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CEO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본 적 있는가

21세기적 영웅의 모델에 가장 근접한 이를 들라면 첫손에 꼽힐 인물이 애플의 전설적인 최고 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아닐까 싶다. 시대에 따라 영웅의 조건도 달라지는데,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사는 지식산업 사회의 영웅적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예컨대 영웅은 역사의 정점에서 도도한 물줄기를 바꿔놓는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대학생 생모 때문에 입양아가 되었고, “빌 게이츠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벌이고 있을 때, 휼렛 패커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그러니까 비하인드라는 면에서도 일단 영웅적 배경의 스테레오타임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는 친구 워즈니액과 함께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인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어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다. 창의적이지만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자기가 키운 애플에서 해고되지만, 이번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그래픽팀을 인수해 ‘픽사’(Pixar)로 개명하고, 우리가 잘 아는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한다. 디지털 시대의 적자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길 콘텐츠라는 그의 지론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윽고 적자에 허덕이는 애플에 연봉 1달러의 임시 CEO로 복귀한 그는 인터넷 중심, 디자인 중심의 애플 아이맥(iMac)으로 컴퓨터의 용도 변경을 이끌었으며, 최근에는 미국 음반 다운로드 시장의 4분의 3을 휩쓴 ‘아이툰스’(iTunes), MP3플레이어 강국이었던 한국마저 침몰시킨 ‘아이팟’(iPod)으로 전세계 시장의 80%를 석권해버린다. 그가 강조했던 퍼스널 컴퓨터, 디자인, 콘텐츠는 이제 우리네 삶의 중심이 되었고, 그는 길을 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공함으로써 현대판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잡스의 영웅담이 엉뚱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책<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김경태 지음, 멘토르 펴냄)이다. 스티브 잡스와 프레젠테이션이라... 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원래 프레젠테이션은 광고기획자가 광고주에게 설명하기 위한 문서와 직접 시연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행위 일체를 가리키는 말로 변용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비즈니스의 시작이 프레젠테이션이며 그 끝 역시 마찬가지다”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그렇다면 잡스는 어떤 대단한 기술을 발휘하기에 프레젠테이션에서조차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을까?

책을 보면 애플사의 홈페이지에 업로드 된 1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주소가 나와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그 장면들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수백 개의 화면을 이용하는 동안 대본이나 하다못해 줄거리가 적힌 메모조차 훔쳐보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가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청중은 미리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듯 스티브 잡스의 말과 움직임을 따라가게 된다.

또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머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정보와 지식과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짧고 명쾌했다. 마지막으로는 유머다. 그로 인해 많은 청중은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함께 즐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잡스는 현대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무엇에 흥분하고, 어디에서 감성을 분비하며, 어떻게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화해 기억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이해를 통해 그는 강력한 설득 기술을 갖게 되었고,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이나 <설득의 기획서>(톰 샌트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같은 설득 기술에 관한 책을 꾸준히 보아왔다. 그런데 잡스는 설득력이라는 것이, 특히 비즈니스적 설득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그가 상대해야 할 세상, 그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에 찬탄해줄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깊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