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왜 이토록 불안정한가? 평화로운 시기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아주 짧은 시절에 불과하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비극이다. 인류 역사상 발생했던 1만 5천여 차례의 전쟁을 그 원인의 심층적인 구조나 배경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자.

1. 살육 전쟁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다보니 사람들은 음란, 격투, 살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배부르게 먹고 근육이 발달하니 남자들의 손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든 상대를 잡아 싸우고 싶어진 것이다. 본질상 이는 동물의 순수한 본능이다. 우리는 이런 유의 전쟁을 ‘살육 전쟁’이라고 한다. 원시 촌락 간의 학살은 어떠한 경제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 지역 패권 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피를 보고 흥분하고 짜릿함을 느꼈을 뿐이다. 남성 호르몬에 의한 원시적 공격성이 ‘살육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살육 전쟁’은 인류의 언어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영원히 생생하게 기억될 것이다. 이란-이라크 전쟁과 1991년의 걸프전 역시 이러한 유형이다. 지뢰 50만 개, 순항 미사일, 전투기 수천대가 발달한 근육을 대신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근육이 두뇌로 대체되었다. 현대의 전쟁은 더 이상 근육전이 아닌 두뇌전이다. 그러나 전쟁 배후의 생물학적 바탕이 남성 호르몬이며 ‘살육 전쟁’이 인류전쟁의 시초이자 기본 모델이라는 근본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전쟁이든 많게 혹은 적게 ‘살육 전쟁’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2. 복수형 전쟁
살육 전쟁과 복수형 전쟁이 힘을 합친다면 그 공격성과 흉악성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류의 감정 중에서 복수는 심층적 심리 구조에 속한다. 동물의 세계에도 복수는 있지만 인류의 복수 심리에 견줄 수는 없다. 역사를 보면 독일, 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의 관계는 복수의 분노로 가득하다. 1870년에 일어난 보불 전쟁은 프랑스의 투항으로 막을 내렸다. 전쟁에 패한 프랑스는 독일에 알자스와 로렌 땅을 내주었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복수심이 시작되어 더 큰 규모의 잔인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프랑스는 복수를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적어도 전쟁 동기의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의 복수를 위해 싸웠다.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은 언제쯤 결말이 날까?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종료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복수 심리가 남아 있다면 다음 세기에 영국과 또 한 번의 전쟁을 선언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르헨티나 축구팀이 언제나 영국 축구팀을 누르는 것은 과거의 전쟁에 대한 복수 심리가 축구장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까?

3. 분쟁형 전쟁
영토, 식민지, 민족, 여자, 통치권, 종규, 유산 등은 모두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러 유형의 전쟁 가운데 영토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국경 분쟁)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년)은 식민지 쟁탈이 원인이 되어 발발했다. 7년 전쟁에 참전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웨덴, 작센, 러시아 등은 각자 야심을 품고 있었다. 영국은 프랑스 식민지를 쟁탈하기 위해, 프로이센은 작센을 점령하고 폴란드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참전했다. 오스트리아는 중유럽 패권 다툼에서의 경쟁자인 프로이센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1740년에 빼앗긴 슐레지엔을 되찾아 오려 했으며(복수 심리 작용), 프랑스는 영국의 세습 영토인 하노버를 삼켜 아메리카와 동인도의 식민지를 지키고 프로이센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 했다. 그 밖에 스웨덴은 프로이센의 포메른을 쟁탈하기 위해, 러시아는 프로이센의 동진을 막아 자신들의 서쪽 진출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유럽의 7년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동서냉전 역시 7년 전쟁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의 끊임없는 세력 확장의 배후에는 전쟁 심리와 공격 본능이 감춰져 있었다.

4. 비(非)정의, 침략의 전쟁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펼친 대외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전형적인 침략 전쟁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유구한 문명을 파괴한 원흉이다. 18,19세기에 진행된 영국의 인도 정복 역시 침략전쟁에 속하며, 인류 역사에서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1945년 8월 22일, 일본 관동군이 소련군에 투항했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의 명령에 따라 일본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는 장교 97명, 부하 1천500여 명과 중국의 창춘에서 투항 의식을 치렀다. 바실렙스키는 연설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일본 장병 여러분, 당신들이 저지른 전쟁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는 결코 당신들의 용맹함이나 끈기 혹은 무기나 전술이 부족했던 탓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전쟁에 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정부가 일으킨 전쟁이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인류 평화를 파괴하는 파시즘 전쟁이라는 점입니다. 이 전쟁은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여 결국 인류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참전한 모든 장병 역시 피해자입니다. 전쟁을 계획한 자와 양손에 무고한 피를 묻힌 살인자를 제외한 병사들은 모두 석방할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 부모, 형제와 한자리에 모일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번 전쟁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무기를 들지 않는 평화의 사도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5. 정의적 전쟁
이 유형의 전쟁에는 생물학적 배경이 없다. 정의와 비정의, 선과 악의 결사적 경쟁이 있을 뿐이다. 이 유형의 전쟁은 유일하게 ‘전쟁과 남성 호르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인류는 오로지 정의적 전쟁으로만 불의의 침략형 전쟁을 막을 수 있다.

- 『전쟁 호르몬』 중에서
(자오신산 지음 / 시그마북스 / 364쪽 / 14,500원)