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캄보디아의 씨엠립이라는 도시에 앙코르와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와트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그만큼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의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심지어 국기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 년의 신화 앙코르와트. 해마다 엄청난 여행객들이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씨엠립을 방문한다.

다른 유적지들의 입구가 동쪽에 있는 반면, 앙코르와트의 입구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유는 앙코르에서는 서쪽이 죽음의 방향을 가리키고, 당시 왕이었던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이자 서향을 상징하는 비슈누에게 바치는 사원을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여행객의 흔적이 드문 남쪽 입구는 2006년 12월 고(故) 앙드레김의 패션쇼가 펼쳐진 주 무대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서쪽 입구의 다리로 들어서면 해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이는데, 유적지라는 개념을 벗어나 하나의 삶의 공간인 듯한 인상을 준다.

다리를 건너 출입구를 통과하면 300m가 훌쩍 넘는 긴 참배로가 눈앞에 보인다. 참배로 양쪽으로는 연못이 펼쳐져 있는데, 그중 왼쪽 연못 앞은 다섯 개의 봉우리 탑이 모두 보이는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또한 연못에 반사되어 보이는 탑의 반영은 인도의 타지마할 못지않게 아름답다. 양쪽의 연못과 도서관 주위는 중앙성소가 전체적으로 잘 보이는 지역이니 사진촬영은 필수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앙성소를 탐험할 시간이다. 앙코르와트는 총 3층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사원으로,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신들이 사는 천상계로 나뉜다. 1층의 회랑에 새겨진 총 8개의 부조들은 힌두교 신화가 담긴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힌두교의 장례풍습과 일치하며 수리야바르만 2세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힌두 신화를 예습하고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1층 회랑에 자리 잡은 모든 부조들은 하나같이 올록볼록한 입체감이 뛰어나, 보는 위치에 따라 부조에 새겨진 모습들이 다양하게 비치는데, 이는 놀랄 정도로 섬세하다. 특히 남동면 회랑에서 볼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은 꽤 오랜 시간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1층과 달리 인간계의 2층 회랑은 첫인상이 굉장히 휑하다. 특별히 이목을 끄는 것은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목이 잘려 훼손된 쓸쓸한 석상들과 회랑 외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1,000명이 훌쩍 넘는 압사라 무녀들의 부조뿐이다.

신의 세계인 3층으로 가기 위한 2층 외부에는 경사가 70도에 육박하는 계단 총 12개가 있는데, 사고사례가 많아 지금은 한 곳만 사용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나무계단을 만들어두었지만, 이마저도 아슬아슬해 보인다. 이것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을 숙이고 존경을 표하는 신성한 공간을 의미한다. 우선 3층에 오르기 전에 복장을 점검해야 한다. 무릎이 보이는 바지나 치마, 민소매는 허용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3층에 도착한다. 저 멀리 보이는 진입로까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앙코르와트를 보면 또다시 감탄을 하게 되고, 이곳을 향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내려다보면 천 년 전의 수리야바르만 2세가 된 듯한 착각이 들 것이다. 3층에 우뚝 솟아 있는 중앙탑은 앙코르와트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중심축인 ‘메루산’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앙코르와트는 우주의 축소판을 나타낸다.

- 『앙코르와트, 지금 이 순간』 중에서
(김문환 지음 / 이담북스 / 308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