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게 요구하면 크게 얻는다
올림픽 개최국은 대체로 행사 5년 전에 선정되고, 일단 개최국이 선정되면 미국의 경우 3개 방송국인 ABC, CBS, NBC가 개최국과 중계권료 협상을 벌인다. 그야말로 협상의 최고수들이 협상테이블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내에서 올림픽에 가장 강한 방송사는 ABC로, 대략 70~80% 정도를 낙찰받았다. 1960년 로마 올림픽의 중계권료는 150만 달러, 1964년 도쿄 올림픽은 300만 달러,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은 500만 달러, 1972년 뮌헨 올림픽은 1,300만 달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2,200만 달러였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반쪽짜리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중계권료를 협상할 당시만 해도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지 못해 역대 최고가로 낙찰되었다. 소련에서는 이것을 국제비즈니스 협상 사상 최고의 성공사례로 기록해놓은 반면, 미국에서는 최악의 사례로 기억하고 있다.

모스크바 올림픽의 중계권 협상은 몬트리올 올림픽 기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때 소련 측 책임자는 미국의 3대 방송사 대표들에게 초청공문을 보냈다. 3대 방송사 대표들이 참석해보니 소련 측에서 제시한 최소한의 액수는 무려 2억 1,000만 달러! 미국 방송사 대표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정상적인 비즈니스 협상이 잘 안 될 때 미국인들은 흔히 로비스트를 동원한다. 미국 방송 3사는 분명 백악관에도 하소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 측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와중에 가끔씩 소련 측에서 날아오는 공문은 갈수록 그 위협의 강도가 세졌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괴롭히는데, 자꾸 이렇게 나오면 우리도 딴마음을 먹을 수 있다. 미국 3대 방송사를 배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림픽 방송 역사상 미국의 3대 방송사가 배제된 적은 없었으니 미국 방송사들은 계속 버티는 한편, 각계에 호소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마침내 소련은 사전 통보조차 없이 행동에 착수했다. 당시 비디오데크 몇 대와 열악한 방송장비만을 갖추고 있던 ‘SATRA’라는 무명의 미국 회사와 가계약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3대 방송사가 올림픽 중계권에서 배제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미국 방송 3사는 중계권을 따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 뒤 소련 측에서 비교적 호의적인 공문이 날아왔다. “미국의 방송 3사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가장 성의를 보이는 곳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고심 끝에 각자 입찰서를 제출한 미국의 방송 3사 대표들은 곧바로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리셉션 장소에서 소련 측은 이렇게 발표했다. “미국의 3대 방송사가 모두 나름대로 성의를 보여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NBC가 가장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했으니 NBC에 중계권을 주겠다.” NBC는 기뻐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금세 절망을 느꼈다. 미국으로 돌아온 3대 방송사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했다. “우리가 다 같이 미친 짓을 했다! 이번에는 NBC가 대표로 망신당한 셈 치고, 이 사례는 국익과도 직결되는 일이니 서로 입찰가를 오픈하고 케이스 스터디를 해보자.” 그 자리에서 드러난 입찰가는 ABC 8,100만 달러, CBS 8,300만 달러, NBC 8,700만 달러였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탄했다. “소련 측 대표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단 한 순간도 지워지지 않은 숫자가 2억 1,000만 달러였다. 그에 비하면 8,700만 달러도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NBC가 감당해야 할 금액이 무려 9,300만 달러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미 소련 측과 가계약을 했던 SATRA에 위약금 600만 달러를 몰래 대납해준 것이다. 이후 협상 매뉴얼에는 “크게 요구하면 크게 얻는다”라는 격언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처럼 협상 초기에 작전상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을 ‘소련식 제안법’이라고 한다.

▲ 살라미 소시지법
살라미 소시지는 동구권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매우 짜서 얇게 잘라 먹는 게 특징이다. 누가 조금만 달라고 해도 여간해서는 나눠주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때로는 상대에게 처음부터 너무 큰 요구를 하면 결렬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작은 요구로 나누어 야금야금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 방법이 유효할 수도 있다. 사소해 보이는 한 가지라도 일단 타협을 하고 나면 쉽게 멈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이것을 이용하여 합의를 이끌어내고 싶은 내용을 잘게 나누어 순서대로 하나씩 제시하며 얻어내는 것이 바로 살라미 소시지법이다. ‘큰 요구는 작게 세분하여 요구하라’는 것이 핵심인 이 전술은 헝가리의 공산당 총서기장이었던 마시아스카로이푸가 스탈린이 발트 3국을 점령하는 과정을 목격한 뒤에 붙인 이름이다. 다음은 구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발트 3국을 점령할 때 사용했던 실제 사례이다.

구소련: 독일의 위협에 대비하여 병력을 대서양 쪽에 배치하고 싶다. 최단 루트로 귀국의 영토를 통과하고 싶은데 도와 달라. 귀국의 국가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발트 3국: 통과하는 것이라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구소련: 가능하다면 이동하는 동안의 물과 식량을 귀국에서 조달하고 싶다. 물론 돈은 지불하겠다.

발트 3국: 돈을 지불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구소련: 실은 우리 부대원들의 훈련이 덜 된 상태다. 훈련시킨 다음 파병해야 하는데 사태가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이동하면서 훈련을 시키고 싶은데 가능하겠는가?

발트 3국: 훈련으로 인해 우리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구소련: 고맙다. 훈련지역을 한정하여 귀국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 그런데 훈련 중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일시적으로 기지를 운영하고 싶다.

발트 3국: 일시적인 기지라면 상관없다.

구소련: 그 기지에 사고대응부대를 주둔시켜도 괜찮겠는가.

발트 3국: 어쩔 수 없지 않은가.

- 『협상 시크릿』 중에서
(박명래, 김국진 지음 / 다차원북스 / 232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