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울대병원의 인턴시절 응급실에서 두 달을 근무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응급실은
전쟁터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총력전이 전개되고 사소한 실수나 무지, 게으름으로도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매순간마다 초긴장의 연속이다. 응급실에 있는
의사는 중환자가 오면 우선 숨이 붙어 있나를 본다. 숨이 붙어 있으면 중환자실로, 숨이
멎었으면 영안실로 간다. 숨의 유무에 따라 영원한 본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숨은
가장 본질적인 생명현상이다. 숨을 통해 알 수 있는 생명현상의 본질은 지속적인 생명
원료의 공급과 비생명 원료의 배출이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인 측면에 적용하면 산소의 공급과 이산화탄소의 배출이라는 호흡계의
기능을 의미한다. 이 기능이 멈추면 죽음이고 약화되면 호흡부전에 빠지는 심각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를 정서적인 측면에 적용하자면 인간의 내면세계에 사랑을 공급하고 미움을 배출
하는 것이다. 우리 인격은 끊임없이 ‘사랑해 주세요’, ‘인정해 주세요’, ‘이해해 주
세요’라며 정서적인 산소의 공급을 필요로 한다. 반면 미움, 무관심, 무정함, 용서못함,
분노 등의 정서적인 앙금의 배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이라는 정서적인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정서적인 질식사를 당하게 된다. 또한 내면의 무질서의
결과인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하지 못해도 우울증이나 열등감, 완벽주의 등의 정서적인 질병
을 앓게 된다.

지적인 영역에서도 숨을 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공급받고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가슴 설레는 비전을 갖는 것은 지적인 산소의 공급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있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실생활의 체험을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전수받고 뇌리 속에 각인하는 것도 지적인 산소에 해당한다. 그러나
많은 지식과 사상을 흡수하다 보면 잡동사니 철학이나 변질된 사상을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많은 지식이 지적인 신진대사를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지적인 비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만은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기보다는 모든 지식을 자신의 패러다임에 맞추어
칼질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독선이라는 지적인
중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산소의 공급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만남과 사귐을 원한다.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공급받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만남에 있어서 ‘높은 곳을 향하여’와 ‘낮은 곳을 향하여’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권면한다. 높은 곳은 나보다 ‘존경할 만한 분’이나 ‘도전받을 만한
분’을 만나 지속적인 가르침을 받는 삶을 의미하고, 낮은 곳은 나보다 ‘연약하고 고통받는
분’들을 찾아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남의 독소’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만남은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만남으로 대체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다 똑같은 강도로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의미있는 만남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것 즉, 사랑의 집중성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이다.


- <이롬라이프 웹진>(글 - 황성주 박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