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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장 - 카운트다운(COUNT DOWN)
1.

변호인 접견실에 김중식과 최영석은 무료한 표정의 변호사를 옆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우리도 힘든 걸 알지 않나?”
“저보다 힘드십니까?”
김중식은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에 휘둘릴 준비를 한 상태였다. 죽은 척이라도 하라고 해서 죽은 척을 했는데, 이제는 죽은 척으로 끝나지 않게 생겼으니, 이 구치소 안까지 누가 죽이러 오기라도 하려나.
“그래도 어쨌든 일단 수습 국면일세. 우리를 믿고 따라주어야 하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최영석 대신 변호사가 말했다.
“서로 입을 좀 맞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중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일단 사태의 모든 것을 책임질 사람들은 조각이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흘끗 최영석을 돌아보았다. 최영석이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김종국이 책임을 지기로 했네. 그 외에 뭐 국과수나 다른 곳 사람들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전부 김종국이 시킨 일이 되면 나머지는 편하게 마무리할 걸세.”
일명 꼬리자르기를 한다는 말이다. 하나가 중간에서 총대를 메면, 그 위로는 오르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그럼 김종국과 파트너가 되고요?”
“그게 최선일세.”
“하나만 물읍시다. 꼭 대답해주십시오.”
“뭔가?”
“도대체 TC가 뭐길래 김종국 청장이 자기를 죽입니까?”
최영석이 입을 꾹 다문 채, 김중식을 노려보았다. 김중식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이따위로 망가졌는데, 누가 목줄을 쥐고 흔들었는지도 모르고 당한다는 게 말이 되나.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최영석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알았다면 필시 프리랜서에게 자백했겠지?”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까 몰라야 하는 걸세.”
“그러는 의원님은 프리랜서에게 납치되면 다를 것 같습니까?”
“이 사람…”
변호사가 옆에서 얼른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논쟁입니다. 좀 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알아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프리랜서가 구치소까지 찾아올 리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해줄 수 없네.”
“절 믿지도 못하면서 저더러는 믿으라고 하시는군요.”
“믿지 않고 달리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도 좋네.”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변호사도 가만히 긴장감을 참아냈다. 서로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중식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최영석은 꼼짝도 않고 김중식을 바라보았다. 김중식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종이컵에 비벼 끄더니, 어눌한 말투로 느리게 말했다.
“어차피 살아 있는 권력에 기댈 수밖에요.”
최영석은 그제야 표정이 풀어졌다.
“자네 가족은 아주 가볍게 이 사태를 넘길 걸세.”

두진은 아침 해가 뜨는 게 달갑지 않았다. 이건 확실한 예고살인이다. 프리랜서는 절대로 뱉은 말을 실행하지 않을 인간이 아니다.
출근해서 프리랜서가 준 핸드폰을 만지작대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한다는 건 말이 아니고, 게다가 테러리스트를 위해서 수사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런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오늘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을 안다는 데 있다.
알면서도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핸드폰을 만지작대면서 열심히 지난 시간을 머릿속에서 되돌려 그려보았다.
프리랜서도 인간이다. 악마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악마 같을 뿐이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무언가 남겨지는 게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아주 하찮은 거라도 자신을 내보이게 되어 있다.
언제나 노인으로, 혹은 중년인으로 분장을 한다. 분장도구를 몽땅 가지고 다닐 리는 없다. 거기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다닌다. 그 또한 주목할 만하다.
구매한 곳을 찾아내야 한다. 그게 느리고 미련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가장 빠를 수도 있다. 움직이는 반경을 연구해보면 섹터가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비공개로 수사를 해야 한다면 그게 답이다.
“김팀장. 등산용품점들 탐문 잘되고 있나?”
“네. 검사님. 계속 뒤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검사님께서 보셨다는 상표는 일본 상표로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취급하는 게 아니어서요.”
스틱이 눈에 익은 상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기억하는데, 그게 일본 상표였던 거다. 굳이 그런 스틱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유명한 상품이기는 해?”
“특수하게 만들어져서 가볍고도 아주 강하다고 해요. 전문가용이라는데요?”
“그래서 가지고 다녔군. 놈이 애용하는 상표라면 또 갈 확률도 있으니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야 해.”
팀원들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패닉 상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속으로만 초조함을 삭였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우재준이 들어섰다. 두진은 그를 보자마자, 어디서 왔는지를 알았다. 검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 인상만으로 뭐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위치인지 눈에 보인다. 깡패가 아니라도 인간의 행동거지는 다 같다.
“오검사님이시죠?”
우재준이 눈웃음까지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2.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도 사방이 어두컴컴하게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두진은 시커먼 하늘이 보이는 카페에 우재준과 마주 앉았다.
“검사장님께서는 어제 인사드리라고 하셨는데, 어제 너무 바빠서 인사드리러 오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오셨어도 제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어제 저 역시 아주 바빴거든요.”
두진의 말에 우재준이 싱긋이 웃었다.
“어제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분주했던 것 아닙니까?”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진은 이제 이런 인간들하고도 상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운트다운은 그런 것이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이제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거래가 필요하다.
“프리랜서를 만났지요?”
우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 정도는 예상했다.
“만났습니다.”
“그 과정을 좀 말해주시겠습니까?”
두진은 우재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짜고짜 그렇게 물으면 술술 대답해야 하나?
“아, 제가 결례를… 형식을 갖춰서 서로 협조전을 띄우고 뭐 그래야 하겠지만, 사실 사안이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통에 그럴 경황이 없지 않습니까? 이해해주십시오.”
두진은 이왕 서로 협조를 해서라도 어서 카운트다운을 막아야 한다면 밀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프리랜서가 소포로 보내온 겁니다.”
우재준이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선불폰이고 외국인 명의입니다. 지금은 추적도 어려운 2G에다가 매번 다른 전화에서 전화가 옵니다.”
“철저하군요.”
우재준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약속을 정하면서 누구든 함께 오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꼭 그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가면 만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혼자 갔죠.”
“가는 중에 우리 팀원들이 미행하는 걸 아셨습니까?”
“당연히 알았죠.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기관원들의 미행을 피하게 해주었죠.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순간적으로 두 사람을 쓰러뜨리고 먼저 역사를 빠져나갔더군요.”
우재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더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프리랜서가 이제부터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줄 때까지 매일 한 명씩 살해하겠다고 합니다.”
“살해?”
우재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누구를 말입니까?”
“누구겠습니까?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오유호에 연관된 사람들이죠. 기관에서는 알지 않습니까? 프리랜서가 무엇을 쫓는지를…”
우재준이 잠시 말을 멈추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창밖을 보았다. 컴컴해진 하늘로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도시는 어둠과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성하는 창가에 서서 어둠 속에 빠져드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는 계속해서 김중식 사건을 조작한 건 순전히 김종국 청장의 단독 계획이고 모두가 그의 지시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김종국은 검찰로 출두하고 있었고, 기자들이 난리를 치며 취재하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려왔다. 일단 꼬리를 자르고 입막음을 시작했다. 의심하는 건 국론을 분열시키는 거나 같다는 논리로 어느 방송이고 할 것 없이, 떠들었다.
성하는 시계를 흘끗 보고, 소파에 던져두었던 검은색 재킷을 집어 들었다. 넥타이를 매고 거울 앞에 서서 올백으로 넘긴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오검사는 틀림없이 기관에 카운트다운에 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기관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 들은 윗대가리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조용히 자신이 잡히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화를 부릴 것이다. 자기들 목숨이 걸려 있으므로.
처음에는 뭉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이 자기 차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면,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도 뭉쳐 있게 된다면, 그건 리더십이 강한 최영석 때문일 것이다. 리더만 없다면 자기 보신에 바쁜 작자들답게 야비함을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목표는 최영석이어야 한다.

비가 조금 거추장스러웠다. 어느 전장에서라면 딱 좋을 날씨지만, 이런 도시에서의 공작에는 비가 오히려 방해를 준다. 하지만 지형지물이나 기상 상태는 잘 이용하면 해가 되기보다 득이 될 수 있다.
아파트를 나서면서 전화를 걸었다.
“마리?”

헉? 마리는 기절초풍했다. 프리랜서가 직접 전화를 걸어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는 것 아닌가?’
“프리랜서?”
‘결국 내 목소리를 듣게 된 걸 축하해.’
“빈정대지 마.”
‘악착같이 날 따라붙을 이유가 있나? 그렇게 피해를 입으면서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야? 모사드가 돈이 많다는 건 알지만, 나 하나 때문에 공작비를 너무 쓰는 거 아닌가?’
“네가 우리한테 입힌 피해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가자스트립에서 활동하던 모사드 요원답지 않은 말이군. 누구한테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주제는 아니지 않나? 아니면 따로 청구할 거라도 있나?’
“머지않은 날에 널 꼭 잡아서 네 그 잘난 쌍판대기를 보고 말해주마. 네가 얼마나 토해내야 할지.”
‘그게 머지않은 날까지 필요할까?’
“무슨 뜻이냐?”
‘만나자는 말이야. 우리 서로 정산을 하는 게 어떠냐는 거지. 서로 소모전을 치르느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피곤하거든. 사실 난 너희들에게 더 이상 볼일이 없어.’
“우리가 그냥 이렇게 당하고 물러나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모사드답게 행동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협상도 할 줄 알아야지. 만일 계속해서 내게 방해가 되면 먼저 걸리적대지 않게 널 제거하고 일을 진행할 수도 있으니까.’
마리는 잠시 생각했다. 서로 강화를 맺자는 건가. 한국이라는 꽉 막힌 나라에서 공작을 하는 건 서로가 피곤한 일이지. 그러니까 일단 물러나달라는 말인가?
“허튼수작은 안 통해.”
‘그야 피차에 선수들 아닌가? 서로가 선수 대우를 해줘야지.’
“단둘이?”
‘그걸 말로 해야 하나?’
“그렇겠지.”
‘일의 시작과 진행이 궁금하면 혼자 나와서 경청하라는 말이야.’
“그래. 그 이야기나 듣자. 너는 왜 이러는지.”
‘문자 확인해라. 거기 시간과 장소가 있다.’
전화가 끊겼다. 잠시 멍한 상태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시간과 장소가 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말대로 단독으로 나가야 할까?
아니지. 그런 작전은 없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지.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성하는 국회의사당의 의원회관 일 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현관을 바라보았다. 검색대를 통해서 급하게 사내들이 빠져나왔다. 평소에 최영석을 경호하던 인물들 중 마리가 붙인 팀원들이다.
성하는 피식 웃었다. 해가 지면서 비는 더 심해지기 시작했고, 주변은 그만큼 더 어둡고 칙칙했다. 성하는 서류가방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검색대가 현관에서 안쪽으로 있는 건, 택배가 많이 오고, 회관에 볼일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카페로 오는 공간은 검색하지 않는다. 지하주차장 역시 낯선 차량이 들어오면 검색을 하지만, 아는 넘버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국가의 중요 시설을 지키는 경찰들이 모른다는 게 참 황당하다. 시국이 시국이라고 해도 설마 여기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주차장으로 가서 구석진 자리에 주차되어 있는 최영석의 승용차를 지켜보았다. 기사대기실에서 최영석의 기사가 키를 들고 달려 나왔다. 아마도 나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차로 달려가서 올라타는 기사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면서 소음총을 꺼냈다. 사실 마리의 팀원을 해치운 이유도 소음총에 있었다. 소음기를 구할 수도 없고, 더구나 만들 수는 더욱 없어서였다.
기사가 풀썩 차 옆에 쓰러졌다. 재빨리 가서 밀어내고 차에 올랐다. 기사가 입은 재킷과 자신이 입은 재킷이 거의 흡사해서 만족스러웠다.
아무 연관도 없는 기사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작업방식에 불과하다. 곁에 있다가 아무 죄도 없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 공포심은 모두를 흔들리게 한다.
차를 몰고 천천히 의원회관 앞으로 갔다.

최영석은 현관에서 잠시 멈춰 섰다. 보좌관이 얼른 우산을 펴고 받쳐주었다.
“비 한 번 지랄맞게 오네.”
밖은 어두운 데다가 비까지 퍼부어서 천지분간이 어려웠다. 최영석은 보좌관을 따라서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보좌관이 차문을 열었다. 멀리서 차량 한 대가 오는 게 보였다. 경호회사의 경호원들이 탄 차량이 따라붙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뒷좌석에 앉았다. 보좌관이 문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차가 출발했다.
“어디로 갈까요?”
“뭐?”
이 자식 바보도 아니고. 수요일이면 항상 들르는 곳이 있는 걸 알면서 뭘 물어? 요즘 와서 마누라가 잘해주니까 혹해서 조동아리 나불대는 거 아냐?
“몰라서 묻냐?”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냅다 달려갔다. 이 자식이 미쳤나? 차는 쏜살같이 교차로를 건너고, 뒤에 따라붙던 경호차량은 신호에 걸려버렸다.
순간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문을 열려고 했는데, 열리지 않았다. 당황해서 다시 기사를 보며 소리쳤다.
“너 누구야?”
기사가 차분히 말했다.
“차일드 록이라고 알아?”
“뭐?”
“모르지?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모를 거야. 자기 손으로 뭘 해봤어야 알지.”
“너…”
최영석의 얼굴이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기사는 최영석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내 얼굴은 알고 있나? 매일 잡아 죽이라고 하는 상대 얼굴 말이야.”
프리랜서였다.



3.

쏴아아아. 비가 무섭게 퍼붓고 있었다. 멀리서 비쳐드는 불빛에도 빗줄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나 가까이에 불빛이라고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성하가 피우는 담배 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성하는 차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며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어 있는 공장 같은데 불빛이 없으니, 헤드라이트를 끈 순간부터는 어떤 공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최영석은 자기 몸을 움직여보았다. 매운 가스의 충격을 받아서 잠시 기절을 했을 뿐, 몸이 다치거나 묶인 건 아닌 듯했다.
질척한 콘크리이트 바닥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성하가 틱 라이터를 켰다. 라이타 불빛에 성하의 얼굴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최영석. 결국 이렇게 마주 앉게 되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도대체 너는…”
“말투 좀 고쳐라.”
“뭐야?”
“이해력은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성하가 라이타를 껐다. 어둠 속에서 성하의 몸이 그림자처럼 움직이더니 어깨에 엄청난 충격이 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물도 나지 않고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였다.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전신이 마비된 듯 뻣뻣해질 뿐이었다.
다시 불빛이 켜지는데, 성하는 아까의 자리로 되돌아가 있었다.
“평생 고통이라고는 몰랐겠지. 남의 고통이라고는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지. 그러니까 분신자살을 하든, 굴뚝 꼭대기에서 몇 달을 지내든, 그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지?”
으으. 고통으로 인해서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기 자식은 병역면제로 아주 잠깐 기본 훈련만 받게 되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생때같은 남의 자식은 물속에서 새파란 청춘에 어이없이 죽어도 전혀 피부에 와 닿지가 않지?”
“내가 뭘 했다는 거냐?”
“뭘 했다는 거냐고?”
성하가 불을 탁 껐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그 사고가 고의사고였다는 걸 알아. 김중식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누었거든. 보험사기 말이야. 그런데 실패했다고 치자. 왜 아이들은 구하지 않은 거냐? 그건 김중식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였어. 구해야 하는 건 바로 너희들이었지. 그런데 구할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야.”
“그건 사고였다. 우린 그렇게 쉽게 배가 가라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배 가라앉지 말라고 풍선을 매달았더군. 내가 해군 특수부대 교육을 받아서 좀 아는데 말이야. 7천 톤짜리 배가 풍선 세 개에 버티나? 그 주변에 있던 유조선이나 바지선하고 연결해야 정상 아닌가? 그뿐이 아니지. 어째서 어선들은 배 뒤로 달려드는데, 해경은 배 앞쪽으로 가서 선원들만 먼저 구해냈을까? 모든 배는 뒤로 들어가고 나간다는 것 정도는 관광객도 알아.”
“난 그런 기술적인 건 몰라.”
“그럼 아는 사람들이라도 투입했어야지. 왜 해군특수부대는 외면했을까? 게다가 내가 정말 신기하게 여긴 건 말이야. 감압장비가 너무 없었다는 거야. 대한민국에 있는 걸 전부 가져다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겨우 두어 개가 눈에 뜨이더군. 그럼 물속의 아이들을 건져내는 대로 죽을 텐데, 어떻게 할 작정이었지?”
“말하지 않았던가? 난 그 방면에는…”
어둠 속에서 다시 무릎에 엄청난 충격이 왔다. 이번에는 비명과 함께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소에는 네가 사람들 목줄을 쥐고 흔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네 목줄을 잡고 있어. 그럼 너도 태도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네게 하던 대로 해야 여기서 살아 나가지 않겠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이보시오. 나는 그러니까…”
반대편 무릎에 또 엄청난 충격이 왔다. 크흐흐흐. 저절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양쪽 무릎이 전부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똑바로 앉을 줄은 알지?”
똑바로 앉을 수가 없다.
“평소 네 앞에서 사람들이 하듯이 그렇게 무릎을 꿇고 존경심을 표해야지. 안 해봐서 어색하겠지만, 너도 할 수 있어. 목숨이 걸렸는데.”
절대 불가능했다.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뭐 후회 없이 살았지? 더 해볼 것도 없을 정도로 말이야.”
“이, 이보시오. 내가 뭘 드리면 되겠소?”
“이제야 생각이 정리되는 모양이군.”
라이타 불빛이 들어왔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걸 보고 영석은 소름이 끼쳤다. 마치 악마가 심연 속에서 기어 나와 자신을 덮치기 직전인 것 같았다.
“내 여자 알지? 네가 죽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의사.”
최영석이 움찔했다.
“왜 죽은 거지?”
“그,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이유를 말하면 넌 죽겠지만, 적어도 네 자식들은 죽지 않을 거야.”
경악할 만한 말이었다. 너는 죽지만, 네 자식들은 죽지 않는다.
“그, 그 의사는… 검시의였소.”
“뭐?”
“검시를 할 의사로 페이닥터들을 고용했다고 들었소. 그중의 하나였소.”
“그런데?”
“검시를 한 결과 때문이었소.”
“검시 결과?”
“아이들이 에어포켓 속에 오래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소. 그걸 바꿨는데, 말을 듣지 않았소.”
“그래서?”
“조사위원회가 생기자, 증인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서 그렇게 멀리까지 사람을 보내서 살인멸구를 시행한 건가?”
더는 말하기 어려웠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겠는데, 마지막이야. 더 알고 싶은 게 없어. TC가 누구야?”
“그건 나도 모르는 이름이오. 그냥 암호와 같은 건데, 만나본 적도 없고 이름을 들어본 일도 없소.”
“그럼 넌 누구한테 지시를 받는데?”
유리알이 붉게 충혈되어 보였다. 분노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슬픔으로 인해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살기는 저 먼 지옥에서부터 지상으로 새어나오는 듯한 공포스러운 붉은 빛이었다.

비는 그치지 않고 동이 트도록 내렸다. 그리고 아침은 빗속에서 밝아지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른 봄의 질척한 장마였다.
밤을 새우면서 최영석의 차량을 찾았다. 최영석의 운전기사가 죽고 차량이 그대로 사라졌으니, 당연히 경찰과 기관이 온통 매달려서 차를 찾았다. 그리고 차를 찾았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였다.
최영석은 참혹하게 죽어 있었다. 사지의 관절이 모두 부러지고 어깨 한쪽이 탈골된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죽은 걸 발견하는 데까지 불과 두 시간이 걸렸다.
두진은 영란과 대운과 진구를 모두 데리고 현장에서 과학수사대와 함께 주변을 뒤졌다. 차량을 그대로 두고 가는 건 당연했다. 차량을 추적할 것이니까 오래 걸리지 않아서 도로의 CCTV를 체크해서 조여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빨리 처리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무엇으로 사라졌을까? 주변 CCTV에는 걸려든 게 없다. 현장은 자유로 옆, 드문드문 비닐하우스와 창고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었다.
프리랜서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미 목격자들로 부터 확인된 사항이다. 국회 CCTV로도 정확하게 특정되었다.
그렇다면 흙탕을 걸어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갔을 것인가.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짧게 걸어서 빠져나가는 방법으로 지하철을 타는 방법, 다른 곳에 미리 차량을 감추어 두었다가 그쪽으로 걸어가서 타고 빠져나가는 방법.
현장에서 허탈하게 돌아 나오는데, 기자들이 몰려들고 방송차량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우린 나가자. 여기서 더 할 게 없다.”
두진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성큼성큼 진흙탕을 걸어갔다. 대운이 우산을 들고 달려왔다. 차에 들어가 앉으니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 아닌가. 평소에 이 사회를 지배하는 악마들에 대해서 환멸을 느낄 때도 많았고, 섬뜩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이건 너무 아니다. 누가 더 악마인가 시합이라도 나선 건가.
“제발 아무거라도 좀 찾아. 응? 좀 찾아!”
괜히 차에 올라탄 팀원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두진뿐 아니라, 다들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다. 비는 쉬지도 않고 미친 듯이 쏟아지고, 아침 하늘은 시커먼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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