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이 최종적으로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정된 후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문가들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토를 거쳤다고 말하며 “신공항에서 탈락한 지역은 아쉬움이 남겠지만 영남권 지자체들이 앞서 합의한 대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승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민심을 요동치게 한 이슈였던 만큼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고,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지자체 단체장들 또한 자신들의 정치 생명까지 걸고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11월 30일 부산 유세에서 “부산 가덕도가 최고 입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가덕도로 할 것”이라며 “부산시민 여러분께서 바라고 계신 신공항,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공약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최종 결론이 난 지금 무척이나 난감할 것이다. 또한 신공항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던 국회의원과 단체장들 역시 주민들의 질타를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규모 국책사업을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셈법으로만 접근한 탓이다. 따라서 앞으로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공약 수립 및 정책 입안 과정에서 사업 타당성을 투명하게 따질 수 있는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셈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양축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서양인들은 경제 외적으로는 일본에 경외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이유는 후진적인 일본의 정치사회적 지배구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45년 동안 사실상의 정권교체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온갖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담합 등이 만연해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일본병의 원인은 특유의 관료주의 사회질서에 있다. 정부 관료의 재량권이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뿌리 깊은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관료들은 여당인 자민당과 강하게 유착되었고, 여기에 재계 유력인사들은 천문학적 정치자금을 쏟아부으며 정부와 내각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마음껏 획득했다. 만성적인 부패에 특정업체 편들기, 이익추구에 눈이 먼 정·관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명하달의 사회구조는 일본 사회를 비판과 합리성이 실종된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갔던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것처럼 일본 정치인들도 대를 이어 정계에 몸담아 왔다. 의원직 세습은 지역 이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세습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 명문가 출신이고 형제나 친인척들이 지역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정부패가 고착화되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부패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토건족이라고 할 수 있다. 토건족은 건설업자의 뇌물을 매개로 정치인·관료로 연결되는 삼각 커넥션을 지칭한다.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은 건설업체와 유착하여 국민의 혈세로 많은 도로, 공항, 댐을 건설함으로써 결국 국가 재정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물론 민주주의는 투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자치단체장은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로 인해 장밋빛 수요예측과 함께 지방 공항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은 100개에 가까운 지방공항이 있고 이들 중 80% 이상이 적자에 시달리며 국민의 혈세를 빨아들이고 있다. 일본 공항의 적자행진은 역대 자민당 정권의 선심정책에다가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공항개설에 나서 공항이 난립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방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장밋빛 수요예측으로 지어진 전국의 지방공항들은 KTX 개통 등으로 이용객이 급감하며 개장과 동시에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김포, 제주, 김해 3개 공항을 제외한 울산, 양양, 무안 등 11개 공항이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11개 공항의 최근 5년간 누적 적자는 3000억 원 가까이에 이른다. 공항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해결책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 단체들은 지금 제주2공항, 새만금국제공항, 서산국제공항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치단체장 치적 쌓기용으로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혈세만 낭비할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이 나온다.

2005년 일본의 총선은 토건족을 퇴출시킨 상징적 선거였다. 선거의 쟁점은 우체국 민영화 법안이었는데, 법안이 부결되자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를 해산했고, 총선을 통해 반대파 의원들을 퇴출시켰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토건족 의원들이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왔던 일본의 토건족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와 장기불황으로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지방을 지원할 여력이 없어졌고, 일본의 샐러리맨들도 자신의 돈이 지방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지역주민들도 도로, 공항, 댐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이 결코 자신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토건족들이 곳곳에서 암약하며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던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부디 이제부터라도 정치인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 국가의 근간이 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 사심과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정말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조상들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일본은 왜? 한국은 어디로?』 중에서
(김영기 외 지음 / 홍익출판사 / 2010년 2월 / 318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