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인도까지 파죽지세로 치달았던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가 끝날 때마다 멈출 것인지, 더 전진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한다. 피로가 쌓인 군대와 새로운 전쟁에 대한 의지 사이의 딜레마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딜레마에 대처하는 자세는 일관됐다. 항상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을 택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선택은 무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도전을 끝까지 밀고 나간 의지 때문이다. 급작스런 죽음만이 알렉산더 대왕의 도전을 멈출 수 있었다. 나아갈 것인가, 지킬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던 알렉산더 대왕의 고뇌에 대해 사람들은 ‘알렉산더 딜레마’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작 알렉산더 대왕은 과감한 추진력으로 딜레마를 돌파했고 거기에서 자유로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게는 사회적인 구조나 트렌드 변화를, 작게는 회사 내의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나 조직 개편 등과 같은 변화에 계속 직면하게 된다. 즉, 일상 속에서도 ‘알렉산더 딜레마’의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들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하는 것이다.

성공신화를 이어온 모토로라가 처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무선통신 시장이 디지털 기술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300만 명 이상의 아날로그 소비자가 있는 한 자사의 아날로그폰 스타텍의 성공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스타텍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모토로라의 확신은 견고해졌다. 뒤이어 내놓은 레이저마저 히트를 치자, 모토로라는 디지털 기술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한마디로 모토로라는 과거의 성공에 자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1990년대 중반까지 50%에 육박하던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사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이 1999년에는 17%까지 추락했다. 시장조사기관인 로아 그룹은 모토로라의 몰락에 대해 ‘클래식에 집착하다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과거의 성공 방식을 답습한 대가였다.

반면에 바우어스&윌킨스(B&W)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과거를 버리고 더 크게 성장한 회사다. B&W는 음악 애호가라면 한 대쯤은 꼭 가지고 싶어 하는 최고의 스피커를 제조하는 회사다. 거실에 커다란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을 듣는 것을 교양과 낭만을 겸비한 사람들의 문화로 여기는 트렌드에 힘입어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영원할 것만 같았던 B&W의 전성기에 위기가 닥쳤다. 애플의 아이팟이 대히트를 치면서 디지털 음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CD보다 MP3로 음악을 다운받아 듣고 싶어 했다. 더는 웅장한 스피커가 필요하지 않았다. 손안의 작은 기계에 소형 이어폰을 꽂아 이동하면서도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게 되자 B&W는 역사 속으로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다른 스피커 제조업체들은 애플이 몰고 온 위기를 감지한 후, 약속한 듯이 잇달아 MP3의 저급한 음질을 비난하고 나섰다. MP3의 음향 시스템이 정밀한 스피커 기술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실제로 당시 제공되던 MP3용 음원파일들은 음질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상황이었다. 또 고급 이어폰 개발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이런 비난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얻었다.

B&W도 여느 스피커 제조업체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B&W는 다른 선택을 했다. 우선 자신들의 본업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보았다. ‘스피커를 만드는 제조회사’인 것은 맞지만 스피커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최상의 상태로 듣도록 돕는 것’, 그것이 회사의 존재 이유였다. 본업에 대한 정의를 재확인하고 나니 굳이 디지털 음악 시대에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B&W는 ‘변화에 저항하기보다 변화의 흐름에 발을 맞추자’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B&W는 제일 먼저 무엇이 디지털 음악 시대를 이끌고 있는지 탐색했다. 애플은 음악을 사고, 팔고, 듣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애플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뛰어난 음악을 전달하는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만큼 획기적이지 못했다. B&W는 이 점을 간파했다. 여러 기업들이 앞다투어 저렴한 아이팟용 스피커를 쏟아냈다. 애플도, 다른 스피커 제조업체들도 ‘아름다운 음악’을 재현하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B&W는 재빠르게 아이팟용 프리미엄 스피커 ‘제플린’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사람들은 제플린을 열렬히 환영했다. 디지털 음악에는 매료되어 있지만 부실한 스피커로는 충족되지 않는, 고급 음질에 대한 욕구를 B&W가 건드렸던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다른 아이팟용 스피커보다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쌌지만 사람들은 제플린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 이후에도 B&W는 아이팟, 아이폰 사용자들을 위한 헤드폰 시장을 꾸준히 개척했다. 두 회사의 제품들은 시너지를 일으켰다. 이는 디지털 음악이 주류가 된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의 주역인 애플 제품들이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B&W가 사양길로 접어든 스피커 제조업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사의 본업이 사람들에게 최고의 음질을 전달하는 것임을 직시하고, 과거의 성공에 연연해하지 않고 변화를 위해 기꺼이 도전을 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딜레마에 빠졌을 경우 변화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서’ 변화해야 하는가를 먼저 질문해보자. 그러면 쉽고 현명하게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중에서
(강미라 지음 / 가디언 / 228쪽 /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