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0년 9월 25일,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함선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바다 위를 메운 370여척의 그리스 함대와 800여척의 페르시아 함대는 결전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선의 수만 보면 이 전투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기원전 5세기 경,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서아시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다리우스 1세는 지중해로 세력을 확대하고 당시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굴복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테네를 중심으로 민주정치의 기반을 다지던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리우스 1세는 마침내 그리스 정복에 나섰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는 1차 원정에 나섰지만 폭풍우 때문에 실패했고 기원전 490년에 있었던 2차 원정 역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다리우스 1세가 죽고 페르시아의 왕위를 이어받았고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아버지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지 10년만인 기원전 480년에 그리스 원정길에 올랐다. 원정군은 보병부대 70만, 기병 8만, 함선 1,207척, 수송선 3,000척 등 유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이에 맞서는 그리스 연합군의 규모는 페르시아의 3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리스에는 위대한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예상하고 지도층을 설득하여 해군을 창설하고 기존의 배보다 훨씬 규모가 큰 3단노선을 만들었다. 노를 젓는 노잡이가 3단으로 배열된 이 3단노선은 당시 최고의 기술이 응집된 함선으로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육군에 의해 마침내 아테네가 점령되어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대함대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 폭이 좁은 살라미스 해협을 결전의 장소로 선택했다.

기원전 480년 9월 25일,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함대가 대치했다. 한동안 양쪽 함대 사이에는 숨막힐 듯한 긴장이 감돌았다. 팽팽한 긴장감을 먼저 깨뜨린 것은 그리스 쪽이었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장장 여덟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살라미스 해협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 서서히 바다 위로 어둠이 내릴 무렵 페르시아 함선은 200척이나 침몰했고 4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밤이 되자 페르시아 함대의 퇴각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고 후퇴하는 페르시아 함대를 해협 입구에서 기다리던 그리스 군대가 격파했다. 위풍당당했던 크세르크세스는 치를 떨면서도 뼈아픈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그 후 몇 차례 계속된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냈고 마침내 페르시아는 그리스 정복의 꿈을 접고 말았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아테네는 해상강국으로서의 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것은 물론 정치적·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성했다. 반면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로 페르시아는 쇠퇴 일로를 걷다가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로 비롯된 화려한 제국 페르시아의 멸망은 단순히 한 나라의 멸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를 주도하던 동방이 씁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을 상징했다.

살라미스 해전은 동양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와 서양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그중에서도 아테네의 싸움이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나라 간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두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막강한 힘과 권력을 앞세워 주변국들을 제압하던 페르시아가 이제 막 민주주의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그리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동방으로부터 불어오던 거센 회오리바람을 막아낸 그리스 덕분에 유럽대륙은 위협에서 벗어나 성장을 이루고 역사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또한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아테네를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킨 점은 의의가 매우 크다. 마라톤 전투만 하더라도 경제력을 갖춘 시민들만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적 발언권을 얻지 못했고 사회적 영향력도 매우 약했다. 하지만 살라미스 해전에는 경제력이 없는 가난한 하층민들도 참전했다. 그들은 전투에 승리해 당당히 조국을 지켜냈으며 경제력까지 보장받았다. 이로써 가난한 시민들도 제 권리를 행사하며 정치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에 한발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도시국가에서 성장한 민주주의는 2,400여 년을 이어 내려왔으며 현재 우리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고대 아테네의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로부터 아테네를 지켰던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가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지켜낸 그리스 문명은 이후 유렵 문화를 주도하며 오늘날 서양 문명의 모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고대 그리스는 서양인들에게 일종의 이상향처럼 여겨져 왔다. 세계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서양 문화에서 그리스는 인류 문화의 핵심이자 정신의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실제 그리스인들의 삶이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고 기록되었다는 점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기원이 바로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가 물리친 페르시아가 어떤 나라인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을 하나로 아우르는 위대한 제국이자 막강한 대군을 거느린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우쭐거림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으로 확대되었고, 서구 역사가들을 통해 신화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양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오리엔탈리즘(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경향)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살라미스 해전의 결과가 정반대였다면 어땠을까? 과장하면 지금의 서양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스가 페르시아황제 앞에 먼저 무릎을 꿇었다면 동방의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발판 삼아 유럽 대륙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아마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아름다운 동방의 여인들을 묘사한 작품들이 가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방과 동방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9.11 같은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 터닝포인트 10』(심현정 지음 / 느낌이있는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