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 지음/랜덤하우스중앙/256쪽/12,500원)

벤처는 고학력자나 전문인에 의한 창업 비율이 높다. 그들은 주변의 상당한 기대 속에서 창업을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D사의 K사장도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대기업 연구원 경력을 가지고 창업했다.

D사는 1997년까지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고성장을 했으나 1998년에 부도를 맞고 말았다. 한국에 모범적인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K사장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질이 현실적인 사고를 가로막았다. 더욱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만으로 경영진을 구성하다 보니, 경영관리 능력의 한계도 부실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한때 벤처업계의 스타로 알려졌던 A회장 역시, 자타가 인정하는 명쾌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벤처업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그도 부도의 비운을 맞고 말았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A회장의 실패는 주변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부도가 나기 1년 전쯤, 우연한 자리에서 A회장 계열사의 B사장과 대화하던 중 A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이런 평을 들었다. “A회장은 너무 똑똑해서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A회장은 아래 있는 사람들의 정서를 너무 모릅니다.”

그 후 A회장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B사장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때 내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똑똑한 사람이 사업에서 실패하는가?” 학교 다닐 때 우등생이었다고 해서, 혹은 자기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라고 해서 그 사람이 사업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과거의 화려한 경력에서 오는 자신감이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창업자에게 가장 필요한 똑똑함은 현장 지식과 세상 물정이다. 이를 영어로 ‘Street Smart’ 라고 한다. 이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업을 일으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경험으로 체득한 지식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실속 있게 회사를 꾸려 나간다.

그러나 현장 중심의 똑똑함에도 한계가 있다. 사업에 성공하면 여기저기서 불러대고, 졸지에 인기 스타가 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강의 청탁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사양도 하고 절제도 하지만, 여기저기 나가다 보면 유명 강사가 되기도 한다. 대학에서는 겸임교수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스스로의 논리에 도취되기도 하고, 주변의 찬사와 칭찬을 많이 듣다 보면 자기 역량에 대해 과신하게 되는 것이다. 자만심이 생기는 순간 실패의 씨앗이 싹튼다.

결국 진정한 똑똑함이란 자기 절제와 균형감각이 아닐까? 인간의 깊은 심성을 이해하는 마음과 세상 물정을 꿰뚫어볼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유혹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성공만을 거듭해온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지혜이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서 이러한 능력이 길러진다. 그렇다고 실패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지혜를 체득하는 것도 아니고, 실패를 통해 충분한 자기 성찰을 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