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지음/이원기 옮김/민음사/550쪽/22,000원)

최근 미국의 독선과 오만 그리고 일방적 패권주의로 인해 전 세계에 반미주의의 물결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불태우고 부시 대통령의 화형식을 거행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TV를 통해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미"를 부르짖는 세계 도처의 사람들은 모두 가슴속에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개인에게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에 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물질적 출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리스크, 다양성,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맞은 더 넓은 사회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종합적인 사고와 신선한 시각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제러미 리프킨이 최신 저술한 <유러피언 드림>은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고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리프킨은 아메리칸 드림이 물질적 부의 추구에 사로잡힌 과거 개척 시대의 케케묵은 꿈인데 반해,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통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는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기능한 개발을, "심오한 놀이 deep play" (완전한 몰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활동)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전의 문화 관계를 탈피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융합되어 ‘자주적 행위자 free agent’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多) 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미국인들은 중요한 국익으로 인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세계 어디든 병력을 파견하려 하지만 유럽인들은 군사력 사용을 꺼리며, 주로 외교와 경제 원조를 통해 분쟁을 피하려 하고, 치안 확립보다는 평화 유지 작전을 선호한다. 유러피언 드림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며, 18세기 합리주의 계몽 운동이래 물질주의의 족쇄에 갇힌 인간성을 해방시켜 이상적인 새로운 미래로 이끈다.

미국인인 저자 역시 본능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매료되어 왔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여기에 사회적 집단 책임과 세계화 의식을 통합하고 양자간의 시너지 효과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아메리칸 드림은 분명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어쩌면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내포되어 있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소명의식은 우리가 취해야 할 또 하나의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