1.

CCTV에 걸려들었던 위치에서 반경 5 km 이내를 완전히 포위하고 좁히는 작업을 밤이 새도록 했다. 그리고 아무 성과도 없는 상태로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는 원룸들과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원룸과 부동산을 뒤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상한 사람들을 탐문했지만, 수상한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가 바로 이 동네였다. 게다가 경찰들이 온통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마작방에서부터 노래방까지 벌집을 건드린 듯 소란스러워졌다.
기관원들이 사방에 깔려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두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루한 하루가 다 지나갈 쯤에 드디어 연락이 왔다.
‘검사님. 찾은 것 같습니다. 부동산 노인의 말로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야? 부동산이야? 섣불리 접근하는 건 위험해. 지원을 요청해.”
‘부동산에서 나와 지금 목적지로 가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지도 보내. 나도 간다.”
영란의 태블릿으로 지도를 받고 차를 몰아서 목적지로 향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다시 내려서 걸어야 했다. 골목 어귀에는 이미 경찰들이 쫙 깔려 있고 주민들은 통행을 통제 받고 있었다.
대운이 골목 끝에서 다른 형사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두진이 다가가자, 대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렇지만 안에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감식반 불렀나?”
“안에 와 있습니다.”
대운이 안내해주는 대로 쪽방에 들어섰다. 감식반에서 지문을 뜨고 쓰레기들을 뒤지는 중이었다.
“나온 게 없어요?”
“쓰레기뿐입니다. 그리고 이게 뭘 뜻하는지는 몰라도…”
감식반원 하나가 쪽지를 보여주었다.
“전화번호인가?”
“지역 번호가 없는데요?”
“그래도 일곱 자리 아닌가?”
“서울은 아니겠네요.”
“핸드폰도 아니지.”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가 가고, 곧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거기가 어디요?”
‘네?’
“거기가 어디냐고요.”
‘태평이에요. 어디신지도 모르고 전화하셨어요?’
“어디 있는 뭐하는 곳이오?”
‘누구시죠?’
“검찰입니다.”
전화가 끊겨버렸다. 따라서 들어서는 대운에게 쪽지를 건넸다.
“어딘지 알아봐.”



2.

태평은 분당에 있는 술집 이름이었다. 왜 이런 술집 전화번호가 거기 있었을까? 술집이나 드나들 인물도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무작정 쳐들어가면 안 되겠지?”
“뒷조사 좀 먼저 해보죠.”
영란이 전화를 걸며 말했다.
“그쪽에 동기가 있어요.”
“그쪽이 어느 쪽이야?”
“여성계.”
영란이 대운을 돌아보았다.
“남형사가 유흥은 전문 아닌가?”
“갑자기 내가 왜…?”
“그런 곳 좋아하잖아요?”
“아니, 그런 식으로 사람을… 검사님 앞에서…”
“내가 대운씨 성향을 더 잘 알거든?”
두진이 웃으면서 대운을 가리켰다.
“가서 한번 놀고 오지?”
“어어, 검사님. 여기서 이러시면…”
영란이 돌아보며 말했다.
“남형사가 갈 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수준?”
“아주 고급 요정이에요.”
대운과 영란이 동시에 두진을 돌아보았다.
“어, 이런…”
두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영란이 얄밉게 웃었다.
“경험 많으시잖아요?”
“무, 무슨…”
징계사유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얼굴이 붉어졌다.
“검사님들은 처음 부임하면 그런 곳에서 단합대회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누가 그래? 김팀장은 영화를 너무 봐서 문제야.”
두진이 들고 있던 서류로 영란을 때릴 듯이 위협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대운이 자기 가슴을 쳤다.
“저도요. 두 분 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청결한데요.”
“어이구. 인마들아. 팀웍 죽인다.”
두진은 두 사람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 김중식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는 이송해야 한다. 법이 있으니까 마냥 잡아둘 수는 없다. 구치소가 멀지는 않지만, 일단 떠나고 나면 지금처럼은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지금보다 수많은 입김과 손길이 뻗칠 것이다. 그로 인해서 김중식은 흔들릴 것이다. 그런 경우가 나쁘지는 않게 느껴진다. 김중식이 흔들려야 프리랜서가 불리해진다. 다른 여러 가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그런 문제들은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김중식은 잠이 덜 깬 푸스스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 간발의 차이로 놓쳤습니다.”
김중식이 멈칫했다.
“그래도 덕분에 꼬리는 잡은 것 같습니다. 태평 아시죠?”
“태평?”
김중식의 눈썹이 약간 떨렸다.
“아시잖아요?”
두진은 순간적으로 김중식이 태평을 안다고 확신했다. 뒷조사 들어가기 전에 찔러보기였는데, 제대로 반응하는 것 같다.
“거기 이야기나 좀 들읍시다. 김중식씨도 거기 주인이랑 친하잖아요?”
김중식이 물끄러미 두진을 쳐다보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을 들썩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거기 여주인이 도대체 누구 여자예요? 하도 여럿이 오가니까 난 그게 헷갈리던데…”
“그야 당연히 나의원님 여자지. 우리가 다니는 건 그저 나의원님 생각해서 다녔던 거죠. 거기가 또 회식 자리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항상 거기 모이는 건 아니잖습니까?”
“평소에야 미조리에 모이지만…”
“술은 주로 거기서 마신다는 거군요.”
“뭐 그냥 그런 단골집이라고 보면 맞죠. 그게 중요합니까?”
“그 술집에 대해서 프리랜서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니 문제지요.”
김중식은 흠칫 놀랐다. 잠시 두진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 안했어요. 전혀 말하지 않았어요.”
“다른 건 죄다 말하면서 그 상황에서 나의원님 이야기를 안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나의원에 대해서야 최의원 라인이니까 다 말했지만, 여자에 대해서나 술집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요.”
두진은 담배를 피워 물고 김중식에게도 하나 주었다.
“내일은 구치소로 가야 합니다. 여기 마냥 계실 수는 없으니까요. 감추고 있는다고 공격당하는 게 무서워서 어서 보내라고 하거든요.”
“압니다.”
김중식은 음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다 뒤집어쓴 건 알아요. 그래도 죄를 많이 지으셨으니 죗값을 받아야죠.”
대꾸 없이 어두운 얼굴로 앉은 김중식을 바라보며, 사실 법만 없다면 죽도록 패주고 싶었다. 이런 작자들은 자기 죄가 아무리 커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이용당하고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이용당한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죄인 줄을 모르는 거다. 살인범이나 살인교사범이나 형량이 같다는 건 알고 있으신가?
악마 같은 놈들.
두진은 담배를 비벼 끄고 조사실을 나왔다. 그동안 충분히 조사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프리랜서를 잡는 데에는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았다. 나머지 진술들도 모두 지우고 막아버리는 비호세력과 매스컴들 덕에 파헤치나 마나였다.
그렇지만 다들 모르는 게 있다. 진실은 언제고 꼭 고개를 내민다. 지금 이렇게 세상이 뒤집어지듯이, 세상을 속인 일들은 언제고 다시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져나오고 세상은 다시 또 뒤집어진다.
영원한 비밀은 본 적이 없다.
“나천수 의원 현재 소재 파악해 봐.”
“예?”
“그 술집 주인 여자하고 나천수 의원이 가까운 사이다.”
“아, 그럼 뭔가 벌어지는 거 아닐까요?”
대운이 일어났다.
“부산스럽게 말고 조용히 가보자. 김팀장은 뒷조사하고, 진형사랑 너는 가서 잠복 좀 해라.”
대운이 옷을 집어 들고 나가는데, 문득 불안감이 스쳤다.
“둘로 안 될 수도 있지 않나?”
“무장하고 가겠습니다.”
“아냐. 믿을 만한 친구들 좀 데리고 가라. 만일을 생각해야지. 내가 너 조의금 낼 일 있냐?”
“여럿 데리고 가면 새어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믿을 놈이 없어?”
“그냥 둘이 가겠습니다.”
대운이 총과 삼단봉을 챙기고 진구에게 전화를 걸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두진은 왜인지 불안해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나 여기 대기하고 있는다? 연락 자주 해.”
“예. 수시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두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의원이 아니면 최의원에게라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설마 오늘 밤에 무슨 일이 터지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두진은 일단 오늘 밤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3.

날은 맑고 달은 밝았다. 네온사인들만 아니라면 별빛도 보일 만한 밤하늘이었다.
성하는 해가 진 후에 천천히 평범한 흰색 소형 승용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특장차나 트럭은 그동안의 흔적 덕분에 검문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귀찮아도 차량을 여러 대 준비해야만 했다. 훔친 차량들을 여기저기 세워두고 차량의 문은 열어두었다. 그중 어느 차는 도난을 당하거나, 경찰에 의해서 제 주인을 찾아가도 충분히 남을 만큼 주변에 배치해두었다.
낮 동안은 내내 잠을 잤다. 어제 밤이 늦도록 배달통에 가지고 있던 도구들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운반하는 내내 오두진 검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매력을 느꼈다.
만만하지 않은 상대다. 모사드도 그림자조차 밟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데, 따돌림을 당해서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불과 서너 명을 데리고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게임 상대로는 아주 적절하다. 그에 비해서 다른 조직들은 쓰레기에 가깝다. 항상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면모를 보였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관리자들의 태도를 그대로 보이고 있다. 그런 상대는 얕은 수작에 강하지만, 자기애가 강해서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상대에게는 약한 법이다.
남의 아이들은 수백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작자들이지만,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처럼 군복을 입고 땀을 흘리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작자들이다.
성하는 그들에게 스스로의 나약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공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게 성하가 판을 흔드는 방법이다. 성가시게 하는 걸림돌은 그냥 두고 본다. 제거를 필요로 할 때가 되면 그때 가서 제거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도 도전했다면, 그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복대처럼 두른 칼집에 칼을 꽂아 넣고 헐렁한 박스티를 입었다. 그 위로 길이가 조금 긴 레인코트를 입고 서류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아직 소음기를 구하지 못해서 권총을 사용하는 건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고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은 만들어 사용할 수 있어도 소음기만은 수작업이 불가능했다.
차를 마지막 지점에 세워놓고 내렸다. 멀리 전철이 다니는 고가 철로 아래로 백화점에서 나오는 인파가 보였다. 성하는 마치 퇴근한 직장인처럼 천천히 인파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마리는 요원 셋과 함께 차에 올랐다. 한 요원은 운전을 맡았고, 자신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조수석에 앉았다.
넷 모두 소음총으로 무장을 했지만, 총기를 사용하는 건 프리랜서와 마주쳤을 때에 한한다. 한국에서 함부로 총질을 했다가는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할 것이다. 사실 총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도 상당히 힘이 들었다. CIA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 땅에서 소음총을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호를 맡겠다고 해서 밀착은 했지만, 사실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전혀 협조해줄 마음이 없었고, 최의원이 이용하는 경호회사 역시 자신들을 백안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알아서 움직여야 했고, 최의원과 그 주변 움직임을 읽어내고 분석하고 스케줄을 잡는 것도 독립적으로 해야만 했다.
다행인 건 그사이의 며칠 동안 프리랜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한국의 검찰과 특수팀, 경찰이 합동으로 몰려들어서 프리랜서를 쫓았다. 물론 그들이 몰려든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프리랜서라면 가자지구에서 모사드가 잡았을 것이다.
“분당 지리 파악했어?”
“숙지했습니다.”
다들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공작에 뛰어난 검은 머리의 외국인들이다. 작전 전에는 지리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미리 숙지하는 건 기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프리랜서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서로 팀웍을 맞춰서 움직이면 그 시너지를 이용해서 상대할 수 있다. 숫자가 모자라지만, 한국이라는 환경이 테러리스트의 활동에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 환경을 적절하게 이용해야 한다. 최의원 주변을 따라다니다 보면 언제고 마주치게 되어있다. 그때, 단 한 번만 제대로 움직이면 된다.
“총 사용할 일 생기면 무조건 쏴. 주변 눈치 보거나,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는 얼핏도 생각하지 마. 프리랜서를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진다. 너희들은 어떤 경우라도 아무 불이익 없이 이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한다.”
셋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운전을 맡은 요원이 차를 몰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나섰다. 멀리 네온사인들이 반짝이는 신도시가 마리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 마주쳤으면 좋겠다. 마리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맞잡았다.



4.

오후 7 시. 밤이 시작되었다. 퇴근한 직장인들과 데이트를 즐기려고 나온 연인들로 거리는 흥겨워졌다. RM은 그렇게 들뜨고 소란스러운 거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사실은 낮부터 근처의 이 거리 저 거리를 수도 없이 배회했다.
태어나고 자란 한국 땅이지만, 복잡한 도시보다는 산이 좋았다. 군생활은 해군에서 잠수만 하다가 나왔고, 정보부에 들어가서는 외국으로만 돌아다녔다. 그리고 TC에게 발탁되어서 청부업자가 된 후에는 아예 한국 땅을 밟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 나라의 거리가 어느 사이엔가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어색하면 작전을 하기에 문제가 너무 많다. 낯선 환경에서 작전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국은 어느 낯선 환경보다 열악하다. 만일의 경우 피할 곳이 없어 보이는 환경이다. 그래서 익숙해지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군용 야전점퍼 안에 갖출 것은 모두 갖췄다. 평소 사용하던 칼과 총과 만일을 생각해서 특수하게 사용하던 연막탄과 고글까지 챙겼다. 가방을 사용하지 않고 그 모든 걸 야전 점퍼 안에 챙겼다. 그렇게 해도 몸을 움직이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차림으로 밀림을 달리고 물속을 헤엄쳤다.
오늘 마주치든 마주치지 않든, 이제부터는 이 차림으로 오래도록 작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마주칠 때에는 꼭 승부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서였다. 죽이거나 죽겠지만, 목숨은 언제나 내놓고 다녔다. 수도 없이 상대를 죽이는 인생인데, 어느 순간에 누군가의 손에 죽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RM은 시계를 들여다보고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운과 진구는 태평의 기와가 얹어진 돌담을 바라보면서 길 건너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렇게 복잡한 시내 한복판에 이런 넓은 술집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오면서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동료 경찰들에게 태평에 대해서 많이 물었다. 그 결과 태평이 아주 유명한 술집이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큰 줄은 몰랐는데, 이거 급당황이다.”
“자, 일단 어떤 인물들이 들어가나 체크해보자.”
진구가 줌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꺼냈다. 대운이 피식 웃었다.
“야, 우리가 누굴 수사하는 거냐?”
“최의원 주변이나 나의원 주변 인물들이 얼마나 오나 봐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여기서 제대로 볼 수는 있는 거냐?”
“뭘?”
“프리랜서가 이렇게 큰 술집에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발견하겠어?”
“사고가 나면 알겠지.”
“누가 죽어야 한다는 거냐?”
“아니. 그냥 조용한 밤이 되면 더 좋지.”
진구가 시계를 보았다.
“밤새우고 철수해야 하는 거냐?”
“설마 의원 나으리들이 밤새 술 마시겠어? 내가 아는데, 대부분 고급 술집들은 열 시 넘어가면 밴드 소리가 안 나요.”
“왜?”
“스캔들 안 일어나게 일찍 마시고 일찍 돌아들 가니까.”
“진짜? 그 양반들은 2 차도 안 나가?”
“나가겠지. 일찍. 몰래. 안 그러겠냐?”
요정 주차장으로 검은색 승용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호원들로 보이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주변을 지키고 서고, 높으신 나으리들이 속속 안으로 들어갔다.
“시국이 시국이니까 다들 경호원하고 같이 움직이네?”
“기관 애들 아냐?”
“모르지. 기관 애들이 나 기관입네, 명찰 달고 다니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고 내려서는 최영석의 모습이 보였다. 진구가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주인공 등장이다.”
“주인공은 나천수 의원 아닌가?”
“그 양반도 방금 왔다.”
나천수 의원이 승용차에서 내려 최의원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후로는 더 이상 들어서는 정치가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정치가만 오는 거 맞아?”
“그거야 모르지. 기업인도 올 수 있고, 뭐 공직자도…”
“제기랄… 막창에 소주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속생각 입 밖에 내지 마라. 처량 맞다.”
대운과 진구는 지리하게 술집의 솟을대문을 지켜보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잠복은 언제나 지루하고 지겹다.



5.

마리는 주차장 반대편에 차를 대고 요원 둘을 내리게 했다. 각자 소음총을 준비하고 귀퉁이를 향해 가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도 내려서 주차장이 바라보이는 위치에서 소음총을 들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대기했다. 만일 프리랜서가 최의원의 라인을 노린다면 오늘이 확실한 D-Day일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총질을 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는 잘 알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보다 더한 일도 이스라엘은 해왔다. 유엔의 병원이나 학교도 공격해보았고, 국제구호선도 침몰시킨 경험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을 세우는 면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뭐든 한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유태인을 건드리지 마라, 유태인은 무소불위다, 이렇게 세상에 공표하는 것과도 같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과 혈맹 이상이고, 그 미국은 유태인들이 운영하는 나라이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으니 유태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한국이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유태인을 건드리면 끝까지 간다. 이 불문율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모사드다. 하물며 한국에서라면 눈 딱 감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나라에서 현재 모사드의 작전에 걸리적대는 건 검사 하나가 전부다. 모사드의 명예를 걸고 해결한다. 방해가 된다면 누구라도 제거한다.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다.
왼쪽 모퉁이의 요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차장에 있는 차량 하나가 확인되었는데, 검찰 수사관들의 차라는 것이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오른쪽 모퉁이의 요원은 눈에 보이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담장 안에서는 사내들이 시절 모르고 파티에 빠져있을 것이다. 안쪽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 들어가보기로 했다. 이미 경호팀들과 협조를 맺고 있어서 가슴에 카드 하나만 달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작은 후문으로 가자, 경호팀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마리를 알아보고 싱긋 웃으며 길을 비켜주었다. 뒷마당으로 들어서자, 한옥의 여기저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쪽이 아닙니다. 저쪽입니다.”
경호팀 사내가 다가와서 멀리 있는 별채를 턱으로 가리켰다.
“따로 떨어져 있어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어서 더 문제는 아니고요?”
“사방이 마당이니까 탁 트여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죠.”
“대신 저격에는 아주 용이하겠는데요?”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그럴 일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마리는 별채를 중심으로 위험 지역이 어디인가 체크하면서 뒷마당에서 앞마당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낮에 체크할 때부터 술집 주변으로는 가까운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먼 건물의 창이 별채의 입구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면 저격의 위험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부산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프리랜서는 사냥용 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총이라면 소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격은 가능하다. 그동안은 프리랜서가 누군가를 저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행적으로 보아 그는 납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게 확실했다.
프리랜서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프리랜서도 무언가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저격할 이유는 없다. 만일 그가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무언가를 폭파한다면 그건 판을 흔드는 수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오늘은 프리랜서가 판을 흔들기에 딱 좋은 날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오늘의 모임을 중시하고 경계할 이유가 없다. 프리랜서가 무리하게 단체로 납치를 감행하거나, 단체 중에서 누군가를 납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모이지 않았을 때에 실행하는 게 훨씬 편하다. 아니면 자택에 침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동안 프리랜서는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얼마 전, 검사 하나가 프리랜서를 추격해서 거의 잡을 수도 있을 정도로 접근했었다. 그런 일이 터지고 나면 프리랜서로서도 무언가 판을 흔들거나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다. 그냥은 자신도 쫓기는 처지이기에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상대가 마냥 자신을 공격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이 그날이 될 수 있다. 판을 뒤집어서 전장을 옮기는 것이다. 마리가 바보가 아니듯이, 검사가 바보가 아니듯이, 프리랜서도 바보가 아니다.
경호하는 사내에게 다가가서 멀찍이 세워져 있는 건물들의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변 건물들은 전부 체크했어요?”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렇게 먼 곳까지?”
“저격에는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데요?”
“아주 멀어요.”
사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저격에 대해서 모르는 것인지 답답했다. 그래서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건물들 주시해.”
“카피.”
한쪽에서 대답이 왔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응답이 없다. 마리는 섬뜩해져서 다시 말했다.
“2 채널 왜 대답 없어?”
응답이 없다.
“1 채널, 2 채널로 가봐. 어서!”
동시에 후문을 향해 달려갔다. 경호팀의 사내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별각 포위해요.”
“뭐요?”
마리는 그냥 달려나갔다. 후문을 나서서 보니, 1 번 채널의 요원이 2 번 채널 방향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마리도 달려가면서 소음총을 꺼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행인들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모퉁이 끝을 향해 먼저 달려가던 채널 1의 요원이 사람들에 막혀서 더는 가지 못하고 멈추어 선 게 보였다. 마리도 멈춰 서버렸다. 행인들이 잔뜩 몰려들어 있어서였다.
정복을 입은 경찰이 길을 건너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는 당황해서 채널 1의 요원에게 말했다.
“그냥 빠져나와요.”
채널 1의 요원이 하는 수 없이 돌아서 마리를 향해 걸어왔다. 다가오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2 채널 다운입니다.”
마리는 세워둔 차를 돌아보았다. 차에서 운전하던 요원이 나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망할!”
마리는 소음총을 품에 감춘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두운 밤거리는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로만 가득했다. 유령 같은 놈. 어디에 있는 거냐?

“뭐라고요?”
대운은 핸드폰을 든 채로 차에서 내렸다. 진구도 놀라서 운전석을 박차고 나왔다. 벌써 별각에서 주차장을 향해 경호팀과 함께 의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각자가 정신없이 자기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운전기사들이 우왕좌왕하고 경호팀은 경호팀대로 주변을 지키면서 의원들을 보호하느라 허둥댔다.
대운과 진구는 갑자기 일어난 변화에 어쩔 줄을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 사고가 난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프리랜서와 마주칠 때면 갑자기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움직여야 할까?”
“아냐. 여기를 지키는 게 우선이지.”
진구는 총을 뽑아들었다. 대운도 총을 뽑아들고 의원들의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뒤로 돌아서 주변을 경계했다. 의원들의 차가 바쁘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대책이 없군.”
대운은 쓴 입맛을 다셨다.

RM은 야전 점퍼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요트용 장갑을 낀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서 소음총을 쥐고 안전핀을 꺾었다. 그의 시선은 내내 모사드의 요원이 쓰러져 있는 반대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자를 공격한다면 눈에 뜨일 것이다. 방금 전 요원을 공격할 때 별각을 바라보는 실수를 범했다. 이제 눈에 뜨이지 않고 다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골목 안으로 좀 더 몸을 숨겼다. 등 뒤는 막다른 골목이고 작은 술집과 카페의 뒷문이다. 혹시나 해서 자리를 잡기 전에 열린 문들이 있나 확인했다. 모두 잠겨있거나, 식료품들이 쌓여 있었다. 허름한 지붕을 기어오르기 전에는 등 뒤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경찰들과 함께 기동대의 차량이 몰려들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 등 뒤를 확인했을 때, 무언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LPG 가스통이 두 개인가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연결선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슬쩍 다시 돌아보았다.
순간, 가스통의 선이 끊어져 있는 걸 알았다. 망할! 다시 몸을 돌리면서 골목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쾅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의 몸은 골목 안에서부터 밖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너무 멀리서 웅얼대는 듯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 뛰는 소리가 들리고, 소음으로 뭉개지더니 서서히 가라앉았다.

마리는 차에 타려다가 채널1의 요원과 함께 납작 엎드렸다. 길 건너 골목에서 폭발이 있었고, 정보부에서 고용한 사내가 튕겨져 나와서 전신주를 들이받는 걸 보았다. 아마 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곧이어 건물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혼란이 가중되었다. 골목 안에서 밖을 향해 터졌으니까 건물 안에서 다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리는 몸을 일으키고 튀어나오는 인물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 안에 있을 것이다. 가스통이 터진 거라면 가스통을 터뜨릴 장소에 있어야 한다. 가스통은 시한폭탄이 아니니까.
채널1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사방으로 흩어져가는 사람들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길을 건넜다. 재킷으로 가린 총은 언제라도 뽑을 수 있게 쥐었다. 이제 피할 길도 없다. 이기든 지든 상대하는 수밖에.
소방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경찰들도 정신없이 다시 그 방향으로 몰려들었다. 혼란 속에 사방으로 움직이는 인파를 주시했다. 어디에도 비슷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어. 공격을 하다가 말고 멈출 리는 없다.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연속해서 공격해야 맞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공격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
차를 향해 다시 걸어가는데, 앞쪽에 대운과 진구가 나타났다. 마리는 재빨리 차로 들어가버렸다. 채널1도 얼른 차에 들어가 앉았다.
대운과 진구는 차를 지나쳐서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마리는 차에 앉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프리랜서라면 이제 치가 떨린다. 가자에서 당할 만큼 당했는데, 결국 한국에 와서도 또 당하고 있다. 한국처럼 치안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지?
그런데 이 나라 정부는 뭐가 그렇게 감출 게 많은 건지, 대대적인 공개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프리랜서에게 목줄을 잡히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리는 알 수 있었다. 프리랜서는 쫓기는 중이 아니라, 무언가를 쫓는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번 일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판을 흔드는 행동이다.
방송국 차량까지 몰려드는 것을 보고 마리는 운전하는 요원에게 말했다.
“서둘러. 빠져나가야지.”



6.

두진은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황당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영란이 모아준 첩보를 보고, 잘하면 프리랜서가 십자포화에 걸려들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과는 십자포화를 당한 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나.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뉴스의 논조는 프리랜서가 의문의 폭발로 죽은 게 아닌가 싶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걸 프리랜서라고 예상하는 모양이다.
“진형사랑 남형사한테 차에 타고 대기하라고 해. 그리고 교통용 CCTV 전부 감시해서 주변에 주차했다가 출발하는 차량 전부 지켜보라고 해.”
두진은 영란에게 말했다. 프리랜서는 그 자리를 차로 빠져나갈 것이다. 러시아워가 지났으니까 분당에서 외곽을 타든, 전용도로를 타든, 아니면 고속도로를 타든, 빠져나가려면 차량을 대기해 놓았을 것이다.
“검문을 피하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까요?”
“기관원들하고 경찰들이 사방에 깔리니까 차로 빨리 나가는 게 더 낫겠지. 대중교통은 숨어들기에 안전한 대신, 한 번 걸려들면 여지없이 갇히니까.”
“검사님은 검문을 별로 신뢰하지 않으시나 봐요.”
영란이 컴퓨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냐. 프리랜서가 검문의 효과가 없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결국 그 말이 그 말이다. 검문에서 걸려드는 범죄자는 극히 드물다. 검문에 의해서 걸려드는 건 초범들이나 얼치기들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우리 경찰들이 특정된 범인은 기가 막히게 잘 잡아왔는데 말이야.”
영란은 사방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고, 두진은 노트북의 지도를 펼쳤다. 내일 아침에는 김중식이 구치소로 가는데, 그를 붙잡고 하나라도 더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경황도 없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상황이 속을 끓게 했다.
그때, 영란이 돌아보며 소리쳤다.
“검사님!”
달려가서 보니, CCTV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던 차로 성큼성큼 가서 올라타는 사내가 잡혔다.
“진형사 보내!”
소리쳤다가 다시 말을 바꿨다.
“둘만 보내지 말고 몽땅 거기로 가도록 유도해!”
CCTV 속의 사내는 확실히 프리랜서였다. 그는 차를 출발시켜서 전철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다음 CCTV에서 같은 차량을 찾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중간에 차를 세웠든가, 아니면 바꿔 탄 거야.”
두진은 소리를 질렀다.

진구와 대운은 정신없이 차를 몰고 전철역 방향으로 달렸다. 앞에 벌써 경찰차가 달리고 있었다. 멀리 세워져 있는 차량 앞에 경찰차가 서고, 다른 검은색 승용차도 달려와서 섰다. 기관원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총을 든 채 내렸다.
진구는 무시하고 그냥 차를 몰아 지나쳤다. 이미 그 차에는 프리랜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운이 인도를 살폈다. 내려서 뛸 리가 없다. 프리랜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는 차를 바꿔 탔다.
영란이 다시 다음 CCTV에서 잡히는 게 없다고 했다. 차량 안에 있는 인물을 잡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갈아탄 부분에 CCTV가 없다면 그냥 놓친 거다.
“차량들 다 막고 검문해야지!”
“그렇게 지시 내려갔어요.”
진구가 차량의 속도를 조금 줄였다. 앞에서 검문을 한다면, 빠져나갈 교차로는 없다. 그러니까 어느 차에든 프리랜서가 타고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검문에 걸려들어야 한다.
차들은 사실 차량의 홍수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만큼 많았다. 그래도 경찰과 기관에서 무조건적으로 차량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급하게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사방에 경광등이 설치되기 시작하자, 차량은 꼼짝도 할 수 없이 갇혔다.
대운이 골목을 돌아보며 말했다.
“골목들을 잘 봐야겠어. 더 천천히 가.”
“다른 차로 갈아타고 골목에 들어가서 주차를 한 다음, 숨는다는 건 영화에서나 안 걸리는 거야. 프리랜서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야. 경계망 안에서 숨어드는 짓은 안 하지.”
“그럼 다른 추리 좀 해봐.”
“차에서 변장을 하고 빠져나가는 건?”
“그건 너무 도박이잖아?”
“제대로 변장하면 가능성이 제일 높지.”
“제대로 변장…”
진구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지금 이 근처에서 제일 안전한 건 경찰이야.”
“뭐?”
“나라면 경찰로 변장하겠다.”
진구는 경찰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렇잖아? 아까 그 장소라면 소방대원이나, 구급차요원이었겠지만, 여기서는 경찰이야. 경찰복을 입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게 해주겠지.”
대운이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
“김팀장님. 경찰들 신원 확인 철저하게 하라고 좀 해주세요.”
진구가 검문대 앞에 도달해서 차를 세웠다. 순경 하나가 다가왔다. 앞창을 내리고 경찰신분증을 보여주었다.
“트렁크들은 안 보고 있나?”
“예.”
“검문지침이 뭔데?”
“혼자 운전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체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의심하지 않는데?”
“남대운 형사님하고 진구 형사님 아니십니까? 지원 나오면서 파악했습니다.”
“어?”
순경이 웃으면서 물러섰다.
“어서 가세요.”
“아까 보니까 택시는 그냥 보내던데?”
“여자 승객이었습니다.”
“택시기사는?”
“택시는 도난 즉시 신고가 되기 때문에 가짜 택시 기사는 힘듭니다.”
진구가 대운을 돌아보았다. 대운이 주변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네 말대로 경찰이 제일 안전하겠다.”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검문해서 잡아낼 리가 없어. 모사드에서도 말했잖아. 그 빡빡한 가자지구에서도 깔끔하게 빠져나갔어.”
“거긴 조력자들이 있었겠지. 여기는 한국이야. 혼자 움직이는 거야. 조이면 잡을 수도 있어.”
“차를 세우자.”
뒤차가 빵빵거렸다. 빨리 지나가라고 경광등을 휘젓는 순경에게 말했다.
“우린 차를 세워야겠다.”
순경이 차를 한쪽으로 인도했다. 차를 길가에 대놓고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밖으로 나가면 이미 틀린 거지?”
대운이 검문대를 손가락질했다.
“그러니까 우린 이 안을 봐야 하는 건데 도대체 뭐가 이렇게 엉성하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진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이상한 게 사실이다. 이렇게 대충 해서는 안 되는 건데.
“국가비상사태여야 하는 것 아닌가?”
대운이 하늘을 가리켰다.
“헬기도 하나 안 뜨네.”
“방송 중계차도 하나 없고…”
진구와 대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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