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보시디 외 지음/정성묵 옮김/21세기북스/278쪽/12,000원)

IMF의 구제금융이 막 시작될 무렵 필자는 국내의 외국인 투자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당시 사내에서는 노사분규가 한창이었다. 그때 외국인 부사장이 상징적 제스처로 창밖을 가리키며 직원들에게 "창밖을 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당시 우리 나라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서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노사분규를 비롯한 계층 간의 갈등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 부사장의 말은 결국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바로 엊그제 IMF 위기를 극복했던 것 같은 데 오늘 우리는 또 다시 그때 보다 더욱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장밋빛 꿈에 부풀어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얼라이드 시그널의 회장을 역임한 래리 보시디와 경영학 교수인 램 차란이 공동 저술한 『현실을 직시하라』(21세기북스)는 자신이 원하는, 즉 보고 싶은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당면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즈니스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외부환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이처럼 비즈니스 현실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변화를 무시하는 비현실적인 행동과 전략은 "구멍을 파다가 결국 그 구멍에 파묻히는" 엄청난 파국을 초래하고 만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경쟁사가 글로벌 공급체인을 구축하여 국내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가로 공격해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존의 사고에 사로잡혀 국내 공장을 통폐합하는 미봉책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이라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전략이다. 생산기지를 과감하게 중국으로 옮기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고에 얽매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술과 경험을 내세우거나 노동조합의 반대, 또는 지역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 것이다.

루 거스너가 IBM에서 이룬 최대의 업적 역시 비현실로 치닫는 회사에 현실성을 불어넣은 것이다. 당시 침몰 위기에 직면한 IBM의 가장 큰 문제는 주력 상품인 System/390이 30∼40% 낮은 가격으로 무장한 경쟁 제품들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스너가 "왜 가격을 낮추지 않습니까?"고 묻자 IBM의 경영자들은 메인프레임의 높은 마진을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스너의 눈에 System/390의 비현실적인 가격을 계속 유지하다가는 수익을 올리기는 고사하고 높은 고정비용으로 인한 현금부족으로 회사 전체가 날아갈 것같이 보였다. 거스너가 현실을 설명하자 경영자들은 기존의 믿음과 행동을 완전히 버리고 가격을 낮추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메인프레임 사업은 본궤도로 회복되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려울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의 토대에서 전략을 수립하는 냉철함과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