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슈지 지음/예영준 옮김/사회평론/2004년 02월/254쪽/9,500원)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만 하던 친구를 만났다. IQ 165에 전국 모의고사에서 한 손가락 순위에 들만큼 공부 하나는 똑소리나게 잘했던 그 친구는 서울대 공과대에 차석으로 입학했고 아주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한국의 모 기업에서 연구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게 얼만데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정말 별 볼일 없단 말야."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능력에 비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일이다. 그 친구도 돈에 있어 큰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과 달성한 실적에 비해 보상이 형편없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근래 이공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에는 이공대 위기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동경대 공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현재 KAIST에서 근무하는 수석 연구원이 생활고 때문에 부인이 조촐하게 운영하는 식당에서 숯불도 굽고 손님 접대도 하면서, 장롱 위에 얹어둔 먼지가 뽀얗게 낀 박사학위증을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 사회가 위기감을 느껴야 할 대목이었다.

『좋아하는 일만 해라』(예영준 옮김)는 이러한 한국의 이공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반면교사로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바바라 대학 재료물성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나카무라 슈지는 세계 최초의 청색 발광 레이오드(LED) 제품을 발명하여 세계 학계로부터 "일본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청색 발광 레이오드를 비롯하여 청색 자외선 레이저 기술 등 그가 개발한 기술은 평판 모니터, 옥외 전광게시판, 휴대폰 백라이트, 교통신호등, 차세대 DVD 저장 기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꿈의 광원이다.

원래 그는 일본에서 비일류 대학을 나와 비일류 기업에서 20년 동안 "찬밥" 연구원으로 종사한 사람이었다. 1979년 비일류 기업인 니치아 화학공업에 입사한 그는 휴일도 없이 연구를 거듭하여 무려 30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급기야 1993년에 세계가 놀란 청색 발광 레이오드를 개발해냈다.

이 기술로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었던 니치아 화학공업은 연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일약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했다. 현재 니치아가 생산하는 제품은 전세계 휴대폰의 90%에 이용된다. 그러나 엄청난 업적에 비해 그가 받은 보상은 미미한 것이었다. 발명 특허의 대가로 받은 것은 과장 승진과 불과 2만 엔의 포상금이었다. 수없이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했던 그가 내린 결론은 일본을 떠나는 것.

"일본은 연구자의 의욕과 창의성을 샘솟게 만드는 곳이 아니다.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때도 나에게 돌아온 것은 별게 없었다. 일본식 평등주의 밑에선 연구자의 의욕이 살아날 수 없다."

연구원으로 묵묵히 일했던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그리고 산타바바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회사 퇴직 2년 뒤 발명 특허에 대한 대가로 니치아 화학을 상대로 200억 엔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1월 30일 도쿄 지방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정당한 자신의 업적에 대한 보상 측면도 있었지만, 일본에 있는 선후배나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겪은 기술 개발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일본 기업들의 집단주의 시스템, 연구 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일본과 똑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이공계 현실에 어떤 방안이 도입되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