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우라 모토오 지음/왕현철 옮김/거름/272쪽/10,000원)

도쿄의 오오타는 공장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고, 히가시오사카 시도 마찬가지로 중소기업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이 기업들의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다. 중소기업이 사라진다는 말은 곧 제조업이 망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걸까?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임의 80퍼센트 정도는 국가에, 나머지 20퍼센트 정도는 대기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제조업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곧 국가 경제의 붕괴를 뜻한다.

일본에는 "무슨 무슨 계열"이라는, 외국 기업들에서는 거의 그 예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하청"이라는 제도가 지나치게 발달해 있다. 즉, 이중 산업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회사도 유럽 기업의 하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본 대기업과의 관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먼저, 거래 관계가 평등하다. 둘째, 서로의 노하우에 대해 지적소유권을 인정해 준다.

일본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지적 노동 가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육체적 노동에 대해서는 돈을 지불하지만, 지적 노동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국내 기업들만을 거래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들은 참신한 투자나 연구개발에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 발전에 필수적인 체력 증강이 어렵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톱니바퀴 구조로 되어 있는 기계에 대한 문제로 상담을 해 왔다. 그것은 초소형 카세트 데크로 획기적인 신제품이었다. 그러나 설계대로 만들면 내구 시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고장 나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설계도를 빌려와 설계를 검토해 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빨리 고장나는 것이 당연한 설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톱니바퀴에 대한 전문적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설계대로라면 톱니바퀴와 톱니바퀴의 톱니가 맞물리는 비율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서로 맞물리는 톱니바퀴의 중심간 거리가 좁혀져 맞물리는 비율을 높여주어야 했다. 이때 톱니 모양을 변경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카바(高齒)라는 톱니 형태를 변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공업 규격인 JIS를 포기하고 독일 공업 규격인 DIN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그 대기업은 우리들의 제안을 수용했고 마침내 이 초소형 카세트 데크는 화려하게 시장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 회사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부품 주문을 우리 회사에 맡겼다. 그러나 설계에 관한 우리의 노하우는 요금 지불 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이 또 이런저런 문제가 겹치게 되어 우리는 거의 무료봉사를 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은 외국의 기업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설계에 대한 기술료, 설계도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 등 모든 지적 노동에 대한 비용을 정확히 지불한다.

일본 대기업과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우리가 경험한 것과 같은 기가 막힌 사례가 대략 1년에 두세 건은 있다. 지금 활발히 발전하고 있는 기업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에게 있어 하청을 받을 때 좋은 발주 기업, 즉 고객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 회사 매출의 약 30퍼센트는 해외 기업들과의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데,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지적 노동에 대해서도, 육체 노동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대가를 받고 있다.

- 『주켄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