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옥한흠 지음/국제제자훈련원/206쪽/7,000원)

저는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것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자연적인 환경이 주는 영향은 참으로 큽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 시절에 바닷가에 살면서 퍽 의미 깊은 진리를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선창가에 저녁노을이 찾아들면 어부들은 자기의 배를 물이 얕은 곳에다 대고 밧줄을 육지에 있는 기둥에 묶어 놓습니다. 바다가 잔잔할 때에는 그냥 밤을 지나지만, 태풍의 조짐이 보이거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칠 때는 밤중이라도 선주는 일어나 자기의 배를 안전한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우리 생각에는 배를 파도가 미치지 않는 안전한 육지로 끌어올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배를 몰고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배가 깊은 바다 위에 떠 있기에 충분할 만큼 밧줄을 길게 늘이고 닻을 내려 놓습니다. 그러면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와도 배가 물가로 밀려오지 않습니다.

태풍의 풍파가 지나간 다음 바닷가에 나가보면 깊은 바다에 띄워 놓은 배는 피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얕은 바다에 그대로 내버려둔 배는 파도에 박살이 나 있는 경우를 봅니다. 깊은 바다에 띄워 놓은 배는 산더미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유유히 파도를 타고 온전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거기서 깨달은 진리는, 안식은 깊이 들어가는 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안에 깊이 들어가면 거기에는 깊은 바다와 같은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안식에 일단 몸을 맡기면 세상의 어떤 풍파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유유자적하게 마음의 평안이 유지됩니다. 주님이 이 평안을 주시고 마음의 쉼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시종일관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그만큼 그의 마음은 신비스러운 쉼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풍파에 시달려 피곤해졌다는 것은 우리 힘의 원천이 소모되었다는 말입니다. 충전지가 다 소모되어 버렸을 때 그 충전지를 잠시 쉬게 한다고 해서 충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의 원천인 전원에 연결시켜 충전을 시켜야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권총 자살로 세계 지성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던 헤밍웨이는 말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건전지가 다 소모되고 코드를 꽂을래야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운 공허 가운데서 살고 있다.”

우리는 새 힘을 주시는 원천이며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연결시켜야 다시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동안 자신을 하나님과 한 순간도 떼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쉼과 평안의 비결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힘들고 피곤할 때마다 하나님과 마주 앉는 자리로 옮겨갑니다. 이 때 피곤이 풀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너무나 복잡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날이 변하고 있는 역사는 그 추세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 뿐입니다. 국제 정세를 보아도 오늘의 원수가 내일의 친구가 되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비정함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지진과 기근,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 세상이 앞으로 순탄치는 않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산더미 같은 생의 파도가 밀려와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안식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나를 지배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순간 체험되는, 독특한 영적 깊이를 가진 내적 평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생명이요, 귀중한 삶의 요소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고, 우리로 하여금 누리게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서 우리 마음을 드릴만한 참 좋은 주인이십니다. 결코 난폭하거나 교만하신 분이 아닙니다. 주인이 좋으니 멍에가 힘들지 않고 마음이 기쁘니 멍에가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멍에가 쉬운 이유는 주인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지어주신 멍에, 즉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무거운 짐을 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에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