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에 눈이 내리는 풍경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기인데도 밤이 깊어지면서 눈이 내리는 탓에 거리는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게다가 차들이 다니기도 힘든 거리로 젊은이들이 왕창 몰려나왔다. 눈이 오면 행운이라고들 떠들어대면서 쌍쌍이 팔짱을 끼고 나오거나, 쌍쌍이 되고 싶어서 나오는 인파로 시내는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해운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달맞이고개 위로 차를 몰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일대는 난리가 났다. 왜냐하면 폴리스 라인으로 인해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교통경찰들이 차들을 돌려보내느라 정신없는 길가에 서서 공반장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과학수사반에서 시신들을 다 검시하고 앰뷸런스에 싣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남대운 형사가 길 건너에서 바쁘게 달려왔다.
“죽은 두 사람 중 하나가 차량 운전자 아닐까요?”
“차적 조회 해봤어?”
“도난차량 같습니다. 이 봉고차 소유주는 해외에 나가 있어요.”
“죽은 사람들 신원은?”
“둘 다 신분증이 없으니까 지문조회 해봐야 알겠죠. 그래도 하나는 알겠던데…”
“누구?”
“하나는 신부두파 조직원인데요? 하나는 모르겠어요. 전기태라고, 얼굴은 안 알려졌는데, 조직원인 건 맞아요. 내가 얼굴을 알거든요.”
“둘이 서로 싸운 건 아니잖냐?”
“아니죠. 둘 다 정확하게 심장에 칼이 꽂혔는데… 이 정도면 완전 선수죠.”
공반장은 담배를 구둣발로 비벼 껐다.
“목격자들 진술 상세하게 받아두라고 해라.”
대운이 놀라서 담배꽁초를 주워 들었다.
“사건 현장에 버리시면 어떡해요?”
“지랄. 내 알리바이 대주랴?”
공반장은 숲으로 들어갔다. 숲 안은 싸운 흔적조차 없다. 어둡고 눈이 내려서 사건 현장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면 보존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중에 더 나올 증거도 없게 된다.
대운이 뒤에서 말했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있기는 한데, 눈이 내리기 직전의 발자국들이에요. 눈 속에 있죠. 그러니까 함부로 밟지 마세요.”
공반장이 남형사를 돌아보았다.
“발자국으로 범인 특정 못한다에 내 핸드폰이랑 권총, 둘 다 건다.”
“예?”
“이 길이 인마, 하루에도 수백 명이 뛰는 길이야.”
“이 한겨울에요?”
“한겨울에도 해지기 전에는 무수히 뛴다. 내가 이 동네 사는 거 잊었냐?”
“그래도 현장 주변에 어지럽게 여러 번 오간 흔적이 있으면 특정해봐야죠.”
“이 벤치가 뛰던 인간들 와서 쉬는 벤치다. 당장 내 발자국도 나오겠다.”
대운은 미련이 남았는지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젊은 형사들은 과학적인 수사를 믿는다. 그러나 공반장은 언제나 직감을 믿었다.
“그냥 선수가 아냐. 살인범은 전문가야. 그러니까 이 죽은 놈들 발자국 외에는 특정할 게 없어. 전문가가 자기 발자국 제대로 남길 리가 없으니까.”
“범인은 조폭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전혀 아니지. 심장에 칼이 그렇게 쉽게 들어가는 줄 알아?”
공반장이 자기 가슴을 만지면서 말했다.
“넌 갈비뼈 없냐?”
대운이 얼결에 공반장처럼 자기 가슴을 만졌다.
“아까 목격자가 그랬지? 여기 숲 방향으로 길을 건너다가 쓰러졌다고.”
“예. 그랬죠.”
“그럼 칼을 던진 거잖아?”
“그, 그러네요.”
“힘으로 맞잡고 찌른 것도 아니고 던졌는데, 그 칼이 옆으로 뉘어서 늑골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심장에 꽂혔어. 가능해?”
“설마 그렇게 했을까요?”
“그렇게 했잖아. 보고도 못 믿어?”
대운은 생각이 얽힌 표정이다. 공반장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칼은 손잡이부터 칼끝까지가 강철로만 된 일체형이야. 즉, 파는 칼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말이야.”
대운은 멀거니 공반장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진짜 영화 속 킬러라도 등장한 건가?
“철수하자. 전담반 가동하라고 지시 내려올 거다.”
“아, 예.”
공반장이 길 건너에서 서성이는 형사들을 바라보았다.
“쟤들은 뭐하고 있냐?”
“차가 막혀서 철수를 못하고 있는 거죠.”
“모자란 놈들.”
공반장은 혀를 찼다.
“반장님 차는요?”
“택시 탔지. 인마, 내가 바보냐?”
“아, 예에…”
공반장이 대운을 돌아보았다.
“넌?”
대운이 애매한 표정으로 길 건너를 바라보았다. 대운의 차도 부근의 수많은 차들처럼 덩그러니 갇혀서 눈을 맞고 있었다.



2.

아침 일찍 수사반이 꾸려졌다. 해운대경찰서에 차렸지만, 오두진 검사의 지휘 지침에 따라 부산시경의 조직폭력전담반에서 공필우 반장과 남대운 형사가 파견되었다. 해운대경찰서에서는 과학수사팀장 김영란 경위와 검시의 조성산 박사가 합류했다.

부검이 시작되었다. 조박사는 시신들의 지문을 떠서 감식반으로 보내고 흉기를 빼낸 다음, 먼저 기태의 시신으로 갔다. 그리고 가슴의 옆에서 심장 부위를 T자로 갈라서 들춰냈다.
“대박인데?”
조박사가 공반장을 돌아보며 심장을 드러나게 해보였다. 대운과 영란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공반장은 베테랑답게 태연했다.
“뭐가?”
“보통 칼잡이들은 심장을 노리지 않아. 경동맥만 잘라도 죽으니까.”
“그런데?”
“봐. 심장을 찔렀어. 칼이 눕혀져 들어와서 심장을 정확하게 찔렀다는 말이야.”
“던진 거 맞아?”
“던졌어. 확실해. 일시에 똑바로 들어간 걸로 보아서는 힘을 주고 찌른 게 아니야. 이렇게 날이 얇은 칼은 힘을 주면 휘어져버려. 게다가 손잡이가 없잖아.”
조박사의 말대로 범행에 사용된 칼은 날이 얇고 나뭇잎처럼 앞부분이 넓었는데, 그에 비해서 손잡이 부분은 동그랗고 작았다. 이래서는 손에 잡고 힘을 주어서 찌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게 죽이지?”
칼을 던지는 부류의 칼잡이들은 대부분이 눈이나 목줄을 노린다. 늑골 사이로 던져서 흉곽을 뚫고 들어가서 심장을 멈추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게 말이야. 진짜 전문가여야만 아는 건데…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유추는 해볼 수 있지. 경동맥을 자르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와. 주변이 온통 피바다가 되지. 과다출혈로 즉사하기는 하지만 난장판이 된다고 보아야지. 그런데 심장에 콱 박으면 오히려 출혈이 일어나지 않아. 대신 그 충격으로 심장이 일시간 멈추면서 죽어. 그러니까 사인이 심장마비겠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공반장의 물음에 조박사가 다시 바깥쪽의 자상을 보여주었다.
“잘 봐. 옆으로 길게 찢어졌지? 단번에 찢으면서 들어가서 심장에 콱 틀어박혔다니까?”
영란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가능해요?”
“칼끝이 무거우면 가능은 하지만, 이 정도로 정확하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걸?”
대운도 옆에서 거들었다.
“목격자들 진술하고 일치합니다. 봉고차 쪽에서 걸어가다가 그냥 풀썩 옆으로 무너지듯이 쓰러졌는데, 피가 흘러나오지 않아서 가까이 가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제야 가슴에 칼이 꽂힌 걸 보았답니다.”
영란이 물었다.
“봉고차에서 내린 건가요?”
“아니. 봉고차에서 내린 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봉고차는 그 직전부터 그냥 혼자 운전자도 없이 세워져 있었답니다. 두 번째 목격자가 바로 그 뒷차의 운전자였습니다. 봉고차가 길을 막고 있어서 가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공반장이 다른 한 시신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심장 부위를 들췄다.
“똑같은데? 다만 이쪽은 심방을 정확하게 찌르지는 못했는데?”
공반장은 상처 부위를 들여다보았다. 조박사가 혀를 내둘렀다.
“약간 눕혀져서 들어갔어. 그런데도 결국은 판막을 뚫고 심장에 도달했구만. 대단하다. 대단해.”
대운이 황당한 표정으로 뽑아놓은 칼을 돌아보았다.
“이거야 원, 무협지도 아니고.”
조박사가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건 더 보나마나야. 지문이나 확인해서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해보자고.”

한 사람의 지문은 전과조회에서 바로 나왔다. 신부두파의 전기태.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전과기록이 없었다. 그래도 신원은 파악할 수 있었다.
“환장하겠네.”
오석한. 이게 누구인지를 아무도 몰랐지만, 공반장만은 알고 있었다.
“아는 인물입니까?”
“레스토랑 사장이다.”
“예?”
“이 자식이 결국 우리 손에 안 잡히고 엉뚱한 놈한테 잡혔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대운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물었지만, 공반장은 소파로 가 앉아서 잠시 말이 없었다. 영란과 다른 형사들도 궁금해서 공반장의 입만 바라보았다.
공반장이 담배를 피워 물더니 헛웃음처럼 말했다.
“저놈이 바로 그 유명한 범칼이다.”
“어?”
모두가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나 유명하지만, 누구도 얼굴을 모른다던 바로 그 범칼이라는 말인가. 철딱서니 없는 일진 애들까지도 동경하던, 소문만 무성해서 아무 사건이나 범인을 모르면 범칼이 해치웠다고 떠들었다.
“내가 저놈 잡으려고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런데 무슨 증거가 있어야지.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고, 알리바이도 딱 맞고…”
공반장이 담배를 내뿜으면서 웃었다.
“허허. 저놈 잡아넣으려고 무리하다가 내가 징계까지 먹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저놈이 우리나라 최고의 칼잡이라는 거야.”
“누가 본 적도 없잖아요?”
“저놈이라니까? 그리고 저놈한테 당한 놈들도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놈들인데, 전부 저놈 칼에 경동맥 잘려서 세상 떴어. 이건 내가 보증한다. 내 형사 생활 30 년을 걸고.”
다들 황당한 얼굴이 되어서 공반장과 모니터에 떠있는 범칼을 번갈아 보았다.
“근데… 대단하지 않냐? 범칼을 칼로 죽였어.”
거기까지 말하던 공반장이 벌떡 일어났다.
“사건 현장 어디까지 수색한 거냐?”
“그 일대 다 했죠.”
“그런데 나온 거 없냐?”
“뭐가 나와요? 발자국도 소용없다면서요?”
“범칼이 던진 칼.”
“예?”
다들 영문을 몰라서 공반장을 바라보았다.
“멀리 나가서 산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찾아야지.”
공반장이 서둘러 일어나면서 등산용 덕다운을 입었다.
“그걸 찾으면 저놈이 범칼이라는 증거가 되는 거야.”

점심을 먹고 나서, 수색이 다시 재개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산 아래쪽에서 범칼의 것으로 보이는 칼 한 자루가 나타났다. 칼은 나무에 튕겨졌는지 심하게 흔적이 남은 채였다.
“오검사님한테 연락해서 신부두파 두목 장철희 출국금지 요청해달라고 해.”
영란이 급하게 전화를 했다. 오두진 검사로부터 출국금지 신청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신변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 같이 장철희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다시 걸려온 오두진 검사의 전화는 모두를 맥 빠지게 했다.
“장철희. 오늘 아침 8 시 30 분 비행기로 출국했어요. 삿포로행 비행기 탔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회의 겸, 회식 겸 해서 오두진 검사와 수사팀 일행이 모두 횟집에 모여 앉았다. 두진은 장철희를 놓쳤지만, 범인은 장철희가 아니니까 힘을 내자고 했다. 그는 강력부에서 잔뼈가 굵은 검사답게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내 나이 사십이 넘도록 평검사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봐주라는 놈 안 봐주고, 안팎으로 가리지 않고 잡아 처넣어서 그렇습니다.”
그건 말 안 해도 다들 아는 이야기다. 사건만 맡았다 하면 끝을 보는 데다가 성역이 없는 검사여서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원한이 쌓인 강력통 검사다. 대신 진급은 힘들다.
“일단 사건 현장에 그들이 왜 갔는지를 알아야 하니까 그 부분에 수사를 집중하지요. 그리고 병행해서 사건 현장 부근을 샅샅이 탐문해봅시다. 그 부근에서 무언가 얻어걸리는 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이건 우리 검찰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범죄자나 야쿠자들에 대해서 캐보겠습니다. 혹시 그 가운데에서 걸려들 수도 있으니까요.”
영란이 물었다.
“그런데… 매스컴이 좀 이상해요.”
“매스컴 말입니까?”
“예. 이상하잖아요? 이런 큰 사건에 대해서 왜 단막 처리하고 말지요? 다른 때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취재하고 분석하고…”
두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시국이 안 좋으니까 자제하라고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답니다.”
“시국이요?”
“그랬다는군요. 덕분에 부산 바닥에는 이번 사건이 범칼이 한 짓이라고 떠돈다더군요.”
두진이 싱긋 웃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시다. 매스컴이 떠들기 시작하면 튀어버릴 테니까. 조용히 조용히 조여서 잡아냅시다.”
“검사님께서는 이번 사건처럼 특별한 전문가를 상대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대운이 묻자, 두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도 처음일세. 이 정도 프로페셔널한 범인은 외국에 연수 나가서 자료로만 보았어. 그러니까 나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사실 모르겠다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
말끝에 공반장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우리 팀에 베테랑이 계시지 않나?”
“검찰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공반장이 두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두진이 잔을 들면서 말했다.
“신부두파만 건드리면 어디선가 압력이 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용하네요. 뭐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없지 않지만, 그 전에 잡아버립시다.”
두진은 말끝에 건배를 제안했다.
“오케이? 자, 그런 뜻에서 건배!”
그러나 다들 건배를 하면서도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상대일 가능성이 많아서였다. 쉽게 잡지 못할 것만 같은 예감. 어딘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고, 장기화되어서 초라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좌중을 지배했다.
그 분위기만은 두진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3.

최의원은 퇴근해서 집으로 가지 않고 평소에 혼자 잘 가는 강남의 시가바로 가서 독립된 룸에 틀어박혀 버렸다. 맡겨놓았던 시바스리갈을 가져다가 시가를 안주 삼아 마시면서 분을 삼켰다.
빌어먹을. 오늘은 정말 일 년 같은 하루를 보냈다. 제대로 하는 놈들이라고 믿었는데, 일이 더 틀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를 믿고 전화를 한 놈인데, 제거하려고 했다가 놓치고 말았다. 겁에 질려서든, 배신감을 느껴서든 이제 두 번 다시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허튼 수작은 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어리석은 놈은 아니다. 우리를 망가뜨리겠다고 달려들면 자기가 더 망가진다는 걸 충분히 알 만한 놈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싸움도 할 줄 모르고, 그저 돈만 아는 머리 좋은 사기꾼에 불과한 놈이 어떻게 해서 선수 둘을 죽이고 사라졌느냐는 말이다.
누군가 있다. 그게 결론이다. 누군가가 김중식을 보호하고 있다. 그게 누구냐. 만일 그게 야당이나, 재야의 어느 쪽에서 구한 선수라면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아직 다행인 것은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 경찰이나 검찰은 모르고 있다. 눈치를 보니, 야당 떨거지들도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아주 짧게나마 시간을 벌었다. 이 시간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아니면 세상이 뒤집힌다.
문득 시계를 보았다. 일본에서 전화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 어김없이 평소에 하나 장만해서 가지고 있던 선불폰이 울렸다.
“나다.”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아침에 일본으로 달아난 장철희였다. 무조건 제일 빠른 비행기로 가다 보니 삿포로로 갔지만, 지금쯤은 도쿄로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무사히 왔습니다.”
“너만 무사하면 다냐?”
“죄송합니다.”
“거기 사람들 만났어?”
“예. 방금 만나고 호텔로 가는 길입니다.”
“뭐래? 왜 그런 짓을 했대?”
“여기서도 원인을 모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다케다상이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다케다가?”
“예. 뒤늦게 알고 수습하려 했지만, 다케다상이 없어지는 바람에 여기도 난리가 아닙니다.”
“다케다가 일을 저지르고 사라졌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다케다가 관리를 맡고 있어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상황은 전했나?”
“예. 충분히 이해하고 어제 사건으로 인해서 여기 사람들도 대책회의를 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숨어있어.”
“네. 걱정 마십시오.”
“거기서라도 잘 하자. 지금 다 뒤집어지게 생겼다.”
“죄송합니다. 김중식 옆에 범칼이 당할 정도로 전문가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도 몰랐지. 여하튼 다시 심기일전해야지.”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생각 같아서는 욕지거리가 나가도 열 두 번은 나갔을 테지만, 자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참았다.
그래도 이번 일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제거해야 할 놈이다. 일본에 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지금 김중식이 아주 좋은 교훈이 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지금 당장은 깡패 새끼들이 필요하지.
그나저나 누구일까. 김중식을 보호하고 있는 놈. 프로페셔널이다, 이거지. 그래, 곧 누군지 알게 되겠지. 아무리 잘나도 조직을 이기는 법은 없어. 깡패 새끼들 몇 해치우고 잘난 체하다가 큰일 나지.
최의원은 얼음을 채운 술잔을 흔들면서 무서운 눈초리가 되어 중얼거렸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조직은 싸구려 깡패 나부랭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