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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 - 마지막 기회(LAST CHANCE)
1.

초겨울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억새들이 미친 듯이 일렁였다. 그 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마리와 두진이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검사님이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밀착이 필요해요. 지금 프리랜서는 여기 부산에 있어요.”
“난 더 여기 머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벌써 징계를 먹어도 몇 번 먹을 만큼 찍혔습니다.”
“그런 거 무서워하지 않으시잖아요?”
마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요? 나보다는 기관과 협조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기관과도 협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관에서든, 공안부에서든, 나오는 정보를 모조리 드릴 수 있어요. 같이 팀을 만들기만 하면 이제 정말 프리랜서를 잡을 수 있어요.”
“같이 팀을 만들다니? 난 검사입니다. 모사드의 조력자가 아니라.”
“알아요. 우리가 조력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요? 사실 검사님은 누구보다도 프리랜서를 잡고 싶으시잖아요?”
두진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정말 잡고 싶다. 잡고 싶어서 미치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기관에서 어젯밤에 또 한 번 엿을 먹었어요. 알아요?”
“무슨 뜻입니까?”
“엿을 먹고도 먹은 줄 모르는 게 문제지만…”
마리가 커피를 다 마시고 창을 열었다. 찬바람이 시원하게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김영화를 풀어준 건 천인식에게 기회를 주어서 그 여자를 다뤄보라는 거였어요.”
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인식이 알아낼 거라면 기관이나 공안부에서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지 않소?”
“그게 아니라, 일종의 미끼였어요. 여자가 있는 곳이면 프리랜서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으로 그렇게 한 거였죠.”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지 않소?”
“통했던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프리랜서가 천인식에게 접근한 건 틀림없어요.”
“어제?”
“그건 확인이 안 되지만, 천인식이 갑자기 여자는 정말 아는 게 없다고 기관에 통보했어요.”
“공안부에서 그 작자를 가만둘 리가 없는데?”
“천인식은 이제 거물이에요. 공안부에서 건드리지 못해요.”
지랄.
“기관과 협조하고 있기도 하고, 또 아주 높은 곳과 손이 닿아 있는 듯해요.”
깡패새끼가 검찰 위에서 놀다니.
“짚이는 거 없어요?”
“천인식이 프리랜서의 협박을 받고 돌변했다고 믿는 겁니까?”
“확실해요. 게다가 더 재미있는 건 프리랜서가 천인식의 별장에 갔다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천인식의 똘마니들 여러 명이 병원 신세를 지더군요.”
“별장을 감시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쉽게도 그랬더군요.”
“미친.”
욕이 저절로 나왔다. 별장을 감시했어야 하지 않은가. 마리를 돌아보았다.
“당신네라도 감시했어야 하지 않소?”
“우리는 여자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고 있었어요.”
마리가 지도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여기를 노리고 있었어요.”
지도에는 장림공단이 표시되어 있었다. 처음 프리랜서의 흔적을 발견했던 곳이다.
“프리랜서는 서울에서 이미 한 번 거쳐간 곳에 들어가서 작업을 했어요. 장난감 크레모아에 쇠구슬을 넣고 전기 충격기를 바꾸고 강력한 폭약으로 바꾸어 놓는 모든 작업을 한 곳 말이에요.”
“알고 있소.”
“오검사님한테 한 방 먹어서 저격총을 잃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만든 크레모아였지만, 그 성능은 정말 대단했어요.”
마리는 작업대가 놓인 공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전에 있다가 경찰이 기습해서 달아났던 바로 그 공장에서 대담하게 다시 작업을 했어요.”
“대담해서라고 볼 수 없죠. 프리랜서로서도 이제는 은신처를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워낙 전국적으로 알려져서 일반인들의 눈도 이제는 무시 못 하죠.”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서 태연히 생활하고 여자까지 꼬셔서 자기 일에 끌어들여요?”
“그게 프리랜서인 건 확신할 수 있습니까?”
“검사님도 확신하고 있잖아요?”
“주장하고 싶은 게 뭐요?”
“프리랜서는 폴리스라인 안에 들어가서 은신하고 있었다는 거죠.”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두진이 지도 속의 장소를 가리켰다.
“그런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습했죠. 거기는 비어 있는 상태였고, 폴리스라인이 쳐진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어요. 왜냐하면 계약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건물주도 항의할 수 없었고, 프리랜서가 잡히지 않았으니 관련된 장소는 모두 폴리스라인이 쳐진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여자를 쫓지 않고 거길 갔었다는 겁니까?”
“어리석다고 하지 말아요. 어젯밤에 덮쳤다가 의외의 소득을 얻었으니까.”
마리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외국인이었다. 구겨졌던 사진을 다시 찍어낸 것인지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게 누구입니까?”
“자유경제련의 한국 측 대표라고 알려진 인물이에요. 모르시겠어요?”
“이성근.”
“맞아요. 찢어서 불에 태웠더군요. 그래도 다시 복원했어요.”
“그럼 그 공장에 정말 프리랜서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확실하게 그곳에 왔었어요. 게다가 거기서 노구치를 고문했어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미친놈은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걸 생각한다.
“이 사진을 보고 즉시 백방으로 정보를 끌어모았죠. 그리고 알아냈어요. 프리랜서가 뭘 노리는지를.”
마리는 신문 스크랩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모레 저녁에 기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인들이 모여서 행사를 해요. 한일경제인포럼. 이런 식의 세미나 보신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무슨 학술대회 같은 겁니까?”
“아녜요. 그냥 파티하고 같아요.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도 한대요. 일본 측에서 거나하게 차릴 모양이에요.”
대충 어떤 모임인지 알 것 같다. 일종의 단합대회 같은 거다. 세미나는 대충 하는 시늉만 해서 매스컴에게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본격적인 행사는 신나게 마시고 노는 거다.
그런 거라면 두진도 여러 번 해보았다.
“여기 프리랜서가 나타날 것 같아요.”
“프리랜서가 사진 따위를 남겨두어서 유인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까?”
“남겨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복원한 거죠. 타다가 남은 아주 작은 조각 하나로 전체를 구성했어요. 옷깃과 목부분 조금으로 모든 인터넷상의 사진들을 뒤져서 찾아낸 사진으로 같은 사진을 찾고 거기 대입해서 다시 복원해낸 거예요.”
마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두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프리랜서가 부산에 있을 것이고, 정말 이게 목표라면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프리랜서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맹렬히 TC를 쫓는가. 이렇게 긴 세월을 쫓을 만한 일인가? 그렇게 복수심이 강한가?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여자 하나 죽은 것으로 이렇게 서로를 괴롭혀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게는 애인이 없고, 부모가 없고, 자식이 없었겠는가? 왜 이렇게 악마가 되어서 온 세상을 괴롭히는가?
조금 비틀어지기는 했어도, 나라는 그렇게 또 돌아가지 않는가? 어차피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고, 그들에게 국가시스템은 너무나 중요한 기반이 아닌가?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도 천국일 수 없다. 어느 집단이 운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은 절대 천국이 될 수 없다.
“프리랜서가 원하는 게 정말 복수일까?”
두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리가 의아해진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정말 그뿐일까요?”
마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광인에게는 우리가 생각 못하는 게 있기 마련이에요.”



2.

해운대에 다시 대운과 진구와 영란이 모였다. 각자가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상부에서 자신을 또 이용하려고 작정한 것을 깨달았다.
“기장 가는 길에 별장형 콘도들이 많아. 그중 제일 큰 콘도에서 워크샵이 열린다고 한다. 인원이 무려 50 명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사람이 프리랜서의 목표라고 한다.”
“이성근이 목표라고 하는 건가요?”
영란이 이성근의 사진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이성근은 지난 정부 들어서 갑자기 크기 시작한 신생 그룹의 총수였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신장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일 정도로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한 그룹이 바로 김성근의‘청부그룹’이다.
“현재 다들 그렇게 보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것도 확실치는 않죠?”
“확실한 것 아닐까?”
대운이 진구와 함께 지도를 벽에 붙이고 있었다. 부산의 전체 지도에서도 광안리와 해운대, 송정에서 기장과 대변 일대를 확대해서 뽑은 지도다.
해안선을 따라서 길게 도로가 이어져 있고, 한쪽은 산이지만, 고속도로가 잘라낸 듯 이어져 있고, 바다 쪽은 확 터져 있으니까 몰아가기는 좋겠다. 정말 노구치를 살해한 게 프리랜서이고, 나타나주기만 한다면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자. 두진은 그렇게 다짐했다. 지난봄처럼 악몽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주변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들이 이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이용 당해줄 용의가 있었다.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지?”
“육상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바다 쪽입니다.”
“바다 쪽은 국경이나 같은데 평소에도 통제가 확실하니까 비상만 걸어도 충분히 감시되지 않을까?”
“생각보다 어렵다던데요?”
진구가 인원현황을 가지고 왔다.
“평소 업무만으로도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화물 물량의 80 퍼센트 이상이 여기 부산에서 처리되고 있으니까요.”
“항구 쪽은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항구를 관리하고 경비하는 인원들 탓에 지원해줄 인력이 없다는 거죠.”
“어느 정도나 지원할 수 있다던가?”
“접근하는 선박들이라면 철저하게 체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낚싯배 하나까지 다 점검하게 해달라면 되지.”
대운이 전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검사님. 우팀장입니다.”
멈칫. 전화기와 대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야? 전화를 안 받으니까 대운에게 전화를 한 건가?
“해안 쪽에 지원할 인원이 있답니다.”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오검사님.”
“무슨 일입니까?”
“해양 쪽을 철저하게 막기만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도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직접 가서 막으시지 그래요?”
“하하. 왜 이러십니까? 제 전화도 받으시지 않고… 우리가 뭐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용건만 말합시다.”
“군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군대? 해군?”
“훈련을 이유로 동원해서 완전히 봉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수부대도 가용할 수 있습니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미운 놈이라도 필요하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 아니라면 인생에 두 번은 마주치기 싫은 놈이지만 괜찮다.
“그럼 거기 지휘관을 소개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지금 계신 곳으로 함께 가겠습니다.”
두진은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아서 그냥 전화를 끊었다. 이미 자기 움직이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마리를 내세워서 다시 자신에게 접근하는 걸 알았다. 그래도 마치 범죄자 감시하듯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건 기분 더러웠다.
대운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이런 인간보다는 프리랜서가 전화하면 좋겠다.”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 그건 벌써 빼앗겼지. 증거물이잖아. 공안부에 넘겨줬지.”
“아, 제 전화로 혹시 올까 해서요?”
“넌 전화 안 바꿨잖아?”
“그렇죠. 그렇지만 이제 프리랜서가 우리한테 접촉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검사님 덕에 한 번 잡힐 뻔했지 않습니까? 예전처럼 만만하게 보고 까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 위축될 놈은 아니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프리랜서인지, 아니면 다른 놈이 프리랜서를 흉내 내서 자기 목적을 채우려고 드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나도 매스컴 한 번 이용해볼까?

우재준은 매섭고 강직해 보이는 해군 대령과 준위 한 사람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마리가 마련해준 사무실에 차린 수사본부지만, 꽤 넓어서 방 하나로 따로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줄 압니다.”
“그건 지금 이야기하지 맙시다. 각자 자기 소속된 곳이 있으니까 하는 일도 다르겠지요.”
“제가 검사님을 밀어낸 건 아닙니다. 저야 검사님께서 상부와 협조하실 줄 알고…”
“지금 일 이야기나 합시다.”
우재준에게 다시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군인들에게 충분히 작전을 설명하고, 배치해주기를 원했다. 물론, 그냥 부근에서의 훈련으로 해서 프리랜서가 들어오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안심할 수 있도록 우팀장네가 잘하는 걸 좀 해줍시다.”
우재준이 무슨 소리인가 해서 쳐다보았다.
“다른 게 아니고 매스컴을 이용해서 지금 이번 부산 사건의 범인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를 흉내 내는 놈이라고 해주십시오.”
“그래야 하는 이유가…?”
“그래야 프리랜서가 안심하고 자기 계획을 실행할 것 아닙니까?”
우재준이 멍해진 표정으로 두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잘 하실 수 있으시지요?”
“그런 이유 하나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왜요? 지금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공안부나 기관도 핑계거리가 되고 좋지 않나요?”
우재준은 놀리는 건가 하는 표정이 되어 쉽게 대꾸하지 못했다.
“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두진이 싱긋 웃었다. 세상 풍파는 맞아봐야 안다. 처음 강력부 검사가 되어서는 이 세상에 사기꾼, 도둑놈, 깡패 새끼들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은 사기꾼에 작은 도둑놈에 어설픈 깡패들만 있는 게 강력부였다.
이 세상에는 조직과 시스템과 자본으로 무장한 어마어마한 사기꾼과 도둑놈과 깡패들로 가득했다. 번쩍이는 간판 내걸고 사기 치고 도둑질을 한다. 작은 범죄자들에게는 자기편이 없지만, 이 거대한 사기꾼들에게는 든든한 자기편이 존재한다. 바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식자층과 법관들이다.
그중에 으뜸이 정부다. 정부도 사기를 친다. 정부의 사기는 너무 크고 거대해서 그게 잘못된 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을 제어할 세력은 오로지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투표로 정부를 택할 수 있다. 그러나 투표로도 바꾸지 못할 세력이 있다. 그게 바로 경찰과 검찰이다. 이 조직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 그래서 법을 집행하는 집단은 어느 집단보다도 정의로워야 한다.
“믿겠습니다.”
두진은 웃으면서 우재준을 바라보았다. 나도 물 먹을 만큼 먹었다. 이 개자식아.



3.

날이 차갑고 상큼했다. 햇빛이 좋아서 시야도 훌륭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작전을 다시 점검하고 각 차량들의 상태와 무전의 성능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모든 게 제대로 세팅이 된 걸 확인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두진은 본부에 영란이 혼자 있게 하고 대운과 진구를 데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기로 했다.
매스컴은 바라던 대로 수사전문가들과 프로파일러들이 나와서 모방범죄에 대해서 하루 종일 떠들어댔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모방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알게 되었다.
행사는 오후 4 시에 시작해서 6 시에 끝나고, 그 후는 저녁 식사와 이후의 단합대회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콘도는 오랑대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세워져 있었다. 들어가는 길도 하나, 나가는 길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송정에서 들어가는 도로와 대변에서 들어오는 길뿐이다. 나머지는 숲과 바다로 막혀 있다. 횟집들로 이루어진 작은 골목들이 조금 있지만, 골목은 막기 쉬워서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산속은 완전히 매복을 끝냈다. 도로에서 산으로 들어서려면 절대로 눈을 피하지 못할 상태로 해놓았다. 바다는 해군들이 먼 바다에서 해안을 감시하고 있었다. 근해에서는 해경들이 해안으로 들어가는 배도 나가는 배도 모두 세세히 인원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참가자들이 하나씩 차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 또한 한 명씩 몰래 신원을 체크했다.
그렇게 체크하는 동안, 40 명 모두가 들어갔고, 행사 진행 스탭들까지 모두 63 명이 들어갔다. 그때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두진은 직접 콘도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운과 진구를 데리고 1 층에 있는 프런트로 가서 안쪽에 들어가 앉았다. 이미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프런트의 직원들은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하는 행사니까 의례적으로 나와 있는 줄로만 알게 해두었다.
워크샵이 시작되고, 그사이에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점검을 시작했다. 콘도에 들어와 있는 스탭들에 대해서도 다시 점검을 해야 했다. 아무래도 신분을 위장해서 들어오는 건 그쪽이 허점이 많을 터였다.
끝나기 전에 기자들이 카메라를 메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하나씩 신원을 체크했다. 역시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이대로 헛물을 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놈에게 저격용 총은 없는 거죠?”
대운이 문득 한 마디 했다.
“전번에 우리가 수거했잖아.”
진구가 대꾸했다. 두진은 퍼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구할 수도 있지 않나?”
대운에게 물었다.
“전번에 자네가 그랬지? 부산에서 총 더 팔겠다고 다니던 놈이 있었다면서?”
“그랬지만, 그놈은 다시 들어오면 바로 체포죠. 이미 이미그레이션에 등록되어 있는데.”
“꼭 그놈이 다시 와서 파는 게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요즘 부산 바닥에서 그렇게 접촉할 상황이 될까요? 다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는데요?”
“그래도 저격용 총을 가지고 있다면 낭패야.”
“압수한 총에 소음기까지는 없었잖아요? 소리가 크게 날 텐데…”
“소리가 나면… 좋지.”
두진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제는 누구 하나 죽는 건 무섭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더라도 프리랜서를 잡는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게 놀랍다.
“전에 들어왔던 배가 다시 들어온 적이 있나 김팀장한테 연락해서 체크 좀 부탁해 봐.”
전화를 걸게 하고 잠시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어차피 저격을 할 만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먼 바다에서 배에 타고 저격을 하면 모를까 가깝게는 그럴 만한 시야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이 해안가는 섬이라고는 죽도 하나뿐이다. 죽도는 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출입이 금지된 개인 사유의 섬이다.
그러고 보니 천인식의 별장이 기장의 대변항에 있는 별장이라고 한 듯한데, 이쪽이 풍광이 좋아서들 몰려드는 건가 싶었다.
영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들어왔다가 나간 지 3 일이랍니다.”
“뭐?”
“보름 만에 다시 출항했다고 하는데요? 정기화물선이라 계속 들락댄 것 같아요.”
“그 총 팔았다는 놈은?”
“내리지 않았답니다. 내리지 않은 선원은 파악하지 않아요.”
“다른 놈 누가 내렸을 거야. 그쪽… 아냐. 그만두고 여기 집중해.”
두진은 이제 와서 그런 걸 수사할 시간도 없고 영란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 시키는 게 싫었다. 어차피 저격은 불가능하다.
대운을 돌아보며 물었다.
“시설은 전부 감시했지?”
“예. 탐지기로 건물 전체를 훑었습니다.”
“천정이랑 바닥도 다?”
“그럼요. 건물만이 아니라 차량들까지 전부 검사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주변에 알려. 저격 장소가 될 만한 곳에 특공조 보내라고 해.”
대운에게 시켜놓고 이제는 CCTV를 들여다보았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의심이 갈 만한 상황은 없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싶군. 긴장해서 안면이 팽팽해진 걸 느꼈다.
마지막 기회다. 제발 나타나라.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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