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세상과 소통하면 회사발전은 따라옵니다"

서영태(54)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서울신탁은행과 두산씨그램 등에서 일하다가 2001년 12월 현대정유 경영지원본부장으로 현 직장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4월 현대정유가 현대오일뱅크로 회사 이름을 바꾼 뒤 첫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돼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의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사장으로 임명된 이후 서 사장은 회사 사랑, 고객 사랑, 임직원 사랑, 주주 사랑, 투명 경영, 열린 경영, 사회 기여의 7가지 핵심 가치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빠져보라고 권한다. 그래서 현대오일뱅크의 인재상도 ‘도전하는 젊은 프런티어’로 삼고 있다.

서 사장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이래 부모에게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립심이야말로 삶을 굳건하게 하는 뼈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건강과 일의 중요성을 알고, 세상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90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긍정적 사고’와 ‘다독’이었다. 이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은 진리일 것이다.

오스트발트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현명한 CEO는 책을 많이 읽는다. 기업 운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법이고, 많은 책들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CEO가 다독으로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과 심리를 깊이 이해할수록 기업의 미래는 밝게 된다.

오스트발트가 생존해 있다면 자신의 주장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추가하고 싶은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서영태 사장도 오스트발트의 진심 어린 환영을 받을 CEO로 보인다.

◆독서토론회 ‘무녀리’는 회사의 자랑=금요일에 직원들의 자유복 근무를 장려하는 서 사장은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책 읽는 CEO이다. 그에게 모르는 것은 결코 약이 아니며, 배우고 실천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장으로 취임해 살펴보니 교육비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줄이더라도 교육비는 줄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강화한 것이 직원들의 독서교육이었습니다.”

그는 사장 취임 직후인 2002년 4월 사내 독서토론회인 ‘무녀리’를 적극 지원했다. “무녀리의 본디말은 ‘문(門)열이’로 처음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짐승의 한 태에 있는 새끼 중 가장 먼저 세상 구경하는 무녀리는 고생을 많이 하지만 다른 녀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지요. 독서는 바로 무녀리처럼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주마다 한 권의 책을 읽어 1년에 25권의 책을 읽자는 게 이 모임의 목표로 지금은 모든 임직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로 토론하다 보면 막혔던 벽이 무너져 회사 발전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개인의 인식 지평 확대와 심화는 고스란히 기업의 질 높은 경영으로 되돌아옵니다.”

그가 무녀리에 권한 책은 많지만, 하니웰인터내셔날의 CEO를 역임한 ‘래리 보시디’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교수인 ‘램 차란’이 공동 저술한 ‘실행에 집중하라’는 특히 기억에 남아 있다. 기업 경영에는 전략도 중요하지만 실행력이야말로 기업의 성공 열쇠라는 주제가 끌렸기 때문이었다. 보스턴컨설팅 전략연구소에서 내놓은 ‘전쟁과 경영’도 무녀리 회원들과 함께 읽었다. 전쟁의 승리와 지도자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엄격한 상황 인식을 위해서는 부단한 시도와 용기, 결단력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 MBA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마크 매코맥),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회사’(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출판부), ‘체인지 몬스터’(지니 다니엘 덕),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등을 읽고 회원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교육은 회사 발전의 처음이자 끝=독서경영으로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서 사장은 직원 교육에도 열성이다. 3년 전 취임 당시 단 한 명의 직원도 없었던 MBA 과정에 30명이 다니고 있고, 2명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다.

직원들도 흥에 겨워한다. 얼마 전에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의 MBA 과정에 있는 한 직원이 잭 웰치 전 GE 회장과 나눈 대화를 전했다. “잭 웰치가 저서 ‘위대한 승리’의 내용으로 강연을 끝내자 우리 직원이 굳이 남아서 말을 전했다고 해요. ‘당신의 강연 내용은 한국의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현실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다’고요. 이야기를 들은 잭 웰치가 하는 말이 ‘그런 CEO와 경영철학을 가진 현대오일뱅크의 미래는 너무 밝다’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일개 차장이 기업경영의 살아 있는 신화로 통하는 사람과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만드는 게 바로 교육입니다.”

미래는 늘 도전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그에게 일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노동은 일과 삶이 결합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전망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는 앞당겨 보여준 CEO였다. “일과 놀이, 취미가 생활 자체가 되도록 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기업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결국 그 기업에 미래를 거는 직원들이 많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는 즐겁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일한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직원들에게 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어디 해보기나 했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일단 한번 해봐.”

◆집중과 몰입의 방식=일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도 심한 편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트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는 10번 이상 봤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사랑이 버무려진 영화의 배경이었던 모로코의 릭스 카페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다. 궁금하고 좋아하는 것은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이었다. 업무상 세계를 돌아다니며 크리스털과 향나무 등으로 만든 각양각색의 부엉이도 많이 모았다. 이제 아내와 직장 동료들은 그의 이 같은 열정을 이해하고 있다.

열정으로 가득 찬 CEO, 서 사장은 책을 읽을 때도 열정적으로 읽는다. “책 속에 흠뻑 빠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책을 읽으며 만나는 세상의 다양한 관점과 격렬하고 뜨겁게 만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참여할 때 공감할 수 있으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사 결정으로 가득 찬 경영현장에서 독서는 그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안철수)을 읽고 일관성을 지키는 원칙과 정도경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독서를 통해 얻는 수확인 셈이다.

그는 일독으로 책을 덮지 않는다. 이 독서 습관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글을 통한 것이 유일했을 때, 세상을 오롯이 이해하고자 그 내용을 샅샅이 파악하며 세상 그 너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쁜 CEO이다 보니 주어지는 시간이 일정치 않을 때가 많아 그 시간에 맞는 책읽기를 즐긴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한 시간 안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여유 시간이 넘치면 보다 차분히 책을 읽습니다.”

그는 독서를 위해서는 “자발적인 강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 읽기란 주어진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책 속에서 자신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눈과 가슴을 확장하면서 개방적인 자세로 임할 때 비로소 책이 내게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글 박종현, 사진 송원영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