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옷가지를
정리한 뒤, 내게 그 옷상자들을 아래층에 내려놓아 지역 상이군인회에서 그걸 가져갈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뭔가 남겨 둬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체구
가 컸었다. 상자 하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구두코가 날개 모양으로 생긴 갈색 윙팁 구두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왼쪽 굽이 오른쪽 굽보다 많이 닳아 있었는데, 그건 아버지가 유년기에 소아
마비를 앓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아버지는 늘 작업용 신발만 신었다. 그래서 이 낡은 정장 구두는 교회에
가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신발장에서 꺼내는 신발이었다. 윗부분이 유난히 뒤틀어진 그
구두의 가죽을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만져보면서, 오래 전 그 구두가 그렇게 닳게 된 사연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부모님의 친구였던 로레인과 매튜와 함께 어느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복합 경화증
으로 휠체어에 매인 몸이 된 로레인은 그 병 때문에 마음까지 병이 들고 말았다. 로레인의 남편이
휠체어를 밀고 피로연 장소로 들어서자 열기에 들떠 서로 인사말을 나누던 다른 손님들이 말을 뚝
그치더니 갑자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안 됐지 뭐예요. 저 여자는 무용가였대요. 그것도 꽤 훌륭
한 무용가 말이에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로레인의 귀에다 대고 뭔가 얘기했다.
"이번 곡은 저와 함께 추실까요?" 아버지가 물었다. 그리고 나서 부드러운 동작으로 아버지는
로레인을 휠체어에서 들어 올렸고, 매튜가 아버지의 '윙팁'구두코 위에 그녀의 구두를 올려 놓았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쌍의 남녀가 무도회장을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며 춤추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아버지의 강한 팔에 몸을 의지한 로레인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조금 젖히고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지막 곡이 여운을 남기며 끝난 후, 아버지와 로레인은 휠체어 쪽으로 빙그르르 돌아왔고 아버지는
부드럽게 그녀를 휠체어에 앉혔다. 로레인은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아버지에게 힘찬 포옹을 선사했
다.

지금, 아버지의 유품들과 함께 그 갈색 윙팁 구두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아버지가
내게 남겨 준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중에 내가 간직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삶에 뭔가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던 한 사람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