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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열린 사림의 시대
16세기 후반 선조 때 사림(士林; 주로 조선 중기에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을 가리킴)은 중앙 정계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훈구파(勳舊派; 조선 초기 세조 때 이후 공신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료집단을 이름)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을 둘러싸고 믿을 만한 훈구와는 협력해야 한다는 기성 사림과, 모두 배척하자는 신진 사림으로 분열되었다. 마침내 이조정랑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져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어제의 진보는 오늘의 보수가 되고, 오늘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가 된다. 그렇게 오늘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고, 내일 또 새로운 진보가 나타난다. 그게 역사다.

노장파와 소장파

윤원형과 훈구 대신의 횡포가 나라를 흔들고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가운데, 훈구파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떴다. 명종은 자신을 짓누르던 어머니의 압력이 사라지자 개혁 세력, 즉 사림을 등용하여 즉각 훈구 대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훈구 대신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바야흐로 사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시 사림을 이끈 사람은 퇴계 이황 선생이다. 이황은 성리학을 완성한 조선 유교의 교황 같은 존재로서, 개인적으로는 윤원형이 일으킨 사화 때 형을 잃은 원한을 갖고 있었다. 이황은 철저한 개혁을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젊은 소장파 관료들은 훈구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이상적인 유교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한편, 사림들 중에는 개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노장파에 속하는 사림 관료들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혼란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개혁을 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관용과 포용을 바탕으로 한 온건한 개혁을 주장했다. 노장파와 소장파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개혁 세력은 내부 분열로 나아갔다. 노장파는 과격 급진 세력이라며 소장파를 위험시했고, 소장파는 권력에 안주하여 개혁을 망각한다며 노장파를 적대시했다.

이조정랑, 분열의 씨앗

두 세력의 대립이 폭발한 사건은 이조정랑 자리를 둘러싸고 일어난 김효원과 심의겸의 갈등이었다. 이조정랑은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자리였다. 16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과거 합격자 수가 대폭 늘어난 반면 관직 수는 제한되어 있어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얻지 못해 실업자 생활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이들을 ‘백수’, ‘선달’이라 불렀다. 그러다 보니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이조정랑이 상당히 중요한 직책이 되었다. 노장파와 소장파가 각기 자기 사람을 관직에 등용시켜 세력을 확장하고자 이조정랑 자리를 독점하려 하면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소장파가 지지하는 김효원과 노장파가 지지하는 심의겸이 이조정랑 직을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사림은 둘로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김효원은 서울 동쪽, 심의겸은 서울 서쪽에 살아서 소장파는 동인, 노장파는 서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양당 체제의 확립
동서로 분열된 이후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사림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개혁 세력이 집권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분열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갈등의 골이 깊어졌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율곡 이이가 나섰다. 이이는 1570년(선조 3) 이황이 죽은 뒤 실질적으로 사림을 이끌고 있었다. 이이는 주기론의 거두로 이황에 필적하는 성리학 이론가이면서 ‘십만양병설’로 대표되는 현실 정치인이었다. 그는 동인과 서인을 하나로 합치기 어렵다고 보고, 차라리 두 세력이 적절히 갈등하며 공존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서인에 가담함으로써 동서 균형을 맞추었다. 마침내 이황의 영남학파를 중심으로 한 동인과, 이이의 기호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인의 양당 체제가 완성되었다.

동서분당이 정착된 뒤 약 10여 년간 조선은 평온했다. 개혁은 조선왕조 체제 내로 흡수되면서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1589년(선조 22) 동인 정여립이 일으킨 반란 사건(기축옥사己丑獄事)으로 동서 대립이 격화되면서 3년여의 혼란을 겪고, 그 여파로 임진왜란에서 참패하면서 조선은 암흑기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17세기 들어 사림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사회 변화를 원치 않는 보수 세력이 된다.

역사를 책임진다는 것
임진왜란에서 나타난 무능력하고 혼란스러운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동서분당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혁 과정에서 온건파와 급진파의 대립은 늘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습하고 역사적으로 책임지는 과정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민주개혁 세력이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면서 분화를 겪었다. 그렇게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25년이면 16세기 사림이 권력을 잡고 정여립의 난이 일어날 때까지와 비슷한 시간이다. 과연 오늘날 한국의 개혁 세력은 어떻게 역사를 책임질 것인가. 추한 기억, 안타까운 역사로 남은 4백 년 전의 동서분당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 『에피소드 한국사 조선편』 중에서
(표학렬 지음 / 앨피 / 332쪽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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