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카푸스 씨께

고독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그것을 그냥 즐기십시오. 고독이란 위대함을 향한 유일무이한,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오게 마련이지요. 고독이 자라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픕니다.

고요 속으로 들어가 당신 자신 속에 지니고 있는 세계를 찬찬히 생각해보고, 당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당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우위에 두십시오. 당신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당신이 혼신을 다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든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신을 당신이 이제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어린 시절을, 또 그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소박한 동경과 고요를 생각해보려는 순간이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하셨던가요? 그렇다면, 카푸스 씨. 당신이 정말 신을 잃어버린 것인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혹시 당신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도대체 언제 신을 믿었다는 말입니까? 어른들도 간신히 감당할 정도요, 늙은이들은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그 신을 혹시 어린아이가 가졌다고 믿으시는 건 아니겠지요? 만일에 그럴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과연 누가 그 신을 진실로 가졌다가 작은 돌멩이를 잃어버리듯 그렇게 간단히 잃어버릴 수가 있을는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신을 가졌던 자가 그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그러나 만약 당신의 어린 시절에도 신은 없었으며 그 전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고 인식하신다면, 그리고 무서운 일이지만 우리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신은 없다고 느끼신다면,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을 잃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과거를 애타게 찾으려 하십니까?

왜 당신은 그 신을 영원 앞에 서 있는 곧 나타나실 분으로, 미래에 계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분이야말로 나무의 마지막 열매이고, 우리는 그 나무의 잎사귀가 아닐는지요? 생성되고 있는 시간 속에서 탄생하는 신으로 미루어 놓고 당신의 삶을 그 위대한 잉태의 역사 속에 있는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날처럼 살아가지 못하도록 당신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 앞에는 그 어떤 저열한 것도 없고 그분은 단지 충만함과 넘쳐남 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포옹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신이 꼭 제일 나중에 오는 분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일어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시작을 의미하고, 또 그 시작은 그 자체로 언제나 아름다워서 그것은 신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다는 사실을 당신은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카푸스 씨, 당신의 생각대로 우리가 열망하는 그분이 만일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말았다면, 우리에게는 도대체 어떤 존재의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꿀벌들이 꿀을 모으듯 모든 것으로부터 가장 달콤한 것만을 모아서 신을 만듭니다. 우리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결핍’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모든 것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거부를 통해 삶에서 쫓겨남으로써, 잘만 하면 우리가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 빈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에 나오는 죄수들이, 그 무시무시한 감옥의 형태를 손으로 더듬으며 말할 수 없이 경악스러운 그들의 처지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그런 위험으로 가득한 확신이 훨씬 더 인간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그것이 미치는 범위 이상으로 넓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분 안에서, 그 아득한 신의 품에서 궁극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당신의 소망을 빼앗아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카푸스 씨, 어쩌면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그분께선 당신 삶의 이런 불안이 필요하실지도 모른다는 경건한 감정으로 오늘을 즐기십시오. 지금 당신이 처한 이 과도기의 나날들은 아마도 숨 막힐 듯한 동경으로 그분만을 생각하던 어린 시절처럼, 당신 내부의 모든 것이 그분만을 생각하고 있는 그런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불쾌한 감정은 떨쳐내고 참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분께서 만들어 가시는 일을 힘들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봄을 맞이하듯이 말입니다.

-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 소울메이트 / 156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