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이란 이름의 어떤 정서
프라하는 묘한 도시다. 어느 골목에선 중세 시대가 보이기도 하고, 사회주의 시절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과 종종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흔하게 평범하고 현대적인 상점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좀처럼 옛 도시로서의 매력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법이 없다.

프라하에 오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둔 말라스트라나 구역과 구시가지, 신시가지, 이 세 곳을 주로 찾는다. 프라하에 오면 가장 먼저 잡화점과 헌책방을 둘러보고 싶었던 나는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거리로 나가보았다. 크고 잘 알려진 거리에 있는 가게들은 뭔가 인위적이라 골목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마음에 드는 가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서를 보며 수집했던 정보들이 무색할 정도로 다채로운 잡화점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곳에서는 중고 물건이나 책들을 판매도 하고 사기도 하는데, 주로 현지인들의 손때가 묻은 생활 소품들이 많다.

맥주는 곧 ‘마시는 빵’
예전에 잡지에서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자가 이른 아침 프라하의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선술집을 들여다봤는데, 체코 사람들이 그 시각에 맥주를 마시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자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아마 그들은 술을 마시며 긴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체코 사람들에게 맥주란 마시는 빵과 같은 존재다.” 체코 사람들에게 맥주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재미있는 답변이었다.

프라하는 맥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나라답게 동네 식료품점에만 가도 다양한 브랜드의 맥주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대표적인 체코 맥주로 잘 알려진 ‘필스너 우르켈’부터 ‘감브리누스’, ‘부드바이저 부드바르’, ‘스타로프라멘’ 등은 물론 지방 양조장 출신의 다양한 맥주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다. 우리는 ‘미예스탄’이라는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미예스탄은 체코의 대표적인 맥주 제조사인 ‘피보바리 스타로프라멘’에서 만드는 소규모 로컬 브랜드 맥주로, 무난한 맛과 구수한 향이 특징이다. 사실 프라하에서는 맥주가 물보다 싸다. 게다가 보통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구입하면 병값(약 20원)이 추가되는데, 슈퍼마켓 한쪽에 설치된 공병 수거기계에 병을 넣으면 병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

블타바 강에서 짧은 수상여행을
카를 교의 입구 부근에 가면 관광객들을 싣고 블타바 강을 누비며 맥주와 스낵 그리고 이국적인 음악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관광 페리 여행 사무실들이 줄지어 있다. 대형 유람선도 있고, 직접 노를 저으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룻배도 있다. 하지만 블타바 강을 좀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면 단연 ‘프쥐보즈’를 추천하고 싶다. ‘프라쥐스케 베나트키’라는 선박회사에서 운영하는 이 작은 보트는 대중교통의 기본 요금(약 1,300원)과 똑같은 가격으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P1에서 P6까지 여러 개의 코스가 있다. 주로 강 건너편 동네로 볼일을 보러 가는 현지인들이 이용한다. 주민들에겐 실용적인 교통수단일 뿐이지만 작은 보트가 풍기는 소소한 낭만은 여행객의 마음을 간질인다.

페트쥔 언덕의 여름
곧 무더위가 들이닥칠 8월을 코앞에 둔 어느 날, 페트쥔 언덕에 올랐다. 페트쥔 전망대와 ‘미로의 방’ 등이 유명한 페트쥔 언덕에 갈 때면 늘 22번 트람바이(전차)를 탔다. 블타바 강 위를 달리는 22번 트람바이는 프라하 성과 카를 교를 지나는데,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달리는 약 3분 동안은 언제나 설레기 짝이 없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철탑에 올라 노을과 바람과 함께 프라하 전망을 즐기고 내려와 생맥주와 통통한 소시지 구이로 배를 채운 다음 언덕을 내려갈 채비를 한다.

- 『프라하, 소풍』 중에서
(전선명 지음 / 북노마드 / 256쪽 / 1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