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지음 / 솔 / 318쪽 / 8000원)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듯하다.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학력 위조, 뇌물, 청탁, 위장 전입, 상대에 대한 음해 등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온갖 비리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비리를 저지르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결과적으로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들과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이러한 행위는 결코 성공과 영광의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임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조직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신뢰이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들이 높은 신뢰를 구축하고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을 때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

기업에 있어서도 높은 신뢰를 구축하는 경영자야말로 진정으로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조직을 성공으로 인도한다. 21세기 전반부에 우리는 기업의 급격한 진화와 변화를 목격했다. 아래 사례들에서 보아왔듯이 높은 신뢰는 이러한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반면 낮은 신뢰는 변화와 혁신에 저항을 초래하여 구성원들의 열정을 떨어뜨린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 엔진 사업을 시작했을 때 경쟁자들은 광고료를 지불한 기업들을 상위 검색 순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물론 검색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유저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구글은 경쟁자들과는 달리 광고료를 지불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스폰서 기업 링크’라는 별도의 공간을 할애해 표시해주고 대신 유저들과 높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구글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브린이 “우리는 사악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구글은 높은 신뢰를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반면 2003년 어메리칸 에어라인의 CEO인 도날드 J. 카티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부득이하게 급여를 상당폭 삭감할 수밖에 없으므로 직원들의 협조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은밀히 고위 경영진에게는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는 유능한 고위 경영진을 붙잡기 위해 보너스 지급이 불가피하다는 잘못된 믿음에 따라 행동했고 급여를 삭감당한 직원들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카티는 임원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 사실을 공시해야 했는데 그는 노조가 급여 삭감에 동의한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가 그 사실을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노조위원들은 경영진에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고 급여 삭감에 대한 찬반 투표를 다시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리더들에 대한 신뢰는 기업의 명암을 갈라놓는다. 물론 서로 상충되는 요구들 사이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신뢰를 구축한 리더는 더욱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유익하고 즐거운 삶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천하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시비(是非)의 기준이요, 또 하나는 이해(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기는 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등급이요,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좇아서 해를 받는 것이다. 정약용, 『다산문선』

다산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세상을 두 가지 관점, 즉 옳고 그름의 기준과 이익과 손해의 기준에 따라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비리들과 비극적인 종말은 대부분 옳고 그름보다는 이해를 먼저 따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들이 신뢰를 잃는 것도 정의를 좇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옳은 것은 대낮의 태양처럼 분명하고 강렬하여 우리의 양심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리고 옳지 않은 길을 택한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해서 얻은 이익은 결국 해로 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옳은 것을 지키려다가 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옳음을 지킴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해를 당한 것 같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해가 아니라 더 큰 이익임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옳고 그름 대신 이익과 손해를 앞세우고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병들고 사회는 아귀다툼의 각축장이 되고 만다. 오늘날 시비와 이해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업 경영자들 역시 이해보다는 시비를 먼저 생각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하여야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또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수많은 비리 역시 이해보다는 시비를 먼저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고 오히려 옳음을 선택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다산의 가르침을 따라 이해보다는 시비를 먼저 생각하는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