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어제 저녁 제가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것도 성령의 은혜인지,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아동용 그림책 한 권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코앞에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결론 부분을 타이핑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설교
준비하던 것을 옆으로 밀어놓고 이 책을 읽어주는데, 그 스토리를 읽어나가다 보니, 글세 설
교의 주제에 꼭 맡는 예화가 아니겠습니까?

<키다리 아저씨>라는 동화입니다. 고아원에서 자라나서 고등학생이 된 쥬디라는 학생이 있
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항상 남의 옷을 얻어 입고, 남의 학용품을 빌려쓰면서도 고
아원에 있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아낌없는 사랑으로 돌보는 아이였습니다. 몹시 힘들게
공부했지만, 착하고 글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이 고아원에 어린아이들을 입양하거나 기부금을 내려는 부자 후원자들이 많이 왔었
는데, 그들이 다녀간 후에 원장 선생님이 쥬디를 방으로 불러 말합니다. "쥬디야, 이곳에 온
분들 중에 한 독지가가 네가 쓴 글을 보고 너에게 대학 공부를 시켜 주겠다고 하시는구나!
이 독지가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만 키다리 아저씨라고 이야기해주기만을 바라신
단다. 너는 이제 대학에 갈텐데, 대학에 들어가면 한 달에 한 번씩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써드리렴."

쥬디는 꿈에서 그리던 대학에 가게 됩니다. 기숙사가 딸린 아주 비싼 대학인데, 키다리 아저
씨는 쥬디가 기죽지 않도록 학비 이외에도 예쁜 옷과 가구와 책들을 쥬디가 필요하다고 생
각할 때마다 꼬박꼬박 보내주어서, 쥬디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생활합니다. 여름 방학
이면 아름다운 농장에서 쥬디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사소한 것까지 배려해 줍니다. 쥬디는
너무도 고마워하면서, 이 분이 도대체 누구일까 무척 궁금해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약속
때문에 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대학을 졸업하는 날, 키다리 아저씨에게서 쥬디를 만나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에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키다리 아저씨가 살고 있다는 뉴욕으로 한걸음에 달려갔
더니, 아, 그곳에는 대학 시절 쥬디와 가장 친하던 단짝 친구의 오빠가 서있는 것이 아니겠
습니까! 항상 친구 집에 놀러갈 때마다 쥬디에게 그토록 착하고 친절하게 잘해주던 오빠였
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언제나 쥬디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동화책을 제 딸에게 읽어주면서, 마치 하나님과 저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
님은 나에게 있어서 이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
인생은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늘 서러웠고, 사는 것이 힘들었고, 부족했고, 외로웠고, 답답했
고.... 부모 없는 고아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장학금 받고
대학 간 사람 같았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만 하면 하나님께서 보
내 주셨고, 기죽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철이 좀 들면서 그것은 제 옆에 항상 가장
가까이 있었던 키다리 아저씨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