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덩치 큰 흑인 하나가 활짝 웃으며 하라를 맞이했다. 티셔츠 위에 헐렁한 자켓을 걸치고 싸구려 시가를 입에 문 흑인은 하라보다 족히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찾는 아가씨 있어?”
“아가씨가 아니라 겐이치를 불러줘.”
하라가 신분증을 내보이자, 흑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사장은 지금 외출 중인데?”
“까불지 마. 인마.”
하라는 무대가 보이는 구석진 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무대 위에서는 나이 든 아저씨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 박자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었지만, 밴드나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필리핀 아가씨들은 박수를 치면서 아저씨를 응원했다.
필리핀 아가씨 하나가 다가와서 물었다.
“술?”
“아니. 콜라 한 병 줘.”
“콜라?”
아가씨가 의아해하는데, 역시 헐렁한 양복을 위아래로 빼입은 껄렁해 보이는 겐이치가 다가왔다. 남들이 야쿠자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까 봐 저러고 다니나 싶다. 붉은 양복 안에 받쳐 입은 꽃무늬 셔츠 위에서 금목걸이가 찰랑댔다.
“어서 오십시오. 하라 형사님. 경시청의 특별과 경부님께서 여기까지 직접 무슨 일이십니까?”
겐이치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눈썰미가 좋군. 한 번 마주치고도 용케 기억하네?”
“아, 하하하. 그거야 제 직업 아닙니까? 이 겐이치가 기억력 하나로 먹고삽니다. 여기 오는 모든 손님들을 전 한 번만 보면 기억합니다.”
하라는 겐이치를 앞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앉아. 난 손님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일로 왔으니까 그 기억력을 좀 살려봐야 할 거야.”
겐이치는 하라 앞에 앉으면서 여전히 싱글싱글 웃었지만, 눈에서는 경계심이 피어올랐다.
“보름 전 일이니까 기억하기 어렵지는 않아.”
하라는 사진 한 장을 꺼내서 겐이치 앞에 내밀었다. 겐이치가 사진을 집어 들고 들여다보았다. 사진에는 청년 몇 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일장기와 욱일승천기를 들고 확성기로 떠들어 대는 청년들 몇 명이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얘들이 뭡니까?”
“보름 전에 얘들 만났잖아?”
“만났죠. 그런데요? 만나서 무슨 불법적인 짓을 하지는 않았는데…… 얘들이 사고라도 쳤습니까?”
“죽은 놈들은 더 이상 사고 못 치지. 뭐 저승에서 시위나 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겐이치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보세요. 형사님.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난 그런 일에는 연루되지 않아요.”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뭐, 싸움질이라도 했겠죠. 얘들은 그냥 시위꾼들이에요. 나와 어떤 생산적이거나 영업적인 일을 하지는 않아요. 말하자면 잉여들이죠.”
“그러니까 저번 주 일요일 한낮에 오오쿠보 거리에서 혐한시위를 벌이도록 시킨 게 너야?”
“내가 그런 걸 왜 시키겠어요? 얘네들을 누가 움직이게 하는지는 쉽게 알 만하잖아요?”
“알지. 그렇지만 얘들에게 그런 짓까지 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야.”
겐이치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뚱하니 하라를 바라보았다. 하라는 다시 사진 몇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겐이치에게 내밀었다.
“어?”
겐이치는 눈을 크게 떴다. 사진 속에는 유리창이 깨어지고 붉은 스프레이칠이 간판에 마구 휘갈겨진 엉망진창의 식당 모습이었다.
“시위가 격해지고 이런 일이 일어났어. 한국 식당 여러 개가 피해를 입었지.”
“이게 죽은 이유라도 되나요? 이런 짓을 했으면 경찰에 잡혀갔겠죠.”
“잡혀 와서 벌금 물고 피해 보상하고 나갔지. 이틀 만에.”
하라의 설명에 겐이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죽었다면서요? 그럼 죽은 건……?”
“풀려난 날 밤에 다 같이 세상을 떠났지.”
“살해라도 당한 겁니까?”
“그래. 잔혹하게.”
“겨우 그런 일로?”
“그러니까 말이야.”
하라는 사진들을 도로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겐이치를 바라보았다.
“그게 이상해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이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정말 모르겠나?”
겐이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아는 게 없어요. 정말 아는 게 없어요.”

하라는 클럽을 나와서 록폰기의 밤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록폰기의 밤은 요지경 속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인생과 이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이 공존하는 거리.
소위 ‘록폰기갸루’라고 불리는 어린 여자애들이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떠들면서 지나갔다.
콜라를 시켜 놓고 그냥 온 게 기억났다. 어디서든 목을 축이고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나온 필리핀 클럽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다.
길을 건너 아이리스 호텔로 걸어갔다. 호텔 커피숍에서 냉커피라도 한 잔 마실 작정이다. 호텔의 회전문을 막 열고 들어서는데, 등 뒤에서 ‘쾅’ 하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뒤허리춤의 권총을 뽑아들면서 홱 돌아서는데, 보이는 것은 자욱한 먼지뿐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앞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방에 유리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유리파편의 한가운데에 아스팔트에 이마를 처박고 엎어진 한 사내를 보았다.
겐이치?
하라는 그게 겐이치라는 걸 알고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았다. 몸을 뒤집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수사에 있어서 금기사항이다.
축 늘어진 겐이치의 몸은 이미 목과 허리가 부러진 듯했다. 그리고 어느 뼈가 폐를 찔러서인지 모르지만, 피거품이 뭉클뭉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고개를 들어 클럽을 쳐다보았다. 클럽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클럽은 3 층이고, 3 층 유리창은 멀쩡했다. 겐이치가 떨어진 층은 6 층이었다. 6 층의 유리창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 보였다.
경찰들이 달려왔다. 하라는 신분증을 보이고 경찰들과 함께 건물로 달려 들어갔다. 6 층으로 달려 올라가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만일을 대비해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문을 발로 차서 연 다음, 총구를 앞세우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방 안은 어디서나 보기 쉬운 그저 그런 사무실이었다.
싸움의 흔적도 없고 인기척도 없었다. 어딘가에 사람이 숨을 만한 구석도 없었다. 다만, 카페트 한가운데에 선명하게 붉은 핏자국 몇 개가 아주 가깝게 꽃잎처럼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통째로 떨어져 나간 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경찰들에게 말했다.
“주변 봉쇄했죠?”
“예, 경부님. 수색도 시작했을 겁니다.”
“검시의 올 때까지 자리 비우지 말아요.”
하라는 다시 건물을 빠져나오다가 문득 놀랐다. 하필 자신이 겐이치를 만난 다음, 조금의 틈도 없이 겐이치가 살해당했다.
이게 뭐야. 날 미행한 거야? 하라는 아직도 들고 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등덜미에서 오싹하고 소름이 솟았다.
누구냐? 감히 이런 일을 벌이는 너는?
하라가 처음 이번 사건과 마주쳤을 때는 아주 단순하게 여겼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위나 하고 다니는 오타쿠 같은 녀석들이 제대로 사고를 쳐서 경찰서에 잡혀 왔다가 나가던 날 살해당했다.
처음 살해 현장을 신고 받고 달려갈 때만 해도 오오쿠보의 한인 상인들이 보복을 한 것인가 했다. 어쩌면 그 전에 시위를 했던 쇼칸도오리의 상인들 중 하나인 지도 모른다.
한인들과 부딪칠 때 우리 경시청으로서도 어느 정도 걱정은 했다. 자칫하면 야쿠자들의 싸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쿠자들은 결사의 자유가 없어지자, 우익들과 손을 잡았다. 야쿠자들은 간판을 내걸 수 없게 되었지만, 우익들과 손을 잡으면 위장된 단체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에 한인과 중국인 야쿠자들이 있다. 야쿠자단체들 안에는 많은 재일 조선인들이 존재한다. 다만, 민족적인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부딪치지 않았던 것은 야쿠자들의 철저하게 돈을 의해서만 움직이는 습성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과 연루가 되었으니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인들에게 꽃을 가져가서 꽃값을 받는 게 야쿠자다.
그게 사건의 실체라고 생각했다.
하라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사건 현장을 보고 알았다. 사건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서로 격투를 벌여서 난장판인 게 아니라, 사방에 피투성이의 손톱들이 흩어져 있고, 손톱이 빠진 상태의 시체들이 나란히 의자에 묶여 있는 기괴한 현장이었다.
결정적 사인은 질식. 잔인하게 철사줄이 목을 파고들게 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했다.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극악한 범죄 현장이다. 지독한 증오와 사디스틱한 잔인함에다가 무섭도록 치밀하다.
이건 절대 평범한 인간이 하는 짓이 아니다.



2.

가을비가 내렸다. 찬바람에 낙엽들이 힘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추우면 의욕이 솟는다. 재특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다케다는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싶기도 했지만, 주말이면 언제나 파티와 집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한낮에 시위가 계획되어 있다. 시위의 지휘는 천황수호대가 맡기로 했다.
천황수호대는 천황제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건 우익단체다. 조금 유치하고 웃기는 놈들이지만, 이런 시국에는 너무 요긴하게 쓰인다.
그런 단체의 간사를 맡게 되고는 주변 시선들이 이상해서 조금 낯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들의 시선에 위축되면 안 된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방송이고 신문지상이고 닥치는 대로 나가서 우리들의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비난이 거세지든, 국내의 시민단체들이 아우성을 치든, 눈 딱 감고 밀어붙여야 한다.
옳고 그른 건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는다. 서로 싸우면 만사 해결이다. 국민들 눈에는 싸우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키우는 단체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
우리가 해줄 일은 바로 그런 일이다. 우리도 이렇게 나와서 당당하게 주장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희들도 겁내지 말고 나와서 당당하게 외쳐라.
천황제가 옳고, 지난 역사는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외쳐라. 조선인들은 우리에게 지배당하는 바람에 지금의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었고, 우리는 조선에 다케시마를 준 적이 없다.
오늘은 시위 도중에 교과서를 불태우기로 했다.
성스러운 대동아전쟁을 비하하고, 위안부 문제 따위를 늘어놓는 교과서를 발간하는 게 말이 되는가.
군부대가 주둔하는 곳에 사창가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나? 외국 땅을 정벌하러 갔는데, 침략이라고 비하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왕들은 죄다 나라의 지경을 넓혔다. 그건 위대한 일이다. 그게 실패했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고 다시 도전해야 맞는 것이다. 다시 도전하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저녁에는 파티가 있다. 기업인들에게 후원금을 얻기 위한 파티다.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우리의 동지들이 포진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과 인맥이 필요하다.
특히 시위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단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대부분이 히키코모리 수준이어서 생활에 보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후원을 받아야만 한다.

파티는 뉴오타니 호텔의 일본식 정원을 통째로 빌려서 열렸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애국지사들 중에서도 재계의 거물들이 모여들었고, 기업가들과 고위층 관료들 외에 정치가들도 많이 참석했다.
파티에 참석한 동지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몇 가지 복잡한 문제도 있었지만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태도들이었다.
특히 가장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견되었던 맥주 회사 사장의 발언은 모두를 의기양양하게 했다.
“일부 조센징들이 우리 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지만, 그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서울의 강남에서는 우리 생맥주를 캔에 담지 않고 통째로 수입해서 파는 생맥주집들이 고가에도 불구하고 연일 만원사례라고 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뿐 아니라 작년 한 해 동안에 우리 맥주 공장을 견학하러 다녀간 조센징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각 지역마다 수만 명이에요, 수만 명. 그러니까 저희 회사를 걱정해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와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에 질세라 이번에는 학계의 원로학자가 나섰다.
“그뿐 아닙니다. 조센징들 중에서 뛰어난 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교과서를 바꾸고 역사인식을 바꾸려고 방송에까지 나가서 우리들이 원하는 바를 피력해주고 있습니다.”
오오. 모두들 웅성거렸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학자들이 나서주는 건 그야말로 천군만마나 같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바로 조센징들은 우리가 다시 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현재 조센징 학자들 중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학자들은 모두 우리들 편입니다. 간혹 반일감정을 가진 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작자들은 현 정부에서는 자리 보전하기도 힘들어서 먹고살기에 급급하지요. 아주 울상들입니다.”
와하하하. 폭소가 터졌다.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동지들 모두가 한껏 고조된 분위기였다. 평화헌법이 바뀌고, 얼마든지 군대를 해외로 진출하게 만든 공로로 정치가들은 동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비록 밑바닥을 상대하고 있는 다케다이지만, 역시 동지들에게 많은 칭송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음지에서 일해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오늘 소생이 맡고 있는 천황수호대에서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엉터리 교과서를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시행했습니다. 덕분에 몇 명이 경찰서에 가 있지만 소생과 함께하는 젊은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박수를 받고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 일로 칭송을 받는 건 원치 않았다. 이런 따위는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다. 다케다는 자신이 하는 가장 큰 일은 한국에 있는 동조세력과의 연계라고 자부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서 파티장을 나섰다. 오늘은 기분 좋게 푹 잘 작정이다.



3.

목이 말랐다. 들떠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너무 마신 듯하다. 어떻게 서재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침실로 가지 않고 이 층의 서재로 온 것은 아내가 코 고는 소리에 깰까 걱정해서였을 것이다. 술에 취하면 심하게 코를 곤다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다케다는 서재의 침대에서 몸을 돌려 물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침대 머리맡의 불이 켜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전등이 고장이라도 났나?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베란다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달빛에 의해서 비치는 베란다 쪽 유리창에 담배 불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담배 냄새도 나는 것 같다.
홱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라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어둠 속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자신의 서재 책상머리에 누군가가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뭐, 뭐야?”
쉿. 상대는 담배를 피우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담배를 든 반대편 쪽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누, 누구냐?”
다케다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조용히 하라니까.”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건장하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것 같았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고 검은 티셔츠를 받쳐 입은 위로 반듯하고 잘 깎인 턱선이 담배불빛에 의해 드러났다.
“총 든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야.”
낮고 조용하지만 어딘가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음성으로 사내는 말했다.
“모, 목적이 뭐요?”
“모두들 같은 걸 묻는군.”
모두들? 다케다는 밤중에 총을 들고 들어온 사내를 만난 게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혹시 당신……”
죽은 놈들이 생각났다. 다른 문제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죽은 애들 손톱이 많이 빠져 있던 걸 알고 있었나?”
그랬다. 한 달이나 지난 일이어서 한동안 시끄럽다가 잊혀 가는 일이다. 동지들도 처음에는 혹시나 했다가, 더 이상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친삐라들 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돌렸다. 야쿠자들의 심부름이나 하고 사는 친삐라들은 결국 내분으로 많이들 죽으니까.
그런데 이 사내는 누구인가?
겁을 내지는 않았다. 이 정도 일로 겁을 낼 다케다는 아니다. 상대의 태도로 보아 막무가내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아마추어도 아니다. 자위대에서 잔뼈가 굵은 다케다는 침착하게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들을 당신이 죽였소?”
다케다가 묻자 사내가 싱긋 웃었다. 아니. 웃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담배를 빨아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딸깍. 책상 위의 스탠드에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다케다는 무언가 확실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온몸에서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이런 상대는 위험하다.
사내의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까만 눈동자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손톱이 빠진 시체로 발견되는 건 수치스러운 일 아닌가?”
다케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집 전체를 제어하고 있던 보안경보기도 울리지 않았고 집 안의 누구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상대는 양복을 입고 태연히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이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까지 피우면서.
“게다가 떠들썩하게 되면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잠에서 깨어나면 나도 어쩔 수가 없게 되지.”
“원하는 게 뭐요?”
“사람을 하나 찾고 있네. 자네도 아는 사람이야. 자네 친구들이 보호하고 있다고 들었어.”
사내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누구 말이오?”
“김중식.”
다케다는 흠칫 놀랐다. 그러나 사내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끄면서 나직이 말했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모른다고 하면 안 돼.”
총구가 다케다를 향했다.
“날 실망시키지 마.”
다케다는 절망했다. 총구에 소음기가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총소리가 나지 않으니 상대는 안심하고 총을 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가 프로라는 점이다.
아무나 소음총을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