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소개 회원가입 단체가입안내 KB카드 VVIP 회원인증 이용안내 회원FAQ 도서요약 공지사항
키워드
전체카테고리 보기
ID/PW찾기 | 보안접속
이용권 등록 회원가입
책에서 배우는 경영사례
북 & 프리즘
사랑하는 가족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수필이 좋다
영혼의 보금자리
리더들의 자녀교육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소설이 좋다
연재소설 프리랜서
연재소설 나혜석
골프 칼럼 베스트 7
서평칼럼
책 속으로
떠나자! 책 속의 여행자
생활 상식
우리말 잡학사전
영어잡학사전
 
90일간의 세계일주
아름다운 만남
북 미리보기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
섀클턴의 파워 리더십
법령과 함께 떠나는 1박2일
 
안티베어 카툰
 
지난컨텐츠 보기
보도자료
출판뉴스
Q&A
공지사항
NEW UPDATE
모바일북카페 안내
 
 
24 장 - 살아남은 자(者)들에게 고(告)함
1.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떨치는 1 월 초, 일본에서 조사단이 왔다. 부산에서의 사건을 시점으로 그동안의 모든 사건은 이제 국제적인 사건이 되었다. 전 세계의 매스컴이 떠들기 시작했고, 외신들은 저마다 프리랜서에 대해서 지난 사건들까지 들추면서 분석하고 예측했다.
북한에서까지 조사단을 파견할 테니까 어느 나라든 합동으로 조사하자고 나왔다.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고, 프리랜서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처럼 확대되어서 떠돌아다녔다.
우재준은 뇌사 상태에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숨을 거두었고, 하라는 부산에 머물고, 마리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두진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문회에 나가야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므로, 상부에서는 현역으로 남아서 참석하기를 바랐다.
두진으로서는 당장 물러나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함께 일해왔던 대운과 영란, 진구와 함께 현역으로 있으면서 청문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선거가 있는 해였으므로 야당은 청문회를 서둘렀고, 여당은 시간을 끌었다. 여당에서는 안정을 호소했고, 야당은 자신들에게 힘이 있어야 진상을 밝힐 수 있다고 호소했다.
두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조사단이 오고, 청문회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어느 날, 두진은 결국 김중식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김중식은 유서까지 써놓고 자살했다.
자살?
두진은 김중식의 자살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두진이 아는 한, 김중식은 자살을 할 인물이 아니다. 어느 구렁텅이에 빠져도 끝까지 살아서 기어오를 인물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인물이 아니다.
이번에도 또 여러 가지 수없이 많은 풍문이 떠돌았다. 김중식이 다시 풀려나서 사라졌다는 소문에서부터, 입을 막으려고 죽여 놓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음모론이 나왔다.
정확하게 아는 바는 없으면서도, 국민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싸웠다. 자신들도 모르는 걸 인식하고 있지만, 어느 편에 서서 싸우기를 원해서 싸웠다.
대한민국에는 중도파가 없었다. 중도라고 우길 뿐이지, 사실은 좌우가 짙은 색안경을 끼고 그 색이 투명한 색이라고 우겼다. 언제나 다수의 지지를 얻어서 이기는 쪽은 보수우익이었다.
당연했다. 매스컴도 정부도 그들 편이니까 이겼다. 경상도라는 특정 지역이 인구수가 많으니까 이겼다. 지역감정을 유발하기 시작하면 모든 진실은 덮어질 수 있었다.
두진으로서는 그런 일들을 대할 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대한민국은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중학교는 다녔다. 중학교 정도 교육만 받으면 지역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어느 지방 사람들을 폄훼하는 사람은 장담하건대, 평소에 자기 동료들이나 가족들 중 누구라도 차별할 사람이다.
어디 사람만 싫고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 혹은 지역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성정의 사람이면, 장담하건대 그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깔볼 사람이다.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우기더라도 사실은 그 사람이 가진 성정상, 누구인가를 차별하지 않을 수 없고, 주변에서 강한 무리가 누군가를 왕따를 시킨다면 그 무리에 끼어들어서 함께 누군가를 괴롭힐 소질을 가진 사람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라고 해서 더 못나거나 잘난 게 있을 리 없다. 그렇게나 정확하다는 DNA로 따져보면, 인간의 성질은 지역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주변에 어느 누구든, 그런 언행을 보이면서 그 지방 사람들 탓으로 돌린다면, 절대 경계할 일이다. 나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못난 사람인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두진은 실제로 학교 다니던 시절에 길 고양이를 괴롭히는 친구와 멀어진 적이 있다. 겨울날 추위에 떨면서 살아남으려고 배회하는 고양이의 눈을 보면서 괴롭힐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언제고 자신에게도 냉혹할 수 있다고 느껴져서였다.
이제 두진에게 남은 일은 있는 사실을 한 치의 가감 없이 청문회에서 밝히는 일이었다. 두진은 좌도 우도 아니었고, 특히나 어느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부정부패를 싫어했고, 협잡을 싫어했다.
그대로 모든 것을 자기가 아는 한에서 증언하리라 마음먹었다.
두진이 그렇게 하리라고 느껴서인지, 우재준을 대신해서 팀장이 된 작자가 만나자고 계속 연락을 하다가, 급기야 사무실로 찾아와서 회유와 공갈을 번갈아 가면서 웃기고 돌아갔다.
부장검사실로도 불려가고, 검사장에게도 불려갔다. 징계를 먹이겠다고 했다가, 그냥 취소되기도 하고, 그걸 자기 공으로 돌리는 공안부장에게 지금 당장 옷 벗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예 민간인이 되겠다고 하는데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상대들도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겠다는데, 그렇게들 난리법석을 떨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있길래 이렇게들 난리인가.
아직 청문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부들 죽자 사자 하며 청문회의 증언을 막고, 사실을 덮으려고 동분서주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전화가 왔었다고 하면서 겁에 질리고는 했다. 어느 때는 자기가 프리랜서라고 주장하면서 사건에 대해서 증언하면 전부 몰살을 당할 줄 알라고 협박하는가 하면, 어느 때는 신분도 밝히지 않고 남편의 신변이 위험하니까 주의시키라는 공갈을 쳤다.
피곤한 나날이었다.

연초에는 청문회가 걱정도 되고 해서, 함께 일했던 대운과 진구, 영란을 불러 모았다. 아무래도 불안해할 것도 같고, 자칫하면 서로를 위한답시고 진술이 엇갈려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사안이 많았다.
영란은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살이 많이 올라서 통통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민초들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배가 불룩하고 살이 찐 영란의 모습은 두진의 눈에 귀엽기 짝이 없었다. 자신과 아무런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의 자손이지만, 괜히 뿌듯했다.
주먹고기집에 모여서 술잔을 기울였다.
“나 옷 벗기 전이니까 돼지고기 먹는다. 대신 나 옷 벗으면 소고기 사준다.”
“그만두시면 더 부자 되나요?”
대운이 묻자, 두진은 어깨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변호사가 훨씬 더 벌지. 전관예우 몰라?”
“검사님은 해당 안 될걸요?”
영란이 얄밉게 말했다.
“어? 무시하는 거야? 나는 왜 안 돼? 나도 검사직을 얼마나 했는데 안 돼?”
“안 무시할 테니까 소고기 사주세요.”
와하하하. 즐겁게 웃었다. 마치 험난한 전장에서 우리 편 참호 속에 모여 앉은 것처럼 전우애를 느낀다고나 할까. 세상 풍파가 닥쳐서 서럽고 약하지만, 서로를 보면 힘이 나는 그런 동지애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당분간 고생들 좀 하게 생겼다. 뭐 전부 대가리 잘못 만난 덕이라고 생각해라.”
“고생할 거 뭐 있나요?”
“상관없습니다.”
두진은 진술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서로를 위한답시고 이렇게 저렇게 진술하다 보면 함정에 빠져들 수가 있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게 좋아. 말은 지어내면 꼬이게 되어 있거든. 뭐 다들 수사해봐서 알잖아?”
“당연히 있는 그대로 진술해야죠.”
셋이 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생각해야 할 게 있어. 왜 그랬냐는 질문이 가장 곤혹스러운 거야. 그럴 때는 무조건 내가 시켜서라고 해. 이유는 모른다고 해. 전부 내가 시켰다고 해. 이유도 말해준 적이 없어. 그냥 내가 다 시켰어. 보고 누락이나, 접촉한 사실 등을 몰랐다고 하지 마. 그러면 안 돼. 알았는데 내가 말 못하게 했다고 진술하면 돼. 있는 사실만을 말하고, 그게 전부 내가 시켜서라고 하면 아무 문제 없어.”
“그럼 검사님은요?”
“우리는 그렇게 빠져나가고 검사님만 다 뒤집어쓰시라고요?”
“지금 저 자식들 속셈이 검사님하고 프리랜서 사이에 연관된 부분을 만들어서 모든 과를 검사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다들 분개해서 한 마디씩 했다.
“그래. 그러니까 너희들이 날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내가 명예롭게 옷 벗으려면 너희가 모든 걸 나한테 떠넘겨야만 하는 거다.”
“떠넘기면 검사님만 죽으라는 거잖아요?”
“안 죽는다. 대한민국에서 법을 제일 잘 아는 게 검사다. 그거 인정하지?”
두진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전부 내가 시킨 거야. 그게 사실이잖아? 너희들 마음대로 한 거 있어?”
다들 말을 못 했다.
“사실이 가장 강한 거다.”
두진은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사실의 힘을 믿어라.”

우재준을 대신해서 대테러팀장이 된 박진은 과감한 인물이었다. 그의 권력에 대한 충성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자기 출신지역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에 충성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옳은 일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청문회를 앞두고 상부의 우유부단함이 싫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차피 기관의 특성은 공작에 있다. CIA도 그렇고 모사드나 G2나 모두가 일을 꾸미고 실행해서 조직을 꾸려나간다. 기관은 공작을 하는 곳이지 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는 상부에 강력하게 자신의 뜻을 표명했다. 상부에서는 너무 위험한 공작이라고 해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했다. 오두진은 절대로 말을 들을 인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진은 자신이 있었다. RM이 실패한 것은 상대가 프리랜서여서다. 그러나 지금의 상대는 그런 전문가가 아니다. 사고로 처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지금 해결책은 그 외에는 없다.
상부의 위기감을 알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이대로는 끌고 가기 어렵다. 지금 실행하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나. 어떻게 행동하는지 감시하는 것만으로 될 게 아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오두진이 강력하게 나가니까 그 아래에 있던 놈들까지 강하게 버틴다는 점이다. 리더십이 있는 인물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 부하들이 똘똘 뭉쳐서 회유를 거부한다. 그래서 오두진의 증언과 다른 증언을 하게 만드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상부에서 공작을 기획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진 건 바로 녹취록을 들이밀어서였다.
이틀 전, 문제가 되는 넷이 한자리에 만난다는 걸 알고 도청을 시도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를 그대로 녹취해서 상부에 보고했다. 그 내용만으로도 당연히 대가리가 되는 오두진을 제거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아래에 있는 놈들도 위축되어서 말을 들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상부에서는 외국으로 출장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간단한 일이 될 수 있다.
오두진은 밤이 늦도록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많았다. 청문회를 대비해서 지나간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근무하는 일산의 연수원에서 나와 보통 10 시를 기준으로 전후에 청사를 나와서 집으로 걸어간다. 마두역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단지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관용차가 있더라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연구원으로 재직하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옷을 벗기 직전의 상황일 뿐이다. 그래서 공작을 하기가 어렵지 않은데도, 상부에서는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외국으로 출장을 내보내는 일이 금방 실현되기도 어려웠다. 오두진을 외국으로 빼돌리려 한다는 야당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했는지, 외국으로 출장을 나가게 만들었다. 가까운 일본으로 나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의 기초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연구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일본으로 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드는 데 기초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후세 다츠지라는 일본인 변호사다.
대표적인 친한파 변호사로 독립운동을 하던 의사들을 변호했고, 그 유명한 박열의 변호를 해주었던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진 게 바로 대한민국의 헌법이다.
그 과정을 조사하러 일본에 가라는 출장명령이 떨어졌다.
박진은 일본에 머무는 팀에게 전화했다.
“준비들 해라.”



2.

두진은 난데없는 출장이 자신의 청문회 준비를 방해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헌법을 연구하는 일이니까 보람은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옷을 벗은 게 아니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지. 출장 기간은 15 일이었다.
출장준비로 갑자기 바빠졌다. 연구할 준비도 해야 하지만, 돌아오면 곧바로 청문회 정국이다. 그보다 중요한 게 가서도 계속 챙겨야 할 청문회 자료들이었다. 모두 복사해서 USB에 옮겼다.
아침 일찍 김포에서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바로 옆 동네에 가듯이 가까웠다. 한국과 똑같이 생긴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인지 도무지 외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간판을 외국어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어느 나라든 이국적인 풍경이 되지 않는 법인가.
호텔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한낮인데도 피곤한 듯하고, 갑자기 외롭기 짝이 없다. 이런 게 햄릿머신이 아닐까. 다들 줄을 서는데, 줄에서 이탈한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소외감이 밀려들었다.

박진은 나리따 공항에 내렸다. 그는 두진이 아카사카의 뉴오타니에 묵는 걸 알았지만, 자신의 호텔은 조금 떨어진 이케부쿠로의 코스모폴리탄으로 잡았다.
현장에 직접 오지 않아도 좋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근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케줄표가 나와 있습니까?’
“메일로 보내줄게.”
‘내일이 적당합니다.’
“너무 이르다. 다음 주쯤으로 미루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조정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점심을 먹으려고 호텔을 나섰다. 일본 음식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으려면 우에노나 신주쿠까지 가야 한다. 그러기는 싫고 주변의 대충 비슷한 야키니쿠로 가서 찌개라도 먹으면 되겠지.
저녁은 팀원들을 만나서 술 한잔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은 신주쿠는 싫다. 긴자 거리로 나가서 한잔해야지.
야키니쿠로 가서 김치찌개를 시키고 일본어로 된 신문을 펼쳤다. 사고가 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쉬지 않고 신문에서 경제인들의 죽음을 떠들고 있다.
식사를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한국 상황을 점검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정보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젊은 날 일선에서 뛰는 소총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머무는 장소에 대해서 민감하다.
어느 장소에 사람이 들어왔다가 가면, 그 흔적이 남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무언가를 건드리면 그 흔적이 남는다. 체크인을 한 날에 메이드가 들어왔을 리는 없다.
안내책자를 보고 삐뚤어지게 두었다. 책자가 똑바로 고쳐져서 놓여 있다. 갑자기 긴장해서 슬며시 욕실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옷을 걸어두었던 옷장을 슬며시 열었다. 옷들이 걸어둔 그대로 있었지만, 양복 주머니의 옆주머니 깃을 안으로 슬쩍 끼워둔 부분이 똑바로 나와 있었다.
박진은 긴장으로 얼굴의 피부가 팽팽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도청장치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왔다. 일 층 로비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총 하나 구할 수 있겠나?”
‘예. 그런데 왜…?’
“만나서 이야기하자.”
‘혼자 갈까요?’
“아냐. 위험하다.”
‘무슨 일입니까?’
“와서 이야기하자.”
‘어차피 저녁에 만날 것 아닙니까?’
“장소 바꾸자. 아카사카가 아니라 고이와로 와라.”
‘알겠습니다.’
일본 팀은 고이와에 김치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알아서 갈 테니까 조용히 장소를 바꾸게.”
‘공장에서 저녁식사를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뭐. 괜찮아. 거기서 술 한잔하지. 상황이 상황 아닌가?”
전화를 끊고 로비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쉬었다. 방으로 돌아가는 게 꺼림칙했다.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직접 고이와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때라면 겁내지 않겠지만, 프리랜서가 쫓아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소름이 끼쳤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무서웠다. 택시를 타러 나가서도 일부러 방금 손님이 내린 택시에 올라탔다. 고이와로 향하는 내내 뒷좌석에 앉아서 주변의 다가오는 차량들을 경계했다.
고이와에서는 김치공장 바로 앞에 바짝 세우게 하고 내렸다. 팀원들이 나와서 마중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도 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도 없었다. 아직 해가 떠 있는데 무슨 일이지? 아, 일요일이구나. 그렇게 알고 공장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박진은 질겁을 해서 뒤로 물러나왔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근처에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일요일인데다가 공장 주변으로는 집들이 없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로 공장의 문으로 다시 천천히 다가갔다. 공장 안은 아무도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팀원들이 여럿 공장 한가운데에 나란히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내려다보니 일본팀장의 번호다. 그러니까 이미 공장 안에서 빼앗긴 상태라는 게 된다. 전화를 받지도 않고 돌아서 허겁지겁 달렸다. 어디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동네로 들어가면 된다. 아니면 택시를 잡아타고 빠져나가야 한다.
핸드폰 소리가 멈췄다. 흘끗 내려다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다. 빠르게 걸으면서 문자를 확인했다.
‘전화를 받으면 기회를 주겠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내가 누구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중요한 건 네가 내 손 안에 있다는 거야.’
“누군지 밝히지 않으면 전화를 끊겠다.”
‘전화를 끊으면 죽여버릴 거야.’
심장이 멎는 듯했다.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다.
‘잘 들어. 그냥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 그리고 돌아가서 조용히 지내.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다. 오두진이 청문회에 나가지 못하면 넌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까 협조해.’
“프, 프리랜서냐?”
‘알아서 좋을 게 없어. 아, 한 가지 더. 지금 그 핸드폰을 묵고 있는 호텔 층의 엘리베이터 옆 재떨이 아래에 버려라. 말 잘 들어라. 충성도 출세도 살아 있어야 하는 거야.’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총구가 겨누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난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 어떤 약속이든. 너한테 약속하마. 협조하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전화가 끊어졌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흠칫 놀라서 주변을 보다가, 멀리 있는 전철역이 눈에 들어왔다.
전철역을 향해 죽어라고 뛰었다.



3.

보름간의 출장은 나름 보람이 있었다. 저녁마다 청문회 자료 준비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헌법의 생성과정을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후세 다츠지라는 인물의 변호사로서의 행위나 철학도 재미있었다.
두진은 귀국해서 별일 없이 청문회 날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두진에게 아내가 자기 핸드폰을 들고 왔다. 자기가 아니라, 아내의 핸드폰으로 발신인 불명의 문자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TC는 TRYANGLE CABALA의 약자였습니다. 청문회 잘 마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리지요.

트라이앵글 카발라. 이게 무슨 뜻인가. TC의 정체를 알고 추격하고 있다는 뜻인가? 프리랜서는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런 단체가 있던가? 혹은 이런 이름의 사람인가? 두진은 프리랜서의 집요함에 진저리가 났다. 그런 단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국내에 없기만을 바랐다.
하늘에 기도했다. 제발. 이 나라에 없기를.

청문회가 열리는 날, 두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을 했다. 집 앞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말끔히 면도를 하고,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정장을 정성 들여서 차려입었다. 걱정하는 아내를 안아서 토닥거려주고 현관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기자들과 함께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고 서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을 다물고 시선들을 외면했다.
국회로 들어서자, 기자들이 포토라인까지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통로가 마치 터널처럼 느껴졌다. 두진은 그 터널을 힘 있게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짧은 터널이지만, 길고도 먼 터널로 보였다. 지나간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가 뼈아프게 기억되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막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악마와 괴물들의 전쟁에 인간이 끼어들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정의는 무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을 밝히는 게 두렵지 않다. 사실을 밝혀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있는 사실은 사실이다. 그대로 밝히리라.

아무리 기도를 해도 십자가는 온다. 예수도 피하지 못한 십자가를 누군들 피할 수 있을까. 십자가를 치우려는 기도보다는 십자가를 맞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아직은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일 것이다.
번호 제목 날짜
26 24 장 - 살아남은 자(者)들에게 고(告)함 2015년 04월 07일
25 23 장 - 인스파이어 1(INSPIRE 1) 2015년 03월 31일
24 22 장 - 마지막 기회(LAST CHANCE) 2015년 03월 24일
23 21 장 - 로맨티스트(ROMANTIST) 2015년 03월 17일
22 20 장 - 잠적(disappear) 2015년 03월 10일
21 19 장 - 클레이모어(CLAYMORE) 2015년 03월 03일
20 18 장 - 공황상태(panic stations) 2015년 02월 24일
19 17 장 - 카운트다운(COUNT DOWN) 2015년 02월 17일
18 16 장 - 가이드라인(GUIDE LINE) 2015년 02월 10일
17 15 장 - 십자포화(Cross fire) 2015년 02월 03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도서공연영화선물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동영상 공유 플랫폼 마이굿튜브
  • 북티켓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북코스모스 자격증센터
  • 단체회원 가입안내
  • 지난 콘텐츠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