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 속 ‘신 산책로 1번지’
발아래는 천 길 호수, 머리 위는 쏟아질 것만 같은 절벽산이 병풍처럼 드리운 허리춤쯤에 실낱같은 오솔길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 오솔길 10리(약 4km)는 청정 자연 속 ‘신(新) 산책로 1번지’, 괴산 산막이옛길이다. 산막이옛길은 1957년 남한에 처음으로 수력댐을 건설한 괴산호를 사이에 두고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과 산골 산막이마을을 잇는 길로, 걷기 좋게 복원해놓은 트레킹 명소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라 2011년 11월 정식 개장하면서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산막이옛길을 걷노라면 산과 호수, 기암괴석이 한 치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출발지인 주차장부터 산막이마을 구간 주변에는 무려 26개의 볼거리가 있다.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연리지는 2그루의 나무줄기가 서로 붙어서 자라는 나무다. 100번 찾아오면 소중한 사랑을 ‘보장’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기원하며 명패에 소망글을 적어 울타리에 걸어두었는데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천 년에 한 번, 10억 그루에 한 그루 ‘정사목’
고개를 넘어서면 아주 특이한 소나무 한 쌍이 있다. 정사목이다. 남자 소나무와 여자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자세로 자라고 있는데 천 년에 한 번, 10억 그루에 한 그루 나올 수 있는 음양수라고 한다. 나무를 보면서 남녀가 함께 기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솔길에서 20여 미터 산 쪽으로 올라가야 볼 수 있는데 자칫하면 놓칠 수 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던 호랑이굴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갈증이 날 즈음에 약수터가 나타났다. 중간 지점에 있는 ‘앉은뱅이 약수’다. 옛날에 앉은뱅이가 이 약수를 마시고 걸어서 갔다고 한다. 수질이 좋고 연중 펑펑 쏟아진다. 나무 밑동 사이로 호스를 끼워 마치 나무가 물을 뿜어내듯 만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호수 위로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은 유리로 깐 ‘고공전망대’가 나온다. 40~50분 걸어 산막이마을에 도착했다. 2013년 기준으로 이 동네에는 4가구가 있는데 모두 음식점을 한다.

터줏대감 이강순 할머니의 일생
‘하얀 집’이라는 식당과 민박을 운영하시는 83세의 이강순 할머니는 이 마을 터줏대감이다. 스무 살에 강원도 횡성에서 시집와서 63년째 이 ‘갇힌 마을’에서만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연로하시고 몸이 안 좋아 큰딸과 사위가 들어와 셋이 살고 있다. 점심으로 큰따님이 산에서 직접 따온 버섯을 넣은 찌개를 권했다. 1인분을 시켰는데 2인분의 양을 주시면서 할머니는 “밥 더 줄 테니 다 먹고 가.”라고 하신다. 꽃 피는 봄이 아름다운 동네이니 그때 또 오라고 하시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서 손을 흔드신다. 산막이옛길은 호수변 오솔길 걷기, 산행으로 2~3시간 코스 걷기, 호수 유람선으로 가는 길, 이렇게 3가지 길이 있다. 해발 450m 등잔봉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호수를 등지고 서쪽 가파른 산을 10여 분 오르니 절로 숨이 차다. 풀 내음, 송진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서서히 오른다.

등잔봉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니 등잔봉이다. 등잔봉까지 오르는 데 약 40분 정도 걸린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치르러 간 아들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려 효험을 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높은 곳에 오른 만큼 호수와 산 그리고 주차장 쪽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 『내 인생에 잊지 못할 대한민국 감성여행지』 중에서
(남민 지음 / 원앤원스타일 / 500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