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시달리다 보면 책 읽는 짬을 내기 어렵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어느 세월에 두꺼운 책을 잡고 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 시간에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을 클릭하는 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도 꾸준하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책을 읽지만 동료들과 토론모임을 만든 곳도 있고, ‘인력계발’ 차원에서 책을 읽히는 회사도 늘고 있다.


#직장인끼리 만든 독서토론회


서울지하철공사 ‘독서문학회’는 15년 역사를 자랑한다. 110명에 이르는 회원 가운데는 정년퇴임을 했거나 다른 회사로 옮긴 뒤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이도 많다. 독서문학회보 편집을 맡고 있는 박병도씨(34)는 “한때 문학창작반 등 소모임 활동이 활발했는데 IMF 경제위기 이후 해체되다시피 해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독서토론반’이 다시 모임을 갖고 명맥을 잇고 있다.


홍보대행사 메리트에도 1주일 동안 읽은 책에 대해 토론하는 ‘목요북클럽’이 있다. 회사 특성에 맞춰 마케팅이나 홍보 관련 책을 1권 골라 3주 동안 읽고 아침에 1시간 일찍 출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현재 회원은 6명. 김나연씨(22·여)는 “함께 날짜를 정해 읽다 보니 미루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북클럽에서 읽은 책들은 사내 서고에 비치돼 다른 사원도 읽을 수 있게 한다.


강원 원주시의 ‘물레회’는 직업과 근무지가 다른 직장인들이 도서관에서 만나 자발적으로 결성한 독서토론회이다. 3년전 출범한 물레회의 회원은 15명.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소설·수필·경제서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회장 박남신씨(33)는 “평소 책을 읽고 싶어도 일과 가정생활에 쫓겨 읽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밝혔다. 요즘은 소설 ‘등대지기’를 읽고 있다. 4권을 1인당 3~5일 동안 돌려 읽고 매달 둘째·넷째 화요일 저녁에 만나 토론한다. 1년에 평균 24권 정도 읽는 셈. 회원 장일환씨(49)는 지금까지 500권이나 읽어낸 다독파(多讀派)다. 박씨는 “같은 책을 읽더라도 서로 취향이나 해석이 달라 교류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책읽기 이외에도 같이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기도 한다.


#‘책 읽기’를 의무화하는 회사


확고한 경영 방침으로 사원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회사가 부쩍 늘어나면서 ‘직장인 책 읽기 붐’을 주도하고 있다. 회사측에서 책값을 대준 뒤 독후감 등을 통해 책을 읽었는지를 평가해서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


태평양은 2년 전부터 ‘리딩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과장급만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했으나 성과가 좋다는 판단으로 지난해부터 일반 사원도 수강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세계화·경영·경제·리더십·자기계발 등 8개 부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매년 4~6월 사이 3권을 읽도록 한뒤, 정해진 기한 안에 독후감 또는 리포트를 내거나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 통과하면 1년에 이수해야 하는 4학점 중 1학점이 주어진다. 인력개발팀 오승은씨(26)는 “리포트는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87% 이상이 수료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고 자랑했다.


한진해운은 ‘독서 학점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평균 최소 5학점을 따야 진급이 가능한 것. 시사·경영 등 각 분야를 망라한 400권 정도의 목록을 주고 6개월에 3권씩(2학점) 읽게 한 뒤 독후감 등으로 평가한다.


독서를 권장하는 기업체들은 외부 독서관리 전문회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겨냥, 책 내용을 요약해 주고 알맞은 책을 안내해주는 서비스도 인기다. 대표적인 업체인 북코스모스(www.bookcosmos.com)의 경우 책 내용을 5%로 요약, 인터넷사이트에 올려 책읽기에 도움을 준다.

- 전병역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