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현대인들은 소망이 무엇인지 모른다. 낙관주의와 긍정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는 난무하는데 막상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을 내놓지 못한다. 소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과연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는 원초적인 의문에 눌려 절망의 바다로 곤두박질한다.

버트란드 러셀의 정직한 고백을 들어보라.

“내 중심은 언제나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다. 희한하면서도 찌르는 듯한 고통이다. 이 세상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그 무엇, 무한하고 거룩한 그 어떤 존재, 신神을 추구하는 고통이다. 나는 신을 찾지 못했고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신에 대한 사랑이 곧 나의 생명이다. 마치 유령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과 같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절망으로 그 신은 나를 채운다….”

헤르만 헤세의 고백도 들어보자.

“우리는 본향에 가기 전 수많은 모퉁이에 걸려 넘어져야 한다. …우리를 안내해줄 존재는 없다. 오로지 우리의 향수병만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물론 소망도 가끔은 ‘희한하면서도 찌르는 고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망은 유령을 끌어안는 식은 아니다.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끌어안는다. ‘모퉁이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은 맞지만, 향수병이라는 주관적 감정보다는 더 크신 존재가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 앞에는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따르라. 네 깊은 갈망을 채워주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유진 오닐의 <나사로가 웃다>라는 연극을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에게 사람들이 묻는 대목이 나온다. “저세상에는 무엇이 있던가?” 그러자 나사로가 대답한다. “그곳에는 오직 생명만이 있었죠! 예수님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웃음이 제 마음에 들렸답니다. 저는 사랑과 생명으로 거듭나서 주님과 함께 큰소리로 웃고 또 웃었죠. 마치 오랫동안 두려움에 짓눌려 있던 생명이 마침내 목소리를 찾아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몇 년 전에 성 바오로 성당에 걸려 있는 사진 하나를 본 적이 있다. 런던대공습 당시에 찍은 사진인데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공포의 상황에서 밝은 빛 한줄기가 아름다운 성당의 십자가 지붕을 비추는 장면이었다. 부활은 바로 그 빛줄기와 같다. 십자가 뒤에서 밝게 빛나며 그 의미를 되새겨준다. 부활의 빛 속에서 우리는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버림을 대신 당하신 분의 영광이다. 그 버림받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했지만, 부활의 영광은 그보다 더욱 찬란하여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준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오닐의 연극에 등장하는 나사로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우리의 인생은 마침내 목소리를 찾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존방식의 길인 ‘소망’을 열어주었다. 소망이 흔히 말하는 소원성취와 차원이 다른 것은, 진정한 소망은 정상적인 인과관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비좁은 사고의 틀을 과감히 떨치고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소망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숨쉬며 하나님의 영원한 웃음 속에서 희망의 샘물을 길어내는 삶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갈망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나아가 우리의 본능적인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갈망이 왜곡되어 우리를 온갖 죄악과 고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우리가 오해의 베일을 걷어내고 그것의 진짜 실체를 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갈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하늘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우리 마음의 중심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가 그 외의 것을 원했던 적이 있었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모든 것들은 사실상 하나의 단서였을 뿐이다. 약속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흥분에 사로잡혔던 순간만큼이나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크게 메아리친다면 우리는 그 정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의심 없이 ‘마침내 내 존재 의미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광야를 지나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