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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장 - 공황상태(panic stations)
1.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사상 초유의 테러리스트는 죽었는데, 연속살인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거물 정치인이 잔인하게 살해를 당했고, 그의 전속 기사까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음총에 살해당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온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정국을 휩쓸었다. 정치권도 일제히 들고일어나서 싸우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도 좌우가 나뉘어서 서로 시위로 맞붙었다. 그냥 비난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귀다툼처럼 서로를 증오하고 물어뜯었다.
두진이 보기에는 그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런 일에 왜 좌우가 나뉘고, 종북이니, 친일파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신의 불안함과 괴로움을 위안 받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괴로우니까 누군가를 대상으로 화풀이를 해야 속이 편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검경이 합동으로 거대한 수사대를 편성했다. 시민들의 제보가 특히 필요해서 공개수사로 또다시 전환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 두진은 우재준과 함께 별동대를 만들어서 프리랜서의 모든 정보를 모으고 다시 나누는 역할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 명이 더 죽어나갔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실이 있다고 세상에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영석이 속해 있는 라인에게는 그 사실을 통보했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가 붕괴될 지경이었다.
장맛비는 오락가락하면서 사람을 미치게 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우재준과 두진은 매일 머리를 맞대고 각종 정보를 모으면서 프리랜서를 찾고 있었다.
프리랜서는 매일 정확하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대답하지 못하면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는 두진이 악에 받쳐서 욕을 퍼부었다. 프리랜서는 두진에 태도에 대해서 아무 반응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한 가지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두진은 비에 젖은 재킷을 털면서 식당에 앉아서 우재준에게 물었다.
“뭡니까?”
우재준도 손수건으로 머리의 빗물을 털어냈다. 지겨운 장마다.
“정말 우팀장님 수준에서도 알 수 없는 겁니까?”
우재준이 두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진이 그냥 쓰게 웃었다.
“뭐 하도 답답하니까 물은 겁니다.”
“나도 답답합니다. 사실 알면 확 말해버리고 싶어요. 그런데 내 직급에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저도 TC라는 암호명이 뭔지 알려고 은밀히 정보를 캐보는데, 상대가 너무 크거나 너무 높은 거겠죠. 아마 제 윗분들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존재는 확실한데,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게.”
“그래서 생각한 건데… 아무래도 카운트다운을 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도 운전기사들이나 가정부들마저 그만두는 상황인데, 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최영석 라인이 우리가 아는 걸로는 열 명인데, 프리랜서는 몇 명으로 알고 있을까요?”
“글쎄요. 그들 자체가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그런 라인은 없다고 하니 알 수가 있나요.”

서로 답답하게 대화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오후에 다시 두진은 급하게 우재준을 찾았다. 그리고 달려온 우재준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줄줄이 쓰여 있는 상호명들 중에 하나가 체크되어 있었다.
“프리랜서가 주문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제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주소가 다섯 개입니다. 이 다섯 개를 전부 기습해볼 작정입니다.”
시도해볼 만했다.
“탐문은 위험하니까 사전 지원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확인한 다음에는 전력을 다 집결합시다.”
“아직 위에서 공개수사를 할 방침은 없는 겁니까?”
“공범이 있었다는 논리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으니까 곧 공개수사로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기만 하면 특공대라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
우재준은 두진에게서 주소를 받고 급하게 자기네 팀으로 돌아갔다.
“마리하고 연락할 수 있지?”
우재준이 간 다음, 두진이 영란에게 물었다.
“네. 연결할까요?”
“만나자고 해. 마리는 내가 외국어 못하는 줄 알잖아?”
“장소하고 시간은요?”
“즉시 이 근처로 오게 해.”
“즉시? 이 근처로…요?”
“그래. 달려올 거다. 프리랜서한테 엿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지금쯤 미칠 듯이 독이 올라 있을 거야.”
두진은 이번 기회를 다시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불러 모을 수 있는 대로 불러 모은다. 그래서 오늘로 끝을 본다.

마리는 얼굴에 기미가 보였다. 담배를 연신 피우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오래 훈련 받은 고급 요원이라고는 해도, 계속 당하고 당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평정심을 잃는 법이다.
“프리랜서라고 확신하는 건가요?”
영란이 통역했다.
“확신이 올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주소들 중 하나에 프리랜서가 있다고 장담합니다.”
“우리와 협조할 의향이 갑자기 생기신 건가요?”
“우리가 비협조적인 적도 없었는데 무슨 말이오?”
“여기 한국의 모두가 비협조적이죠. 비밀이 많아서 정보 공유를 꺼리더군요.”
“기관과도 협조가 안되던가요? 난 우리하고만 안되는 줄 알았는데?”
“이 나라는 시스템이 엉터리예요.”
“원래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는 그렇게 엉망으로 보이는 법이오.”
“일부에게만 자유롭겠죠.”
“논쟁할 마음 없소. 같이 하겠소?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면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소.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같이 안 할 이유가 없어요.”
두진은 한국 땅에서 모사드나 CIA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한국의 기관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우재준이 두진의 수사에 따라서 움직이기로 한 이상, 당연히 마리의 팀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의 통제에 따라주시오.”
두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주소지 확인 결과 테헤란로의 오피스텔 하나가 특정되었다. 다른 주소지의 주인은 모두 확인이 되었는데, 단 한 곳만 확인할 수 없었다. 두진은 그곳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우재준의 팀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그사이에 경찰특공대 1개 중대와 마리가 가진 조력팀 이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두진은 우재준, 마리와 함께 테헤란로의 프리랜서가 묵는 오피스텔에서 멀리 떨어진 빌딩에 상황실을 만들었다. 별도로 수사팀이 눈에 뜨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상황차량 여러 대를 준비해서 운행했다.
우재준의 팀에서는 잠복하면서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 오피스텔은 A동과 B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로 두 개의 건물을 이어붙인 것처럼 되어 있고, 그 사이는 층마다 중정을 놓고 돌아가듯이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특정된 호실은 B동 302 호였다.

프리랜서는 그날 저녁부터 내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타났는데 모를 수도 있다. 우재준은 관리실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그는 관리실과 경비실에 부탁해서 지나간 CCTV를 확보했다. 그리고 샅샅이 뒤졌다.
프리랜서로 보이는 인물이 302 호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날짜는 일주일 전에 와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이었다. 302 호에서 박스를 꺼내고, 지하의 주차장에 가서 차에 싣고 사라진 것이다.
차량을 수배했다. 주차장 CCTV에 기록된 차량을 수배해서 비밀리에 찾았지만, 그 차량은 이미 나흘 전에 도난차량으로 신고된 것이었다. 그동안 도난차량을 수도 없이 파악했지만, 프리랜서는 도난차량을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차량 추적으로 잡는 건 불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프리랜서가 바로 이 오피스텔 302 호를 창고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CCTV를 상황실과 연결하고, 경비들과 괸리실에 철저한 함구령을 내렸다. 그들은 당연히 협조적이었다. 다만, 범죄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상황실에서 오피스텔 내의 CCTV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밤이 되었다.
하루라도 늦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누가 목표가 되든, 무슨 수를 쓰든, 영락없이 죽어나갔다. 외국으로 전부 내보내면 어떨까 싶을 지경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들 모를 리가 없었다.
열 명 중에서 셋이 죽고 일곱이 살았다. 그 일곱 중에서 누군가가 오늘 밤에 죽는다.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죽는다. 온갖 대비를 해도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폭발이나, 저격으로 죽는다.
일곱 명에게는 특수대와 기관을 비롯해서 모든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이 총동원되어서 철통같이 에워쌌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두진으로서는 그 하루가 미칠 것만 같다. 이렇게 되니까 무능을 떠나서 공황상태에 다다른다. 온 나라가 뒤숭숭해지고, 안보까지 위험해 처했다고들 떠들어댄다. 표적이 된 최영석 라인의 일곱은 각자가 사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각에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멈추겠습니다.’
“뭐?”
‘소용없어 보여서요.’
“이제까지는 소용이 있었던 거냐?”
‘검사님 위치로는 알아낼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장난해?”
두진은 분통이 터져서 빽 소리질렀다.
“그동안은 그걸 몰랐다는 말이냐? 이 악마새끼야.”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누군가는 입을 열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아는 게 없으니까! 넌 있지도 않는 사실을 네 마음대로 소설로 써놓고는 거기 맞춰서 미친 지랄을 하는 거야!”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이냐? 너는 알고 나는 모르는 거라도 있어서 하는 말이냐?”
‘최영석이 마지막에 내게 들려준 말을 모르시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최영석이 뭐랬는데?”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뭐야?”
‘특별한 인물 하나를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니셜만 들어도 아는 인물입니다.’
“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그게 누군지 아셔야만 막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게 누군데?”
‘내가 알려드릴 수는 없죠. 그런 걸 알아내는 게 검사님 일 아닙니까?’
“너. 내가 꼭 잡는다. 이 악마새끼야.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아는 놈.”
낮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으스스한 음성이다.
‘인간과 파리가 다른 건 또 뭡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쨌든 이제 카운트다운은 멈춘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영란이 달려왔다.
“서울 강남구의 공중전화입니다.”
“공중전화?”
이제까지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그 즉시 위치를 추적하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랬는데 공중전화라니. 자기 위치를 공공연하게 노출시키다니.
“이 자식이 이제는 우리를 핫바지로 보는구나.”
영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하죠.”
“어디야? 체포조 급파했어?”
“예. 그래도 소용없겠지만…”
“위치가 어딘데?”
“가까워요.”
“그래?”
정신이 번쩍 들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오피스텔로 갈 수도 있다.
“우팀장님 연결해줘.”



2.

성하는 자전거를 타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우비를 뒤집어쓴 채, 배달통을 들고 낡은 50cc짜리 오토바이를 모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배달부였다.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날이 약간 싸늘했다. 이상 저온으로 인해 마치 겨울이 되돌아온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행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성하는 오토바이를 오피스텔의 주차장이 아닌 뒷문에 댔다. 배달을 온 사람들이 흔하게 대는 곳이다. 물론, 여기서 현관을 열어주도록 인터폰을 눌러야 하지만, 현관 옆의 경비실 시선을 생각해서 그러는 척만 할 뿐이다. 성하에게는 현관문을 여는 자석키가 있었다.
배달통을 들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들어서면서 경비실을 곁눈질로 보았다. 경비들이 무언가와 자신을 흘끗 비교해보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번 드나든 익숙한 경비실이다. 그래서 조심한다. 왜냐하면 익숙하면 실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주 오면서도 같은 행색으로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은 이상한 풍경들이 꽤나 눈에 뜨인다. 오피스텔 주변 길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찍히는 대로 주차위반 딱지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하는 혹시라도 찍힐 것을 염려해 정차 자체를 하지 않는다. 우연히 들은 오피스텔 주민들의 대화를 엿들어서다. 가게에 들러서 잠깐 물건 좀 사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그사이에 찍혀서 과태료가 나왔다는 불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길 건너에만 봉고차가 두 대, 승용차가 그 건너편에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한 사내가 차에서 내려서는데, 점퍼 가슴 부분에 핀을 꽂고 있다. 흔하디흔한 비표가 아닐까? 서로 같은 편이라는 표시로 다는 비표일 수 있다.
게다가 경비들이 출입자들을 무언가와 맞춰서 확인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출입자를 일일이 쳐다보고 아래를 보고 그러지 않는다. 훈련 받지 않은 경비들이어서 자꾸만 확인하는 태를 내는 것이다.
무언가 있다.
변화를 감지했다. 시간상 장비를 택배로 받은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변장을 했지만, 택배를 받았던 때와 비교해서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에 두고 온 장비를 포기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너무 중요한 장비가 많다. 최소한 배달통에 넣을 수 있는 만큼이라도 챙겨서 가지고 나와야 한다.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가리봉동의 휴식처에서 빠져나올 때보다 더 긴장했다. 그 거리는 복잡했지만, 여기는 사방으로 넓은 도로가 뚫려 있다. 그리고 비가 내리니까 한적하다.
성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302 호로 들어가지 않았다. 배달주소는 302 호로 했지만, 사실 성하는 312 호도 얻어두었다. 그리고 그곳을 창고로 삼았다. 302 호는 아무것도 없다. 302 호와 312 호는 약간 엇갈려서 마주보고 있다.
엘리베이터의 CCTV와 복도의 CCTV가 배달통을 든 자신이 3 층에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긴장했을 것이다. 312 호로 가는 건 일단 좋은데, 문제는 안에서 누군가가 열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알아채면 골 아프다.
최대한 아닌 척하고 벨을 눌렀다. 그리고 슬쩍 키를 가져다 대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재빨리 중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비를 벗고 가방을 둘러메었다. 나머지는 배달통에 집어넣고 다시 우비를 입은 다음, 순식간에 다시 나왔다.
빨라야 했다. 느리면 이상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을 들어가서 빨리 나오지 않는 배달부는 없다. 게다가 CCTV를 들여다보는 감시자들이 경비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주변 풍경으로 보아서 이미 CCTV를 연결해서 보고 있는 건 추적팀이다.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면서 약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에 들이닥치면 난타전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빠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CCTV를 들여다보던 영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장면이었다. 3 층에 내리길래 긴장해서 보고 있었는데, 배달부는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안에서 문을 열어주면 인사를 하게 마련이다. 아니면 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사람의 인기척이 보이게 되어있다. 하다못해 문을 여는 손이라도 보이게 마련이다.
그 부분을 확대해서 보았다. 그러자 배달부가 슬쩍 손에 든 자석키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문을 열었다.
소름이 확 끼쳤다.
“프리랜서예요!”
두진을 비롯해서 모두가 영란이 가리키는 CCTV로 달려들었다.
“배달부가 자기 손으로 문을 열었어요.”
두진이 놀라서 소리쳤다.
“바로 연락해서 출구 봉쇄하고 엘리베이터하고 계단에 특공조 투입하라고 해!”

성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오토바이를 세워 둔 뒷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길 건너에서 특공조가 달려들었다. 그뿐 아니라, 레인코트를 입은 사내들도 사방에서 달려왔다. 모두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성하는 오토바이를 포기했다. 배달통 안에 있는 물건도 포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쪽 현관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지하로 내려가면 갇힌다.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배달통을 든 채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경비들이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쳐다보았다. 본 체도 않고 우비를 벗었다. 경비들이 놀라서 안으로 숨었다. 배달통을 놓고 등에 멘 가방에서 소음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이용해서 3 층까지 달려 올라갔다. 3층을 얻은 이유는 원래부터 3 층에서 다른 동으로 이동이 가능했고, 정원으로 내려가는 키 높은 나무들이 있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정원은 다른 곳보다 지면이 높았고 공원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도로로 나가는 모퉁이를 향해서 계단이 개방되어 있다.
소음총을 허리에 꽂고 3 층에서 나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무를 타고 내려가서 정원에서 곧바로 도로 방향으로 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사방에서 포위한 채로 몰려드는 특공대가 보였다. 건너편 오피스텔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누군가가 발견했는지, 삣삣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핑핑 총알이 날아왔다. 소음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달려들게 하면 안 된다. 돌아서면서 소음총으로 선두의 하나를 겨누고 안면에 총알을 먹였다. 방탄복을 입은 상태에서 몸을 움츠리게 하는 방법은 안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제히 좌우로 몸을 피하는 게 보였다.
오피스텔의 주차장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막 주차되는 차가 눈에 뜨였다. 내리는 중년의 사내를 달려가는 기세 그대로 발길로 걷어찼다. 사내가 나가떨어지며 키를 놓쳤다. 그 키를 주워 들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출구로 몰았다. 특공대가 총을 겨누면서 조심스럽게 입구 쪽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힘껏 액셀을 밟으면서 튀어나갔다.
도로로 나서자, 사방에 이미 차량들로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차량들이 엉켜들게 마련이다. 경찰차와 일반 차와 특공대의 차가 엉키는 사이로 정신없이 차를 몰아서 교차로를 지나 달렸다.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되는 대로 이리저리 꺾다가 보니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터널이 보였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 차를 세우고 뛰어내렸다. 바로 뒤에서 쫓던 차량들이 세워졌다. 사복경찰로 보이는 사내들이 튀어나오면서 총을 겨누었다. 상대하지 않고 터널 옆의 숲으로 달려 올라갔다. 핑핑 총알이 귓등을 스쳤다.
한순간, 어깨가 화끈해졌다. 총알이 스친 듯하다. 산을 미친 듯이 달려 올랐다. 그리고 숲을 쉬지 않고 달렸다.

“전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산을 에워싼다.”
두진은 소리쳤다. 어떻게 다 잡은 걸 저렇게 놓칠 수가 있나. 산 위로 올라가면 잡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나마 위안은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이다.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이 어디야?”
산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어느 쪽이든 가능했다. 서울에 있지만, 생각보다 넓은 산이다. 에워싸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헬기 지원 요청해!”
“일기가 나빠서 어렵답니다.”
“추락하더라도 띄워!”
두진은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잡을 수 있다.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우재준이 옆에서 무전에 대고 어딘가로 소리쳤다.
“경찰 헬기로는 부족해. 소방 헬기도 띄워!”
구룡산을 두고 입체적으로 대대적인 작전이 벌어졌다.

성하는 산을 미친 듯이 달렸다. 비가 와서 다행이다. 달리기는 어렵지만, 대신 공중지원도 어렵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헬기들이 몰려들었다.
헬기가 한 번 잡으면 그 시선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헬기보다 빠르게 달리기도 어렵고, 숨어들면 그 주변으로 지원이 달려오기 때문이다.
결국 방법은 헬기에서 잡지 못하도록 지그재그로 나무 밑을 끼고 가는 수밖에 없다. 덕분에 속도가 느려져도 어쩔 수 없다.
나무 아래로 허리를 굽히고 달렸다. 생각보다 길이 험했다. 험한 길은 내리막을 꼭짓점만 찍듯이 돌 위를 차면서 달려 내려가면 편하지만, 그렇게 하면 헬기에 노출된다.
이중 삼중으로 코너에 몰리는 느낌이었다. 산에서 빨리 빠져나가는 게 유리하다. 그 방법밖에 없다. 날이 밝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진땀이 났다. 어깨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압박붕대로 지혈을 했지만, 많이 터진 상태여서 움직임에 따라 피가 다시 흐르는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위기를 느꼈다. 그럴수록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면서 산을 내려갔다. 시간을 단축하기보다는 모험을 감수해야 했다.
산을 다 내려오자, 넓은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넓은 길에 개미 새끼 하나 오가지 못하도록 진을 치고 있는 경찰특공대와 기동타격대 등의 차량이 줄줄이 세워져 있고 경찰들이 경찰견까지 몰고 산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경찰이 진입하자, 오히려 고마운 느낌이다. 어둠 속에 납작 엎드려서 차량 근처로 다가갔다. 특공대 차량을 세워놓고 특공대원 하나가 산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슬며시 다가가서 목을 비틀어서 차 뒤에 태우고, 그 안에서 옷을 벗겨서 갈아입었다. 운전석으로 돌아와서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모두의 시선은 산으로 가 있었다. 반대쪽은 넓은 도로여서 경계하고 말고가 없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면 즉시 눈에 뜨일 것이다.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중간에 도로를 막고 있던 경찰 하나가 흘끗 돌아보았다. 일부러 무전기를 이에 대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척하며 한 손으로 차를 몰았다.
경찰이 그냥 다시 시선을 돌렸다. 경찰을 지나쳐서 교차로를 돌아서 유유히 새벽의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달렸다.
어디든 병원으로 가서 의약품을 훔쳐야 한다. 큰 병원이 좋겠다. 병원을 찾아서 달렸다.

번호 제목 날짜
26 24 장 - 살아남은 자(者)들에게 고(告)함 2015년 04월 07일
25 23 장 - 인스파이어 1(INSPIRE 1) 2015년 03월 31일
24 22 장 - 마지막 기회(LAST CHANCE) 2015년 03월 24일
23 21 장 - 로맨티스트(ROMANTIST) 2015년 03월 17일
22 20 장 - 잠적(disappear) 2015년 03월 10일
21 19 장 - 클레이모어(CLAYMORE) 2015년 03월 03일
20 18 장 - 공황상태(panic stations) 2015년 02월 24일
19 17 장 - 카운트다운(COUNT DOWN) 2015년 02월 17일
18 16 장 - 가이드라인(GUIDE LINE) 2015년 02월 10일
17 15 장 - 십자포화(Cross fire) 2015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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