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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장 - 가이드라인(GUIDE LINE)
1.

성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아침 안개 속에서 아파트 단지는 마치 공장지대처럼 삭막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프리랜서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방송했다. RM은 강성하로 둔갑해서 죽은 것이다. 아니, 죽어서 강성하가 되었다. 주변을 수색도 하고 검문도 했지만, 일어난 사건에 비해서 너무 엉성했다.
성하는 만일을 대비해서 차를 버린 후에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버스로 옮겨 타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거기서 다시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어디서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지하철 입구에서는 경찰들이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가발 하나로 충분히 지나칠 수 있었다. 검문으로 차가 막히는 바람에 지하철은 만원이었고, 경찰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하철에도 사복경찰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역시 성하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보았어도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뉴스는 세간의 이목을 오로지 프리랜서의 죽음으로 집중하게 했다. 아침에는 구치소로 수감되는 김중식이 뉴스에 나와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런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성하는 이제 김중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았다. 김중식이 알고 있는 건 성하도 알았다. 김중식은 말 그대로 소총수였다. 그는 자기 위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그는 소대장 격의 최의원에게서 자금을 받고 배를 운행했다. 그리고 그에게 보고서를 썼다.
이 나라에서 제대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두진 검사도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파고들기보다는 성하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래서 상대는 오두진을 마음대로 수사하게 해두고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막힐 것이다.
어떻게 할까.
성하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두진이 입구가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오두진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판을 흔들었는데, 상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나라는 TC에 의해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관계로 국민들은 쉽게 통제에 따랐다. 만일 누군가가, 혹은 특정세력이 의문을 제기하고 반발하면 시스템이 작동해서 그런 세력들은 즉시 반역세력이 되어버렸다.
TC는 매스컴을 장악하고 있었고, 손쉽게 여론을 일으켰다. 여론에 의해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으로 찍히면 그다음은 아무 저항도 없이 사법체계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게 잘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국민들은 반역자들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고 지지했다. 아니, 어느 때는 내막도 모르면서 찬사를 보냈다.
들어갈 구멍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공연히 몸통은 놔두고 깃털이나 뽑아내는 게 된다. 이렇게 하는 건 시간낭비다.
그래도 당분간 계속해서 오두진을 접촉할 필요는 있다. 현재로서는 가장 위험한 상대지만, 서로를 위해서 대화가 필요하다.
오두진은 왜 프리랜서가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모르고 있다.

두진은 김중식과 마주 앉았다. 호송하기 전에 함께 설렁탕을 시켜서 먹는 중이다.
“오유호 들여올 때 세금처리가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그랬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봤더니, 국가기간산업군에 속하도록 했더군요.”
“그랬죠.”
“뭐, 비리를 캐는 건 지금 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그냥 오유호의 주인이 궁금할 뿐입니다.”
김중식이 수저를 내리고 두진을 쳐다보았다. 두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배는 당연히 오유해운에 속해 있죠. 그래도 배들마다 다 주인들이 따로 있죠? 운수회사 차들 주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렇기도 하지만, 오유호는 주주들 배입니다.”
“그 주주라는 게 거의 김중식씨 가족들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위에 진짜 전주가 따로 있죠?”
“이미 저희 회사 임원들이 검찰에서 다 밝힌 부분입니다. 다시 물어도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지경에서도 그 끈을 잡고 있어야 합니까?”
두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김중식을 바라보았다. 김중식은 태연히 다시 수저를 들고 설렁탕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할 겁니다. 자신 있어요?”
김중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김중식과 아침을 먹고 호송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두진은 검사장이 다시 자신을 만나자는 이유는 바로 프리랜서가 이제는 죽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인 걸 알았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비밀수사가 되어야 하네.”
커피숍에서 만난 검사장은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서 오검사가 프리랜서를 쫓고 있다는 걸 절대로 알면 안 돼.”
“그래서야 우리 팀만으로 어떻게 수사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잡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대신 인원을 확충하게 해주겠네.”
“어떤…?”
“기관하고 협조해.”
“예?”
“그게 좋아. 그렇게 해. 이제는 투트랙으로 갈 일이 아니야.”
두진은 멍하니 검사장을 쳐다보았다. 기관의 속성을 아는데, 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정보를 빼가기만 하고 처리는 자기들이 하고 싶을 것이다.
“누굽니까?”
“뭐 말인가? 아, 기관 팀장?”
“그런 거 말고, 하나만 가르쳐주십시오. 최의원 라인도 말고, 딱 한 사람만 알려주십시오.”
“누구 말인가?”
“TC가 누굽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검사장은 뚱하니 두진을 쳐다보았다. 두진은 자신이 아는 걸 검사장이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르게 묻겠습니다. 프리랜서로 둔갑한 RM을 불러다가 현장에 투입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야 당연히 기관이지.”
“그렇습니까?”
두진은 검사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잡아다가 앉혀놓고 심문을 수도 없이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어제 가이드라인이 내려와서 그런 겁니까? 군대라도 동원해야 할 판에 그렇게 엉성하게 끝내버리다니 말입니다.”
“뭐, 그거야 사회적으로 너무 불안정하니까 일단 민심을 수습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랬다가 김중식처럼 다시 살아서 나타나면 그때는 지금처럼 혼란이 가중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서 해결해야지. 자네도 검찰에 몸담고 사는 사람 아닌가? 지금 난리도 아닌 거 알지? 국과수부터 경찰, 검찰 할 것 없이 쑥대밭일세. 다 옷 벗고 나가야 할 판이야.”
“재수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미 가이드라인이 내려진 겁니까?”
“그쪽은 오검사 소관이 아니잖은가? 그건 따로 재수사가 있겠지.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재수사는 개뿔.
“결국 김중식과 협상으로 가겠군요.”
“신경 끊고 어서 프리랜서나 잡아. 기관에서 연락이 갈 걸세.”
두진은 실망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모두들 CCTV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미 프리랜서는 죽었다고 발표가 되었으니 수사팀도 공식적으로 해체해야 맞다. 그러나 다들 두진을 믿고 흔들림 없이 프리랜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비밀수사로 전환한다. 알고들 있었지?”
두진의 말에 다들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우리 팀은 그야말로 뒷일을 정리하는 팀으로 바뀐 거야. 입조심들 하고 기자들이 기웃거려도 곧 해체한다고 말해. 그리고 프리랜서에 대해서는 여자친구한테도 말하지 마.”
대운이 흘끗 영란을 돌아보았다.
“넌 왜 김팀장 쳐다봐?”
“아, 그게 아니라…”
“요즘 너희들 어디 묵고 있냐?”
두진의 물음에 대운과 영란이 동시에 진구를 돌아보았다.
“셋이 한집에 사냐?”
“예. 저 혼자 사니까 뭐…”
“눈꼴시어서 어떻게 견디냐?”
“눈 감고 삽니다.”
푸하하하. 오랜만에 다 함께 웃었다. 그러나 속은 웃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가득했다. 마음대로 수사도 할 수 없고, 실체도 모르는 사건이다.
도대체 프리랜서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기관에서 누군가가 오겠지 했는데, 그 연락보다 먼저 택배가 왔다.
“이게 뭐야?”
택배를 뜯자, 안에서 낡은 핸드폰이 나타났다. 모두들 의아해하는 상태에서 두진은 급하게 핸드폰을 켰다. 발송인이 없었지만, 누가 보낸 줄은 이미 말 안 해도 다들 알 만했다.
핸드폰을 켜자, 안에 있는 전화번호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나를 만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시오.’
영란에게 손짓을 해서 녹음기를 켜게 한 다음, 문자를 보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동안 간 다음, 프리랜서가 전화를 받았다.
‘오검사님?’
“그래. 또 살인을 저질렀구만.”
‘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지.”
‘우리가 그런 대화를 하는 건 좀 어울리지 않지요?’
“만나자고 했던가?”
‘원하시면 만나드리려고 합니다.’
“만나야지. 어디서 볼까?”
‘딴생각을 하시면 절 만나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런 엉성한 짓은 안 한다.”
‘그럼 좋습니다. 내가 다시 연락드리죠.’
“언제? 난 이 전화를 보고도 없이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오늘 좀 다른 일이 있어서요.’
“그럼 언제 보자는 거냐?”
‘오후에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지금은 김중식씨 호송으로 바쁘지 않으십니까?’
“미리 약속을 정하지 않겠나?”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영란을 돌아보았다. 영란이 전화기를 가리켰다.
“2G에다가 선불폰이겠죠?”
“저쪽 전화번호 조회해 봐.”
“찾는 중입니다.”
영란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 수사관들이 들어섰다. 김중식을 호송해갈 인물들이었다. 두진은 인사하는 그들의 긴장된 표정을 보고 싱긋 웃었다.
“고생들 좀 하겠네?”

김중식은 가면서 여유 있게 팀원 모두를 보고 일일이 인사를 했다. 두진은 비위가 상했지만, 이제 자기 손을 떠나는데 붙잡고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외면해버렸다.
김중식이 가고 난 후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교통통제용 CCTV 외에 부근의 CCTV를 모두 수거해서 확인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눈 아프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데에 모두 집중하는 가운데, 두진만 책상 위의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오후가 다 지나갈 때가 되어서야 전화가 울렸다.
‘혼자 오셔야 합니다. 그러면 검사님의 안전은 보장해드리지요.’
“그런 걱정은 안 해.”
‘하지만 누군가가 따라붙으면 그 사람의 안전은 보장하지 않겠습니다.’
“살인마답다.”
‘하하하. 그런가요? 여하튼 일곱 시 정각에 만나기로 하지요.’
“어디서?”
‘지하철을 이용해주세요. 차는 미행당하실 겁니다.’
“날 누가 미행해?”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알았어. 어디서 볼까?”
‘신도림역에서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계시면 다시 전화 드리지요.’
“인천?”
‘예. 인천행을 타시기 바랍니다.’
전화가 끊겼다.

모두를 모아놓고 대책회의를 했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혼자 가는 것에는 대운도 영란도 진구도 반대했다. 두진은 혼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부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을 거라면, 팀원들 힘으로 당해내지 못할 걸 알면서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
“나 혼자 간다. 연락할 테니까 너무 걱정들 마라. 기관에서 연락이 올 거다. 그러면 퇴근했다고 해.”
영란이 작은 신호기를 가지고 왔다.
“이거라도 챙기세요. 위치추적기예요.”
“내가 무슨 스파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단 챙겼다. 강력부에 있으면서도 일선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없어서 조금 긴장이 되었다.
“총 챙기셨죠?”
대운이 물어보는데, 생각해보니 총도 챙겨야겠다 싶어서 캐비닛에서 총을 꺼내서 챙겼다. 대운이 가슴에 묶어주면서 웃는다.
“장교 출신이라고 하셨죠?”
“그래. 인마. 걱정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반대였다. 살인마를 만나러 가는 거니까. 아니, 테러리스트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뭐 죽기야 하겠나.
두진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2.

대테러 1 팀의 팀장 우재준은 줄줄이 놓여 있는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어제부터 오두진 검사와 접촉하라고 했지만, 미리 접촉하지 않고 먼저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아는 한, 오두진은 프리랜서에게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기 때문이다.
팀원 하나가 신호를 보내왔다. 블루투스의 스위치를 켰다. 현장에 나가 있는 3 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검사가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차량 추적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느 지하철?”
‘서초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그렇지. 당연히 서초역이겠지.
“지금 거기 몇 명이야?”
‘1 호만 빼고 다 있습니다.’
그럼 네 명이 있다는 말이다. 미행에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일단 따라붙어. 더 지원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폐쇄회로 켜.”
‘네. 지금부터 모두 켜겠습니다.’
모니터에 네 개의 시각이 동시에 들어왔다. 그 앞에 서서 플랫폼에 선 오검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묵고 있는 숙소 방향이 아니다. 집에 가는 거라면 고속터미널 역에서 3 호선으로 갈아탔어야 한다.
“바짝 붙어라. 아무래도 인원을 보강해야겠다. 나머지 근처에 있는 팀원 다 보내.”
오검사는 지하철을 타고 꽤 멀리 가고 있었다. 확신이 왔다. 분명히 프리랜서와 접선하려고 가는 중이다. 프리랜서가 자기 통로를 오검사에게 열었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차로 두 대가 더 나갔다. 만일을 생각해서 2호선 노선을 따라 움직이라고 했다. 모니터를 보는데, 오검사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어느 역이야?”
‘신도림역입니다.’
“거기서 갈아타면 어디로 가지?”
‘1호선입니다. 인천 아니면 수원입니다. 요즘은 신창까지도 갑니다.’
“다 같이 타. 긴장 늦추지 말고.”
오검사는 인천행을 탔다. 2 호가 일부러 열차에 달린 행선지 표지를 보여주었다. 오검사가 누군가와 전화를 했다.
“붙어 봐. 붙어서 들어.”
그러나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오검사가 주변을 두리번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누군가가 미행을 알려준 것 같다.
“팀 바꿔.”
2 호와 3 호가 빠지고 4 호와 5 호가 바짝 붙었다. 어디서 내릴지 모르지만, 차량으로 쫓는 팀원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인천 쪽에 누가 있지?”
사무실 직원이 돌아보며 말했다.
“샛별팀이 그쪽에 있습니다.”
“나랑 통화하게 해줘.”
오검사는 지하철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꾸만 앞쪽 칸으로 이동했다. 팀원들이 미행하기 난감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누군가가 코치한 듯했다. 프리랜서다. 틀림없는 그놈이다. 긴장감으로 손에서 땀이 났다.
“대테러팀 전부 가동한다. 풀가동이야. 적색 경보 발령하고 모두 인천 방향으로 집결한다.”
이제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RM이 죽고, 모사드의 요원이 죽어도 내내 모른 체하고 기다렸다. 때가 되어야 그물을 치는 법이다. 엉성하게 건드려놓으면 상대는 숨어들고 만다.
“전부 무장해.”
처음 있는 일이다. 대테러팀 전원이 무장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격수 출동하고 진압팀도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모든 채널 다 열어놓고 모두 폐쇄회로 착용한다.”
보아야 하는 모니터의 개수가 늘어났다. 사무실 인원들이 모두 달라붙었다. 그 뒤에 서서 우재준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건물 전체가 금연이지만, 누구도 눈치 주지 않았다. 모두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긴장해서 폐쇄회로에 나타나는 장면만 주시했다.
오검사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팀원들도 따라 내렸다. 그 순간, 오검사가 다시 올라탔다. 팀원들이 당황해서 다시 올라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오검사는 다시 내려버렸다.
“빌어먹을!”
요원 둘이 따라 내리지 못했다. 둘만이 빠르게 뒤를 쫓았다. 오검사가 전화를 걸면서 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하 역사 안에 있는 화장실로 휙 꺾어 들어갔다.
“위험해.”
확실하게 위험하다고 느꼈다. 화장실로 들어서지 않고 밖에서 잠시 머뭇대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불쑥 누군가가 나타났다. 등산복 차림에 등산모자를 쓴 노인네였다. 손에 스틱을 들고 있었다.
요원 둘이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노인의 등산용 스틱이 휙 움직였다. 그리고 폐쇄회로가 흔들리면서 바닥을 비췄다.

내리고 보니, 부평역이었다. 복잡하고 역사가 넓다. 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다. 화장실에 잠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나오니, 두 사내가 쓰러져 있다. 놀라서 옆으로 피해서 나오는데 전화가 왔다.
‘빨리 눈앞의 출구로 나오세요.’
화장실을 향해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놀라서 쳐다보니 그냥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사람 같았다. 시치미를 떼고 빠르게 걸어서 자리를 피하고,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걸으세요. 광장 건너편에 보험회사 건물 사이 골목 보이시죠? 그 골목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 사람들 죽인 건가?”
‘죽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나 마구 죽이는 걸로 보이십니까?’
“그래 왔잖아.”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술집들 사이로 또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면서 지나갔다.
‘삼겹살집 보이시죠? 삼 층 건물 말입니다.’
“보여.”
‘올라오세요. 옥상까지, 곧장.’
건물로 들어가서 계단을 올라갔다. 일 층은 삼겹살집이고, 이 층은 미용실에다가 3 층은 맥주집이었다. 계속해서 올라가자,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밀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옥상은 잡다한 쓰레기들이 가득하고 운동기구도 보였다.
목뒤에 총구가 느껴졌다.
“총까지 가지고 다니시는군요.”
귀에 숨결이 느껴졌다.
“벨트를 천천히 끌러내세요. 총에는 손대지 마시고요. 그런 걸 가지고 다니시기에는 너무 안 어울립니다.”
총집 벨트를 끌러내서 옆으로 내밀었다.
“그냥 멀리 던지세요.”
벨트째 쓰레기들 위에 던졌다.
“위치추적기는 그냥 가지고 계셔도 됩니다.”
“별 걸 다 아는군.”
“난간으로 나가시면 아래에서 보이니까 옥탑 처마 아래로 갑시다.”
천천히 옥탑의 처마 아래로 갔다. 어두워서 지저분한지 아닌지도 모를 낡은 의자 두 개가 있었다.
“앉으세요.”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앉는 인기척이 났다.
“이제 단독강화를 할 만한 상황이 갖춰진 겁니다.”
슬며시 옆을 돌아보았다. 성하는 편안하게 앉아서 담배를 내밀었다.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아도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눈빛이 여느 노인들과 달랐다. 유리알처럼 차갑고 살기가 어린 눈동자였다.
“내 담배 있어.”
두진은 자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렇게 잡고 싶던 놈이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니.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신 검사님이십니다.”
“빈정대지 마라.”
“아, 말을 바꾸죠. 가장 구정물 먹지 않은 검사님으로요.”
“검사는 다 나와 같아.”
“그렇지 않던데요?”
“왜 이러는 거냐? 대체 이렇게 지랄을 하는 이유가 뭐야? 죽은 네 여자 친구는 대한민국과 아무 상관도 없다. 그렇잖냐?”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라니?”
두진은 성하를 돌아보았다. 성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내가 화풀이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 궁금하군.”
“내가 왜 김중식을 쫓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기다.”
두진은 증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성하를 바라보았다.
“너 같은 살인마한테 그런 정의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오유호 사건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건 검사님도 인정하시는군요?”
“그건 사고야.”
“사고가 아니라, 보험사기 아닙니까?”
“그런 건 좌파들이 만들어내는 소설이지. 대한민국이 그렇게 썩지는 않았어.”
성하가 피식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내가 여기 와서 이렇게 미친 짓을 하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대체 뭘 알고 있는 거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동영상도 다 보셨을 테고, 왜 준비된 고의사고인 지도 다 아실 테고…”
성하가 소형 아이패드를 건넸다.
“여기서 보기만 하십시오. 가져가실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가이드라인이 다 내려져서 매스컴도 막힌 상태이니, 이런 영상이 있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러나는 아셔야 할 테니 보여드리는 겁니다.”

아이패드 속에는 양복 차림을 한 피투성이의 동양인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 서넛쯤 되어 보였고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배경으로 보아서는 사막지대 같았다. 창밖으로 사막이 보였다.
“허튼소리를 하면 너뿐 아니라, 네 가족까지 몰살을 당할 거다.”
지긋지긋하게 들은 바로 그 목소리, 프리랜서의 목소리다. 동양인은 부들부들 떨었다. 한국말을 사용하는 걸로 보아서 한국인이다.
“그동안 날 겪었으니 알거야. 난 너희들이 내 여자를 왜 죽였는지 그게 궁금해.”
“그, 그거야 군사작전 중에…”
한국인이 확실했다. 한국말로 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무릎을 밟는 프리랜서의 정글화를 신은 발이 보였다. 바지 밖으로 피가 배어 나왔다.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넌 중요한 증인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평생 기어다니고 싶어?”
총구가 반대편 무릎에 겨누어졌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았지. 그런데 내가 유태인 놈들을 처리하다가 우연히 너희들 전화를 도청했단 말이야.”
“아, 그건…”
“그러니까 군사작전을 이용해서 내 여자를 확실하게 제거했다고 하는 말이었어. 즉, 유태인들은 내 여자를 죽이지 않고 떠났어. 그들은 의사인 데다가 한국인 여자를 굳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맞나?”
“마, 맞소.”
“왜 그런 거냐?”
“이, 이유는 우리도 몰라. 우리는 청탁만 받았어.”
“너와 전화한 놈은 일본인이다. 일본말이었고 발신지도 일본이었지. 어떤 놈인 지는 말 안 해줘도 내가 찾을 수 있다.”
“이, 이유는 정말 모른다. 믿어줘.”
“너는 나를 알지?”
사내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날 속이려고 들면 안 돼. 다시 기회를 줄게. 네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 넌 살려둬도 가족은 죽일 거야. 내가 그럴 만하다는 건 알지?”
사내가 미친 듯이 말했다.
“내가 아는 한은 다 말하겠소. 그렇지만 정말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그저 오유호와 관련이 있다고만 들었소. 그것도 확실히 들은 건 아니고… 오유해운 대표와 다케다가 대화하는 걸 들었을 뿐이오.”
“일본에서?”
사내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오유해운 대표… 살아 있구나?”
사내의 눈이 커졌다.
“네 가족은 네 덕에 살았다. 그러니까 분명히 말하는데, 달아나지 마라. 내가 지정하는 곳에 얌전히 숨어 있어. 벗어나거나 허튼수작하면 네 가족은 이 세상에 없는 거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맙소.”



3.

동영상이 끝났다. 성하는 아이패드를 회수해 가면서 싱긋 웃었다. 차갑고 살기가 가득한, 사나워 보이는 미소였다.
“이 정도면 알 만큼 알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네 여자가 대체 오유해운에서 뭘 했지?”
“의사였습니다. 병원을 가지거나 버젓한 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페이닥터로 일해서 그 돈으로 봉사를 떠나는 여자였죠. 하지만 당신네들이나 나에 비하면 천사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오유해운과는 무슨 관련이 있었나?”
“그 이유를 김중식도 모르더군요.”
“그러면서 연관된 건 장담하는 거냐?”
“다케다는 알더군요. 어떤 연관인지는 모르지만, 꼭 제거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고 했습니다.”
“누가 그랬다는 말이냐?”
“오유호의 주인이 그랬답니다.”
“오유호의 주인이 누군데?”
“TC.”
“그 암호명은 수도 없이 들었다. 너 때문에. 그러니까 너는 그게 누구인지를 찾고 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검사님.”
성하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두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사님도 나도, 이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검사님은 이제 이 살인 놀음을 중지시키고 싶지 않으십니까? 검사님은 나와 달리 정의감이 있으시니까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널 잡아서 막아야지.”
“지금 바로 눈앞에 제가 초대해서 겨우 마주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절 잡아서 중지시키신다고요?”
“꼭 그렇게 할 거다.”
“그보다는 내게 TC가 누구인지 알아서 전해주는 게 모든 상황을 종결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더러 그걸 수사하라는 말이냐?”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초대해서 직접 얼굴을 보고 말씀드린 겁니다.”
“내가 안 하면 내 가족도 죽일 셈이냐?”
하하하. 성하가 낮게 웃었다.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상대는 따로 있지요.”
“제대로 보았다.”
“대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TC에 대해서 알아내주실 때까지 하루 한 명씩 연관된 자를 죽일 겁니다.”
“누가 연관이 되었는데?”
두진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어떤 경우든, 누구든 간에 죽을 이유는 없다. 사람을 죽이는 건 비정상이다. 사람이 죽이든, 신이 죽이든 비정상이다.
“최형석 라인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게…”
말문이 막혔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내일부터 카운트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성하는 의자에서 일어나 옥탑문으로 향했다. 그의 등을 보면서 두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문소리가 나자마자 멀리 던져놓은 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재빠르게 벨트에서 빼들고 홱 돌아서면서 총을 겨누었다.
“니기미.”
욕이 튀어나왔다. 성하는 간 데 없고, 어느새 문이 닫혀 있었다. 달려가서 문을 열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여기 부평역이다. 어서 와라. 아니, 올 건 없고…”
참나, 이 꼴이 뭐냐.

우재준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반경 200 미터 이내다. 나가는 길목 전부 막아!”
CCTV를 확인한 결과 오검사는 부평역 광장 건너의 복잡한 골목으로 들어간 것을 알았다. 그 방면의 모든 CCTV를 집중적으로 파악하자, 골목 안의 몇 개 건물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 부근은 복잡하기는 해도 너무나 뻔한 길목이고, 건물들은 높으면 5층이 전부다.
그런데 2 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찰로 연락이 왔습니다. 오검사가 옥상에 갇혀 있다고요.”
“어디?”
“작은 상가건물입니다. 지금 경찰이 거기로 출동했습니다.”
“그 주변 전부 달려들어서 막아!”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걸 알았다. 오검사가 갇혀 있다는 건 프리랜서가 이미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쫓아도 확률은 없다. 그래도 멀거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오검사를 압박하는 수단도 된다.
오두진. 가이드라인만 아니라면, 개박살을 내주고 싶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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