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鄭和, 1371~1433)는 중국 남쪽에 있는 윈난성의 이슬람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명나라의 연왕은 원나라의 세력이 남아 있던 정화의 고향을 점령하면서 성인 남성은 모두 학살해버리고 어린 소년들은 거세시켰다. 당시 열두 살이던 정화도 거세를 당했지만 연왕에게 충성을 다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연왕은 훗날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를 내쫓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 영락제永樂帝이다. 연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정화는 내관태감이 되었고 ‘정’이라는 성도 하사 받았다. 그런데 영락제는 1405년 정화에게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지시를 내린다. 거대한 규모의 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에서 인도와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는 원정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장대한 키에 위엄이 넘치는 태도, 우렁찬 목소리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소유자였던 정화는 학식과 병법에 뛰어난 것은 물론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해서 황제의 대임을 맡을 만한 적임자였다. 정화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황제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1405년 7월 11일 대원정의 닻을 올린 뒤 1433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대양을 누볐다. 동남아시아의 참파에서 믈라카, 인도, 스리랑카, 페르시아, 아라비아의 아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와 케냐의 몸바사까지 명의 깃발을 단 거대한 배들이 오고 갔다.

정화의 함대는 8천 톤쯤 되는 대선박이 중심이 되어 60여 척의 대형 함선에 100척 정도의 소선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함대의 중심을 이루는 기함旗艦은 보선寶船으로 불렸는데 세상의 여러 지배자들에게 전하는 황제의 하사품과 또 그들이 황제에게 바치는 예물, 즉 보물을 운반하는 배라는 뜻이다. 최대의 보선은 길이 150미터, 폭이 60미터로, 1800년대 이전에 영국 해군이 보유했던 가장 큰 배보다 3배 이상 큰 배였다. 정화의 선단은 인도양 연안의 수많은 나라들은 물론 멀리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왕래했다. 2만~3만 명의 인원을 통솔하여 18만5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항해한 이 원정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해상 사업이었다.

1421년 정월 초하루 영락제는 자금성紫禁城 낙성식을 거행했다. 낙성식이 있고 난 뒤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그 규모와 풍성함은 중국이 문명세계의 정점에 있음을 알리고도 남았다. 그에 비하면 유럽은 유치하며 아직 미개했다. 헨리 5세가 런던에서 발루와 왕가의 카트린과 결혼식을 올린 것은 자금성 낙성식이 있고 나서 딱 3주 뒤였다. 베이징을 방문한 2만6천명의 내빈들은 열 가지 음식이 번갈아 나오는 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헨리의 결혼식에 참석한 내빈은 고작 600명이었고, 그들이 대접받은 요리는 소금에 절인 건대구였으며 그것을 담아 내온 그릇은 둥글게 자른, 마른 빵조각이었다. 결혼식에서 카트린은 여성용 속옷도, 스타킹도 걸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영락제의 애첩은 최고급 비단옷을 걸치고 다녔으며 페르시아의 홍옥수紅玉髓, 스리랑카의 루비, 인도의 다이아몬드 등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영락제가 막대한 비용과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원정대를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와 관련한 주장 하나가 건문제를 잡기 위해서 함대가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영락제는 조카인 건문제를 축출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 과정에서 건문제가 바다 멀리 외국으로 피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화의 원정대는 바로 건문제를 사로잡기 위해서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이국의 진귀한 물건을 좋아한 영락제의 개인적인 취향이 일으킨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해외무역을 통해 이익을 남기려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함대를 꾸리기 위해 들어간 막대한 경비에 비하면 원정을 통해 얻은 이익은 오히려 사소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전통적인 중국의 대외 정책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는 견해가 있다. 세계의 대양을 항해하며 외국의 지배자들에게 명나라와 황제의 위엄과 덕을 알리고 전 세계가 중국에 조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화 원정대의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화 원정대는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서양의 탐험대가 신대륙 등에서 보인 것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바다 건너 새로운 땅으로 간 서양인들은 심지어는 자신들을 환영하는 원주민을 죽이고 정복하고 분열시키며 노예로 삼고 그 땅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정화의 함대도 적대적인 세력과는 전투를 벌여서 그들을 정복한 적이 있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 갈등하는 세력들을 화해시키고 조공을 받는가 하면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의 종교나 사상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424년 영락제의 뒤를 이은 홍희제는 국력을 낭비하는 사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외 원정 사업을 중단했다. 홍희제를 이은 선덕제는 힘들게 일으킨 해군력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430년에 정화의 7차 원정을 지시했지만 그것이 마지막 원정이 되었다. 1433년 정화는 페르시아 만 입구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함대는 그의 시신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와 다시는 중국을 떠나지 못했다. 중국은 명을 일으킨 태조 주원장의 정책대로 외국과의 교역을 통제하고, 중국의 배가 항구를 드나드는 일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정책과 고립주의 정책으로 돌아갔다. 정화 원정의 기록은 폐기되었고 보선도 해체되었다. 선원들의 신분은 건축 노동자나 일반 군인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당시 물리적인 조건만을 따진다면 신대륙 발견이나 해외 팽창의 가능성은 중국 쪽에 훨씬 유리했다. 중국은 원양 항해를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유례가 없는 고립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해외로 향하던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십 년 후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되는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항해 사업과 해외 팽창은 서구의 몫이 되었다.

『첫 생각』 중에서
(홍석봉 지음 / 신인문사 / 336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