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꼭대기로 태양이 내려앉은 한낮에 걷고 있는 건 나 하나뿐. 도대체 난 여름마다 왜 이러는 걸까? 왜 해변으로 가는 자동차에 올라타지 않고, 배낭을 메고 운동화끈을 묶는 걸까? 일 년 열두 달 걷기 좋은 날이 넘치는데 하필이면 오이 넝쿨마저 바싹바싹 말라가는 땡볕에 길을 나서는 걸까?

유럽의 길, 그 매력에 푹 젖어든 시간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1~4권)을 쓴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다섯 번째 여행기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펴냈다. 중세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비와 바람과 안개의 삼중주를 걷는 내내 들려준 스코틀랜드 도보여행길.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선사해준 레이크 디스트릭트 등 걸어서 보낸 시간 동안 비에 젖고, 뜨거운 태양에 젖고, 지독한 외로움에 젖고, 길이 품은 풍경에 흠뻑 젖어들었다.

태양의 축복을 받은 중세의 언덕_ 이탈리아 토스카나
토스카나는 푸치니와 안드레아 보첼리, 피노키오의 고향이자 대리석과 와인, 올리브 오일의 산지다. 강렬한 태양과 서늘한 바람이 이곳의 포도를 남다른 향으로 키워내 ‘카안티 클라시코’ 같은 대중적인 와인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같은 고급 와인을 탄생시켰다. 농부들의 소박한 음식으로 세계의 미식가들을 사로잡고,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들이 점처럼 박혀 있어 가장 이탈리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 곳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이 작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과 성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높은 첨탑들은 몇 백 년의 세월을 건너 중세로 이동한 것만 같다. 붉은 포도주와 과거로 돌아간 듯한 옛 도시 토스카나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 더 이상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가 아닌, 토스카나의 이탈리아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Tip. 토스카나의 산 지미냐노에서 해야 할 일 다섯 가지
1. 성벽과 사이프러스나무 사이로 산책하기
2. 토레에 올라서 전방위로 펼쳐진 마을 풍경 즐기기
3. 피아자 데라 치스테라나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기
4. 토스카나 음식과 와인 맛보기
5. 산타 마리아 성당의 16세기 프레스코화 감상하기

- 『유럽의 걷고 싶은 길』
(김남희 지음 / 미래인 / 324쪽 /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