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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를 버렸더니 70개의 보물이 생겼다
‘제과 업계 만년 4위’ 1996년 CEO로 복귀했을 당시 크라운제과는 스스로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크라운제과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던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기업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를 통해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신(新)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크라운제과의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당시 크라운제과는 ‘죠리퐁’이나 ‘산도’와 같은 장수 제품을 통해서 시장에 신뢰를 주고 있었지만 고객들은 오래된 회사라는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새롭고 신선한 크라운제과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나는 ‘고객 감동 경영’을 회사의 이념으로 새롭게 정하고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기업 CI(통합 이미지)를 발표했다.

아울러 판매 품목을 대폭 늘렸다. 건빵, 새우칩, 한과세트와 같은 과자와 둥굴레차, 대추차, 보리차 등의 차 종류는 물론 홍삼 드링크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어서 사과, 배, 당근, 캔커피 등 다양한 음료를 출시했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경영의 결과로 크라운제과는 1996년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1997년 갑자기 찾아온 외환 위기에 발목을 잡혔다. 확장 일로의 사업 정책을 추구하던 와중에 들이닥친 IMF 구제금융의 파고 앞에서 크라운제과는 난파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위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크라운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통해 그간 크라운제과 조직에 숨어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선택’ 후 ‘집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바로 총 300여 개에 달하는 제품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제품 230개를 정리하고 핵심 품목 70여 개 위주로 제품군을 조정했다. 이른바 20:80의 법칙에 따라 매출의 80퍼센트에 달하는 핵심 제품군을 선별했다. 그리고 품목수로는 80퍼센트를 차지하면서도 매출은 20퍼센트에 불과한 230여 개 제품을 정리했다. 명확하고 정교하게 ‘선택’을 한 뒤에 남은 일은 ‘집중’뿐이었다. 선택 후 집중을 통해서 비로소 나머지 70여 개 제품은 자신들의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집중한다. 이른바 덧셈 위주의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덧셈을 진정 빛나게 해주는 작업은 뺄셈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고 기왕 버려야 한다면 ‘잘 버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나는 그렇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야 터득하게 되었다.

IMF 외환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영 환경 변화는 내게 CEO로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했다. 제품을 70여 개로 축소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 뒤에도 큰 책임이 뒤따르는 선택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흔히 경영이나 전략 분야에서 사용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 대신 ‘선택 후 집중’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 속에는 ‘선택’과 ‘집중’을 엇비슷하게 여기는 생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선택 후 집중’이라는 말 속에는 선택이란 행위 자체로서 완벽함을 추구한 뒤에 행동도 뒤따라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선택의 과정과 절차, 밀도를 훨씬 높인 후 결정은 과감하게 하고 조직과 개인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 즉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붓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내 인생의 지론이 정립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제품군을 조정한 데 이어 ‘심장을 도려내지 않는 한 무엇이든 다 한다’는 마음으로 1999년 3월 서울 묵동의 공장부지 1만 평을 매각했다. 아버지와 크라운제과 직원들의 혼과 땀이 서린 그 땅을 포기해야 했을 때 내 마음은 시시각각 무너져 내렸다. 고통스러운 선택의 도미노는 계속됐다. 전국에 흩어진 영업소 관련 자산을 처분하고, 공장 철수도 단행했다. 7개 공장 가운데 4개 공장을 정리해 400억 원을 확보했다. 이것으로 일단 단기 부채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크라운제과의 자존심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자산이자 핵심 가치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크라운제과 가족들이 이어온 제과 명가로서의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화의를 신청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약 800대에 달하던 크라운제과 영업용 차량의 색깔을 바꾸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다소 힘이 없어 보이는 분홍색을 새로 만든 CI에 맞춰 짙은 자주색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회사가 법정 화의 상태에 돌입한 시점에 5억 원이라는 큰 비용을 그런 곳에 쓸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크라운제과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그때야말로 전 국민들에게 아직 크라운제과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뜻하게 바뀐 우리 회사의 영업용 차량이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자 크라운 제과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비싼 임대료를 각오하고 크라운제과 사무실을 강남으로 옮겼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 부분까지 줄인다. 하지만 이런 무차별적인 비용 절감 정책이 훗날 화근이 되어 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 형편이 어려워지면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이를 방치할 경우 기업은 존립 기반을 잃게 된다. 경영 위기로 인해 크라운제과 직원들이 의기소침해지거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트렌드에 뒤처진다면 우리는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당시의 내 판단이었다.

그때는 다소 무모해 보였던 내 선택은 훗날 크라운제과에 숫자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기회와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우리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외부 이해관계자와 협력업체의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버릴 것은 버리는 대신 꼭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서 선택을 마무리하자 ‘집중’의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 『과자는 마음이다』 중에서
(윤영달 지음 / 지에이북스 / 263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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