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프리드먼은 일찍이 그의 명저 『세계는 평평하다』를 통해 세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평평해지고 있음을 역설한 바 있다. 2000년 이후 우리는 세계화 3.0 시대를 살고 있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 출현,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공급사슬, 인포밍 등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10가지 동력들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작은 세계는 더욱 작아지고 있고 게임의 무대는 더욱 평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 평평해진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만 생존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홍콩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인 리앤펑 그룹의 회장인 빅터 펑과 워튼 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인 요람 제리 윈드가 공동으로 저술한 『평평한 세상에서의 경쟁전략』은 오늘날처럼 평평해진 세상에서 기업간의 경쟁은 단순히 기업 대 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기업과 관련된 공급업자들을 포함하는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의 경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공급업자들을 포함하는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고 관리하는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네트워크의 편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리앤펑 그룹의 면모를 살펴보자.

100년을 넘는 기업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리앤펑 그룹은 청나라 때인 1906년 광저우에서 무역중개회사로 출발하여 홍콩에 기반을 둔 수출기업을 거쳐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리앤펑 그룹은 2006년 87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세계 40개국에 걸쳐 2만 4,0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하나의 공장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리앤펑 그룹은 40 개 이상의 국가에서 8,300개 이상의 공급업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편성해 대량 소비재들의 공급사슬을 관리함으로써 ‘적절한 제품이 적절한 가격으로 적절한 시기에 고객이 요구하는 곳에 도착될 수 있도록 지휘한다. 리앤펑 그룹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스스로를 혁신하여 평평한 세상에서 네트워크 편성자라는 새로운 역할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의 기업들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했고 이 모든 것들이 수직적 통합을 이루고 철저한 내부통제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직적 통합과 내부통제로는 평평한 세상에서 급변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평평한 세상은 기업의 지붕을 벗겨버렸고, 전통적인 국가와 조직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렸다. 이제 기업들은 공급사슬을 분해하여 세상 어디서든 펼칠 수 있다. 따라서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협력 파트너들을 토대로 전체 공급사슬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며 그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네트워크의 편성이 요구된다. 일례로 보잉의 777 제트기는 세계 17개국에 있는 900개 이상의 공급업자들로부터 제공받은 300만 개의 부품으로 조립된다. 이처럼 공급사슬의 프로세스를 분해하여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들에 맡긴 후 세상에 퍼져 있는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것이 바로 ‘프로세스 편성(process orchestration)’이다.

네트워크의 편성자로서 리앤펑 그룹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여 창의적으로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공급사슬을 결정하고 필요한 프로세스들로 나누고 특정한 공급업자를 선택함으로써 고객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지휘한다. 또한 네트워크가 서로의 공생 관계임을 인식하고 공급업자를 쥐어짜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창출된 가치를 구성원들이 어떻게 공유할지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네트워크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의 경쟁에서 다른 네트워크에 의해 압도당할 경우 네트워크의 구성원들 모두 어려움에 직면하고 만다. 따라서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의 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 공급업체를 진정한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고 네트워크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리앤펑 그룹의 혁신적인 경쟁전략은 아직도 과거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평평한 세상에서의 경쟁전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