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처럼 우주선에도 윤활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우주선에 윤활유를 제때 공급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한국 기업이 있다. 충남 아산에 있는 장암엘에스(대표 구연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암엘에스는 한 번 공급하면 20년간 유지되는 윤활유를 개발해냈다. 기계를 ‘MoS2(이황화몰리브덴)’라는 물질로 코팅해 윤활유 교체 없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13명으로 구성된 장암엘에스의 연구진은 KIST의 도움으로 5년 만에 MoS2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우주선은 물론 항공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구동장치가 많은 운송수단에 적용 가능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의 경우 제조부터 폐차에 이르기까지 윤활유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장암엘에스는 MoS2를 이미 국내 자동차와 쾌속정의 스타팅모터의 코팅제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1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우주선 제조업체에 공급하기로 예약이 된 상태다.

1981년 9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독일 뮌헨으로 출장을 떠난 이 회사의 구연찬 대표는 돌아오는 길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한 회사를 방문했다. GE일렉트릭필름이라는, 항공기 엔진의 내부를 코팅해주는 회사였다. 공장을 돌아보던 구 대표는 열을 많이 받는 엔진 속에서도 윤활유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운명을 좌우할 오라클을 받은 그는 윤활유 기술을 개발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구 대표는 그날의 오라클 덕분에 MoS2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1980년에 설립된 장암엘에스는 서울 영등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충남 아산에 공장과 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공장에서는 다목적그리스, 플라스틱그리스, 저마찰그리스, 체인오일, 기어오일, 금속가공유 등 300여 종의 특수윤활유를 생산한다. 공장 내부 곳곳에 시험장비와 개발설비들이 즐비하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10~12%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이런 투자가 있었기에 MoS2와 같은 첨단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충남 아산의 인주산업단지에 대지 3만제곱미터, 건평 1만 6000제곱미터의 신공장을 짓고 있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2009년에는 미국, 영국, 독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27개국에 580만 달러어치의 윤활유를 수출했는데, 신공장이 완공되는 2011년에는 약 7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수출 확대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국 상하이 등에 지사도 운영하고 있다.

장암엘에스의 주고객은 현대기아자동차와 GM, 포드 같은 자동차회사와 삼성, LG 같은 전자회사다. 주로 기업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장암엘에스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회사지만, 알고 보면 이 회사 제품이 일상생활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우선 지하철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전에는 지하철이 곡선구간을 달릴 때면 삑삑 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는데, 최근 들어 그런 소리가 사라졌다. 장암엘에스가 개발한 저마찰 특수윤활유 덕분이다. 새로 나오는 승용차들도 전에 비해 소음이 크게 줄었다. 엔진과 구동장치의 성능 향상으로 소음이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윤활유의 영향이 주효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급 윤활유를 쓰면 자동차의 소음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은 장암엘에스의 연구실에서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장암엘에스는 기술에서만 앞서가는 회사가 아니다. 경영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회사의 면모를 보인다. 특별한 수당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직원의 부인이나 여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20만 원의 출산수당을 지급한다. 매월 지급되는 가족수당도 다른 회사들과 다르다. 기본수당 5만 원 외에 자녀수당으로 첫째 5만 원, 둘째 8만 원, 셋째 12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 자녀가 3명인 사람은 미혼 직원보다 매월 30만 원을 더 받는 셈이다. 여기에다 부모님 중 한 분만 살아계셔도 효도수당으로 3만 원을 준다. 또 남녀 구분 없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월 2만 5,000원의 수당을 별도 지급한다.

가장 독특해 보이는 수당은 독서수당이다. 직원이 보고 싶은 책을 사서 읽고 간단한 독후감만 제출하면 책값의 2배를 주는 것이다. 아이디어 제안을 촉진하기 위해 제안을 많이 한 직원에게는 연말에 10만~150만 원의 제안수당도 준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자녀학비도 대학까지 전액 지원한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장암엘에스는 미래 비전도 명확하다. 구연찬 대표는 실리콘사업을 확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실리콘그리스를 일부 생산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이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인주산업단지에 신공장이 완공되면 LED와 LCD 부문에 들어가는 실리콘을 양산하여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할 계획이다. 구 대표는 윤활유 사업 또한 궁극적으로는 녹색산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녹색 윤활유’를 만들기 위해 장암엘에스는 지난 6년간 연구개발을 해왔으며 이미 섭씨 40도 이하에서 자연 분해되는 윤활유를 개발, 공급하는 중이라고 한다. 장암엘에스는 도전 속에서 미래를 만드는 기업이다.

- 『오라클 이펙트』 중에서
(이치구 지음 / 올림 / 304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