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 아나운서 파워가 점점 힘을 더해가고 있다. 똑부러진 말솜씨와 반듯한 외모를 갖춘 아나운서는 연예인과는 또다른 선망의 대상. 과거 브라운관에서만 활약했던 그들이 자신의 감춰진 글솜씨를 책으로 펴내며 시청자가 아닌. 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말에 출간된 손미나 아나운서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웅진지식하우스)는 출간 2주만에 교보문고 종합31위(에세이분야 8위). 알라딘 종합32위(여행 에세이 분야 2위)에 오를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

잘나가던 아나운서. 그러나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로 지쳐있던 서른 무렵의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파울로 코엘료처럼 마음의 소리를 따라 과감히 스페인으로 떠나 1년동안 치열하게 공부하고 함께 웃고 울며 자연인 손미나로서 건강하게 살다왔다. 그 1년을 정리하며 이 책을 펴냈다. 손미나는 “파리행 비행기에서 만난 세네갈 흑인 신사의 순수한 호의. 클럽에 갔다 캐나다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받고 놀라 도망친 일. 비오는 날 투우경기를 구경하던 모습이 스페인 신문을 장식한 일 등 한국에서라면 겪지 못했을 경험들을 통해 내 내면을 마주하게 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스페인어문학 전공자답게 스페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깔끔하면서도 정감어린 글솜씨가 돋보인다.

프리랜서인 정지영 아나운서는 이보다 앞서 아나운서 파워를 입증했다. 그가 번역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원작·한국경제신문사)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4주째(8월2~8일) 1위를 차지하며 누적 판매부수 100만부를 넘겨 발매 9개월만에 밀리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성공에 대한 지혜로운 성찰을 우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이 책의 성공에는 정씨의 정갈한 글과 더불어 출판사측의 ‘번역자 마케팅’이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사인회 등때 여느 연예인보다 훨씬 더 인기 높았다”는게 서점 관계자의 귀띔.

또 오는 27일 웨딩마치를 울리는 ‘얼음공주’노현정 아나운서는 올초 ‘황금 유리창’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족과 우정. 사랑. 일에 대한 단상들을 묶어 스타덤에 오른 노 씨의 또다른 면모들을 엿보게 했다.

그런가하면 김지은 아나운서는 2년전 펴낸 미술서 ‘서늘한 미인’에서 자신이 만난 21명의 젊은 미술가들을 소개하며 미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안목을 뽐낸 바 있다. 또 월드컵 스타로 떠오른 김성주 아나운서는 ‘사과나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뒤 출연자들의 못다한 가슴뭉클한 사연을 담은 ‘내 인생의 사과나무’를 펴내 호평받았다. 김씨는 책벌레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아나운서들의 책은 내용과 더불어 요즘 책 성공의 중요한 요소인 마케팅에서도 유리하다는게 출판관계자들의 분석. 웅진지식하우스 문학출판팀 권은경씨는 “TV라는 사각 틀 안에 갇힌 ‘단정한 아나운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점이 인기와 공감을 얻는 것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