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능 전문가인 대니얼 골만은 그의 저서 『감성의 리더십』에서 ‘구성원들이 중요한 (대체로 불쾌한) 정보를 감춤으로써 리더 주위에 생기는 정보 공백’을 CEO 질병으로 규정했다. 이 질병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한 피드백의 고리를 차단하거나 들어오는 피드백을 경청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낼 때 발생한다. 임원이 되면 조직의 하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입수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상대해보기 전에는 임원 직책을 가진 사람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CEO 질병이 뿌리내리면 중요하지만 불쾌한 깜짝 뉴스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나는 몇 년 전 컬럼비아가스트랜스미션의 부사장으로 있을 때 이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았다. 독서광인 나는 종종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런 책 중 하나가 리처드 칼슨과 조셉 베일리가 공동으로 저술한 『인생의 속도를 늦춰라』다. 이 책을 여러 권 구입해서 나누어주었고 그중 상당수를 인사부 직원들에게 보냈다. 책에 대한 반응은 대단히 좋았다.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매주 토론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 모임의 참가자 중 리자라는 이름의 직원이 있었다. 모임을 갖기 전에도 몇 차례 교류가 있었지만, 오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토론 모임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리자가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녀는 메일을 통해 모임과 책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기분 좋은 내용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이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그 모임이 자신에게 특히 좋은 경험인 이유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으며 부사장 이상은 모두 ‘인정사정없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나를 임원들 중 한 명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알고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임원이라는 자리가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될 수 있듯이 문화 규범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때로는 선호하는 관리 방식에서 탈피해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철강회사 페렉스포의 사이먼 원드키 최고마케팅책임자는 글로벌 광업회사 BHP빌리턴의 부사장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파견 근무를 할 때 그런 교훈을 얻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지역 문화 또는 기업 문화에 신속히 융화되는 방법에 관한 교육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내게는 그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다. 일례로 내가 근무했던 어떤 나라에서는 상사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지 말라는 문화가 있었다. 상사가 질문을 하면 그들은 미소로 답한다. 그러면 상사는 일이 잘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직원들은 실제로 쓰나미가 문 앞에 당도할 때까지는 알리지 않는다. 그때 가서는 잘못을 시정하고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다. 실제로 당시 우리는 독자적인 수송터미널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이게 문제투성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내 스타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부하직원들을 믿고 권한을 위임할 수 없게 되었으며, 조직의 위와 아래를 모두 살펴야 했다. 내 부하들 그리고 부하의 부하들이 하는 일까지 지켜봐야 했다. 일을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하는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내게 그야말로 큰 스트레스였다.”

원드키의 이야기는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직 내부의 몇몇 핵심 인물들과 관계를 구축하여 실무를 파악하게 된 것이 현지 적응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하이드로알루미늄 북미지사의 전 CEO 마틴 카터는 직장생활을 통해서 자기 리더십에 관한 환상을 갖지 않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려면 회사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업무의 바탕을 이루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관한 피드백을 얻고자 할 때 나는 조직 내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하고 이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입수한다. 이처럼 조직의 구성원들을 통할 때 업무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초기에 형성된 공식 라인에서 얻는 정보에만 의존한다면 상당히 왜곡된 그림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공식적 장벽을 허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조지 스터너 부제독은 해군 복무 시절 이른바 ‘눈의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그 덕분에 관심이 필요한 문제를 계속 주시할 수 있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나쁜 소식을 가져오되 나를 놀라게 하지는 마라. 우리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빨리 가져오라’는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스터너는 가급적 휘하 장병들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늘 함께 교류하려고 노력했다. 부하들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이처럼 접근하기 쉬운 분위기를 조성하자 네트워크가 그를 찾아내 조정 또는 방향 수정이 필요한 일들에 관해 적시에 조기경보를 울려주었다.

나는 스터너가 구현한 특성을 토대로 조직의 임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업무 방식을 도입할 것을 권한다.
▲ 항상 조직원이 찾아와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야 한다.
▲ 말을 끊거나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경청해야 한다.
▲ 개방형의, 위협적이지 않은 질문을 한다.
▲ 사람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

- 『무엇이 임원의 성패를 결정하는가』 중에서
(스콧 에블린 지음 / 올림 / 335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