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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나이가 들면 인간의 육체적인 능력은 필연적으로 퇴보하게 되지만 한 개인의 정신은 살아가면서 극적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능력은 죽을 때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이 진화의 ‘흐름’은 엔트로피의 힘과 정반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적인 진화는 이 저항을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수렁 속에 안주하기보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더욱 어려운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개인이 진화했을 때 우리는 세계를 등에 지고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도 진화합니다.

그러나 개인과 인류 전체를 떠밀어, 관성과 같은 인간의 자연적 본능을 이겨내면서 성장하도록 하는 이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나는 사랑을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사랑, 즉 자아의 확장은 진화입니다. 진보하고 있는 진화입니다. 모든 생명 안에 있는 진화의 힘은 모든 인류에게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어디서 옵니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 ‘은총’이라는 것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당혹감을 느끼게 되지요. 사랑은 의식적인 것이지만 은총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 너머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 이 강력한 힘”은 어디서 옵니까?

우리는 은총과 진화라는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신, 즉 우리를 사랑하는 신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마음속 깊이 질문을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보다 더 나은 가설을 세울 수 없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사랑의 신이라는 이 단순한 견해가 쉬운 철학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능력, 즉 성장하고 진화하도록 하는 충동이 신에 의해 ‘불어넣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다시 그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게 됩니다. 왜 신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는 걸까요? 우리는 어디를 향해 성장하고 있습니까? 진화의 도달점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그리고 있다면 어디인가요? 진정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아주 간단하고도 외경스러운 생각, 즉 신은 우리가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신은 진화의 목표점입니다. 신은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인 동시에 우리의 운명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은 알파이며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이라고 할 때의 의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순전히 외경스러움 때문에 이 관념을 회피해 왔습니다. 또한 이 관념은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는 관념인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신이 될 가능성을 믿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관념을 믿는다면 우리는 자기 개선과 영적 성장을 위해 수고롭고 지루한 일을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무가 우리 자신의 의무로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게으름을 직시하게 합니다. 우리는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게으름은 우리 모두의 삶에 나타나는 엔트로피의 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원죄라는 관념이 무의미하며 부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조상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해서 이미 저주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어떤 운명적 죄악이 있다고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나는 게으름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뱀과 선악과의 이야기는 이 점에서 돌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할 일을 하지 않은 게으름에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율법 뒤에 숨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회의를 제기해 보지도 않고 그냥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렸습니다.

어떤 행동의 타당성을 따질 때 인간들은 보통 하나님 쪽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내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정의로운 지시를 경청하거나 그것에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합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그리고 우리 앞에 있었던 모든 조상들처럼 우리는 모두 게으릅니다. 따라서 원죄는 존재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덜 게으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성찰해 본다면 자기 안에 어느 정도는 게으름이 잠복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입니다.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 뒤에 숨은 뜻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은 두려움, 즉 하나님을 대면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묻는 것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현상을 변화시키는 데 따르는 두려움, 즉 현재의 위치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면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두 가지 자아, 즉 건강한 자아와 병든 자아가 있습니다. 즉, 삶에의 욕구와 죽음에의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으며, 또한 게으름이라는 원죄가 있습니다. 이 원죄는 언제나 존재하는 엔트로피의 힘으로서 우리를 수렁 속으로 퇴행시킵니다.

악의 문제에 대해, 심리학에서는 마치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몇 가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악을 인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악은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둠은 빛이 그 모습을 비추어 드러내므로 싫어합니다. 악인은 선이 자신의 악을 드러내므로 선을 미워합니다. 그들은 이런 자기의식에 따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빛과 선과 사랑을 파괴합니다. 악은 게으름이 극한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게으름이라 할 때, 일상적인 게으름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은 사랑을 능동적으로 반대하며 파괴하는 것입니다. 엔트로피와 사랑은 서로 갈등하는 힘이므로, 선이 악을 싫어하듯이 악이 선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악은 사회적 권력의 형태로 인간의 진보에 맞불을 질러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악은 그 특성상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횃불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악의 맹렬함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의해 은총을 받으며, 악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자신을 정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악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멀리서도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상의 악에 대한 싸움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중에서
(M. 스캇 펙 지음 / 열음사 / 459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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