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순전한 사랑』에서 잔느 귀용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의지와 연합된 인간의 의지는, 혼을 하나님께 예속시키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자아의 뜻을 점차 버리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연합된 의지는 마침내 혼의 본성과 힘을 점차 없앱니다. 이것을 보통 혼적인 힘의 소멸이라 부릅니다. 그 힘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사랑이 가득 차고 불타오르는 만큼 혼은 우리에게서 소멸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자석과 같이 우리를 끄는 힘이 있다.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를 자신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신다. 그분이 우리를 끌어들이실 때 그분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부정한 불순물들은 여지없이 소멸된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심판, 무서운 하나님을 경험하기도 하며 우리의 영혼은 한없이 침체하고 메말라간다. 그것이 힘들어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잘 견디면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잔느 귀용이 수많은 기도 경험을 통해 깨달은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 노력의 조화다. 이에 대한 좋은 비유는 ‘아기와 엄마’의 비유이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엄마 품으로 들어간다. 젖이 필요한 것이다. 그 순간 엄마에게도 젖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엄마 품에 있는 아기는 드디어 입을 벌리고 젖을 빤다. 엄마 품에 안겼다고 젖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기가 입을 벌려 힘차게 젖을 빨아야 한다. 그러나 일단 아기가 젖을 빨면 젖은 절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 사실이 기도의 신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젖이 나오면 아기는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고 단지 흘러나오는 젖을 삼키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귀용이 우리에게 가르친 탁월한 기도의 진수다. 여기에 언제라도 아기에게 젖을 주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품에서 입술을 벌려 기도해야 하는 인간의 노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하나의 비유가 있다. 돛단배의 비유다. 강과 바다의 이미지는 귀용이 자주 사용하는 영적 이미지다. 배가 돛으로 가던 시절, 배는 노를 저어 강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것은 힘든 출발이지만 또한 희망의 출발이기도 했다. 좁은 강을 노 저어 나가면 바다가 나오고 사공은 그때부터 돛을 편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돛을 움직이고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나간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 비유를 통해 귀용이 말하고자 한 것은, 기도는 내면의 작은 갈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처음부터 망망대해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노를 젓지 않으면 망망대해도 없다. 그러나 일단 배가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르면 돛이 스스로 움직인다. 그때부터 배는 사공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사공이 바람에 자신을 잘 맡기는 한, 배는 곧 망망대해를 유유히 항해한다.

그러나 귀용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단지 준비 과정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기도 신비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다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그분과의 거룩한 연합에 맞지 않는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에고는 모든 불결함의 원인이며, 불결함은 정결하신 하나님과의 어떤 연합도 방해합니다. 불순물이 있는 금은 정제된 순금과 섞이지 않습니다. 이때 연금술사는 불순물이 섞여 있는 금을 불로 처리합니다. 오직 그 후에야 두 가지 금이 하나로 연합되고 섞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도구나 하나님과의 교제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한 ‘거룩’의 준비 과정이라면, 기도가 축복의 수단이 된 현대에 있어서 거룩을 위한 기도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그것은 또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한 기도의 정신과도 부합된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7:19).

기도의 사람 잔느 귀용, 그녀가 칠흑 같은 고난 속에서 깨닫고 발견한 깊은 기도로의 초청은 얕은 물가에서 서성대는 우리의 기도를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엇이 한 이름 없는 연약한 여인을 그토록 빛나는 보석 같은 믿음으로 연단했을까? 하나님과의 연합이 준 은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최고의 소원은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좁은 강물이 넓은 바다에 합쳐지듯, 부지깽이에 장작불이 붙듯이, 내가 그 안에 있고, 그가 내 안에 있음으로써, 나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세상으로 흘러가고 나를 통해 세상이 예수님께로 오는 은혜, 그 은혜의 근원을 우리는 사모해야 한다.

-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에서
(이윤재 지음 / 시냇가에심은나무 / 412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